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영준 Aug 17. 2024

1. 누구에게나 불안과 우울은 찾아올 수 있다

한밤중에 시작된 공황발작

살다 보면 간혹 황당한 일을 당한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럴 때 우린 ‘하필 왜 내게….’라며 당황해한다. 그러나 나중에 돌아보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2012년 5월경, 나는 5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다. 오랜만에 공직에 있을 때 만난 동료들과 식사를 나누고 2차에서 거나하게 술도 마셨다. 여러 이유로

마음이 힘든 상태이긴 했지만 그날은 즐거웠다. 


한밤중에 시작된 공황발작

새벽 1시 넘어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시기였다. 그날 밤도 비몽사몽 간에 갑자기 가위에 눌린 듯 숨이 콱 막히면서 의식이 깨어났다. 도저히 숨을 쉬기가 어려운 호흡 곤란 증상이 찾아왔다. 괴롭고 힘들고 절망에 가득 찬 감정이 엄습했다. 

    

갑자기 절벽에서 뛰어내리듯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뒤이어 심장이 맹렬히 뛰기 시작했다. ‘쿵쾅쿵쾅’ 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반사적으로 손목의 맥을 짚어보니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처럼 빨랐다. 얼핏 벽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 증상을 오한이라고 해야 하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이가 딱딱 부딪치고 이불이 들썩거릴 정도로 흔들렸다.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내리는 느낌. 이러다가 미쳐버리거나 죽을 것 같았다. 극도의 공포감이 엄습했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떨리는 몸을 진정하고 억지로 숨을쉬면서 다시 시계를 보니 불과 10분밖에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집사람은 친정에 갔고 아들은 회사에서 야근 중이었다. 지옥 같은 시간을 홀로 견디면서 나는 상황이 더 급박해지면 119에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격렬했던 몸의 떨림과 발작적 흥분 상태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음은 여전히 절망스러웠지만, 신체는 차츰 안정을 찾고 있었다. 

    

시계를 다시 보니 총 30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는 한나절을 보낸 듯한 긴 시간이었다. 엉금엉금 거실로 기어 나와 소파에 드러누웠다. 옴짝달싹하고 싶지 않았다. 손가락을 움직일 기력조차 없었다. 

옷은 다 젖어있었다. 5월 초 시원한 아침 바람이 몸을 스쳤다.     


이 불안은 왜 나를 찾아온 걸까   

도대체 왜 이럴까.     


물론 그간 내 컨디션이 정상은 아니었다. 의욕적으로 잡아두었던 계획을 포기하고 정리하면서 몸과 마음이 위축되고 형편이 안 좋아졌다.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아플 일은 아니었다.     

어젯밤 상황을 돌이켜보았다. 옛 동료들을 만나 반가웠고 왁자지껄하게 저녁 식사를 하면서 울적한 마음도 좀 가셨다. 2차 맥줏집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잔을 부딪치며 건배하고 맥주를 들이켰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갑자기 건너편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내 옆자리는 빈 상태가 되었다. 그 사람은 내가 직장을 그만둔 뒤에 입사해서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만난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그저 자리를 옮긴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엄청난 모멸감을 느꼈다.     

‘아, 저 친구가 나를 무시하는구나. 내 옆자리에 앉기 싫어 자리를 옮겼구나.’     


그 생각은 곧 합석한 다른 동료들에게로 이어졌다.     

‘이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겠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나를 형편없는 놈으로 볼 거야.’     

마음 한구석에 시커먼 좌절감이 쿵 내려앉았다. 그때부터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 그 상황을 머릿속에 반복해서 떠올렸다. 그러다가 결국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자격지심은 때로 무섭다. 인생에서 계획을 세우다가 접을 수도 있고, 잘 안 될 수도 있는데 당시 나는 마치 대단한 실수나 실패를 한 양 심하게 자책했다. 그 자책감 때문에 평범한 인간관계나 상황도 엉뚱하게 해석하고 재가공해 자신을 더욱 괴롭혔다.     

‘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무너지다니. 참으로 연약하고 한심한 인간이구나. 도대체 난 이 나이가 되도록 뭐 하고 살았나. 앞으로 남은 인생은 참 가망 없겠구나.’     


반추에 반추를 거듭하면서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시체처럼 누웠다가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입맛이 전혀 없었다. 씻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도 주섬주섬 일어나 욕실로가 몸무게를 재니 평소보다 무려 4킬로그램이 빠졌다. 30년 전 청년 시절 몸무게로 돌아간 것이었다.     


불과 하룻밤에 4킬로그램이나 빠졌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심장과 맥박이 맹렬하게 뛰어 땀을 비 오듯 흘린 것이, 마치 밤새 마라톤을 뛴 것과 같은 열량 소비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그토록 고대하던 다이어트가 하룻밤 새 이루어졌지만 도리어 겁이 덜컥 났다. 열량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숟가락으로 푹푹 퍼먹었다. 도넛도 먹었다. 평소 잘 먹지 않던 단 음식들을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우악스럽게 먹어댔다. 다시 몸무게를 재니 금방 2킬로그램이 늘었다. 마음이 약간은 안정됐다. <계속>

이전 01화 프롤로그: 한참을 뛰어오기만 한 당신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