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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영준 Aug 25. 2024

4. 우울의 진짜 이유에 다가서기

물리쳐야 할 적은 바로 마음속에 있다

지난 5개월간을 돌아보았다. 그동안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하자면 ‘Gloomy Sunday(우울한 일요일)’였다. 1930년대 초 유럽에서 유행한 이 노래는 자살을 암시하는 염세적 분위기로 자살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유럽 전역에서 방송 금지가 됐던 곡이었다. 그때 내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두 가지였다.     


'내 인생은 이제 끝인가?’


‘나는 결국 실패자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계로 뛰어들었던 내게 사회문제는 늘 관심사였다. 22년 다니던 신문사를 나와 몇 년간 혼자 글을 쓰고 지낼 때도 그랬다. 우연한 기회로 공직 생활을 하게 돼 청와대에서 비서관으로 몇 년간 일했다. 권부(權府)의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민주화된 사회가 그다지 제대로 잘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

달았다.     


나는 스스로 힘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고 국회의원 도전을 결심했다. 2012년 4월에 19대 총선이 있었다. 나는 그보다 1년 전인 2011년 봄 사표를 내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연고지도, 후원 세력도, 돈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 성격이 정치 생리에 맞지 않았다. 결국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총선을 4개월 앞둔 2011년 12월 초 출마 계획을 접었다. 어쨌든 버티면서 상황을 관망하자는 주위의 권유도 뿌리치고 눈 딱 감고 사무실을 폐쇄했다.     


그때 내 나이 만 55세.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민감하고 취약한 시기였다. 후반기 인생 궤도 진입을 위해 신중한 연착륙이 필요한 시기였는데 급격하게 궤도를 선회한 데다 급제동까지 하는 경착륙을 감행했다. 그 뒤 찾아온 후폭풍은 생각보다 훨씬 컸고,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처음에는 무기력하고 허탈했다. 세상이 재미가 없었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에서 손꼽히게 바쁘게 살아온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그러다 하루아침에 집에 틀어박혀 빈둥거리니 말이다. 오전 늦게 일어나 어슬렁거리다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어 이제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하니 참 힘이 빠졌다.     

      

이렇게 노인이 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도 얕게 들었다가 몇 번씩 깨곤 했다.     

자연스럽게 지난 시간을 복기해보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후회와 회한, 반성이 들었다.     


‘왜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했지? 기자 시절에도 정치 쪽에는 눈도 안 돌렸던 내가 아닌가. 그러나 사내가 칼을 뽑아 들었으면 끝까지 가든가. 그게 아니면 출마를 포기하더라도 좀 눈치껏 그만두지, 하루아침에 주위가 다 알도록 떠들썩하게 사퇴하는 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이런 생각들은 곧 창피함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볼까. 이럴 때면 애써 합리적 근거를 대면서 마음을 추스르곤 했다.


‘끝까지 가보겠다고 고집을 계속 피웠다면 정말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지도 모른다. 사퇴는 나다운 결단이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     고 한 행동을 놓고 더는 나를 탓하지 말자. 후회하지 말자.’


마음이 좀 가라앉는가 싶으면 또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다 좋다. 그런데 내 미래는 어떻게 되지?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지? 어떻게 살아나가지? 할 일이 있을까? 어떤 일, 어떤 직책을 가져야 만족스러울까? 나를 원하는 곳, 받아줄 곳이 있기나 할까?’     


앞이 깜깜해지면서 다시 후회가 거듭됐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은 자신에 대한 한심함, 의구심, 불신으로 발전했다.     

    

물리쳐야 할 적은 바로 마음속에 있다     


밤마다 악몽을 꾸었다. 자다가 벌떡벌떡 깨어났다. 새벽에 마치 누군가에게 목을 졸린 듯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깨어났다.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르고 벌을 받는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조마조마했고, 할딱할딱 가쁜 숨을 쉬며 깨어나곤 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나를 신랄하게 공격하는 사람도 바로 자신이었다. 나 스스로 가해자요 피해자인 셈이었다.     


스스로 느끼는 패배감, 후회, 자책, 허탈감의 공격에 힘들었다. 마음이 납덩어리처럼 무겁다가 뻥 뚫린 가슴처럼 허탈하다가 이어서 우울, 상실감, 자책감, 후회 등이 하루에도 수없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곤 했다.     

아랫배에 위치한 단전(丹田)에 힘을 주면 다소 마음이 편해졌다. 심호흡하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곧 어두운 마음이 덮치면서 온갖 잡념과 번뇌, 우울함에 휩싸이곤 했다.     


어느 날 저녁 집 근처 교회당에 들어가 혼자 이렇게 기도하기도 했다.     


‘제가 물리쳐야 할 적은 바로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죄책감, 불안, 염려 이것이야말로 저를 파멸하려는 장본인이자 사탄입니다. 싸워 이기게 해주소서.’     

       

기도하고 나면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았으나 잠시 뒤면 다시 온갖 잡념이 스멀스멀 일어났다. 날이 갈수록 그 빈도와 강도는 더욱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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