책상의 동기
머리, 마음, 책상의 동기화 작업 중
잘 되었다. 이제 시작할 수 있겠다.
상쾌한 일요일 저녁이다.
두 남자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불금토일을 보내고 나니,
일요일 저녁 11시 16분이다.
여유 있게 맥주 한 잔 하면 좋겠으나, 냉장고에 재고가 떨어져 결국엔 홍초 한잔 책상에 올랐다. 글도 쓰고 싶고, 검색도 하고 싶고, 쇼핑도 하고 싶다. 뭐 따지자면 하고 싶은 게 손에 꼽지 못할 만큼이다.
순식간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자리에 앉으니, 0순위 책상 정리가 빠졌다.
컴퓨터 두대와 스탠드, 프린터, 서랍장, 책꽂이, 연필꽂이 기본 세팅에 간식과 장난감과 쓰레기가 척척척
아무래도 책상부터 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복잡했고 마음이 심란했다. 늘 그랬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책상 정리만 한다는데, 내가 그 꼴인가 보다. 정리할 시간에 공부를 하지.
원래 이 동네 소속이 아닌 물건들이 귀가하고, 책들이 키 순서대로 꽂히고, 홍초가 오른손에 잡히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도 덩달아 정리가 된 기분이다.
나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아내와 마찰음도 종종 있다. 사실 정리를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평소에 '쓰고 제 자리' 원칙을 지키고 틈날 때마다 조금씩만 치워놓으면 된다. 그게 안되고 엉클어지기 시작하면 모이고 모여 일이 되어 버린다. 마음은 심란해지고 머리는 복잡해진다.
내가 집중하고 에너지를 써야 하는 곳에 나의 정신을 온전히 투사하지 못한다. 작업효율은 떨어진다. 미간은 찌푸려진다. 언제나 정리부터 시작하는 이유다.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출근하면 커피를 내리며 이런저런 물건들의 위치를 다시 정리한다. 퇴근할 때도 정리를 해 놓지만, 퇴근시간이라 마음이 급한지 서툰 곳이 보인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워크플레이스에 워크 쉬트만 남기고는 다 서랍행, 책꽂이 행이다.
천재들을 보면 뒤죽박죽에 겹겹이 쌓이고 쌓인 문서들 사이에서 악필로 필기하면서도 일만 잘하던데, 나는 확실히 천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딜 가든 정리가 되어있지 않으면 머리가 복잡해 책도 읽지 못한다.
아내는 이런 나를 '강박 구'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책상 위에 상태가 내 마음의 상태고 머릿속의 투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치운다.
11시 16분에 앉아서 이래 저래 정리하고 컴퓨터를 켰는데, 컴퓨터 파일들이 뒤죽박죽이라 정리하고 하다 보니 벌써 월요일 02시 37분이다.
아무것도 만들어낸 것 없고, 글이라 봐야 지금 이 몇 줄이 전부인 생산성 낮은 저녁이지만
금요일부터 복잡하고 정신없던 일상이 흙탕물 가라앉듯 차분해지고 맑은 물처럼 남았다.
이제부터 책 좀 읽고 자면 세 시간이나 자려나 싶은데, 그래도 이렇게 맑은 기분의 심신을 그냥 종료시키기엔 너무 아쉽다.
스마트폰도 이런저런 프로그램들 사진첩들 연락처들 동기화시켜놓으면 배터리가 빨리 닳던데,
나에겐 머리와 마음과 책상이 동기화되는 게 그렇게 내 시간을 빨리 닳게 만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