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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영준 Aug 31. 2024

5. 새벽 3시, 영혼의 칠흑 같은 밤은 찾아오고

급격히 무너지는 몸과 마음


 어느새 3개월이 지났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다. 2012년 3월 초순께부터 친구가 마련해준 대학로 사무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그런대로 좋았다. 집에서 벗어나 소일할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매일 출근하는 기분으로 나갔다. 그러나 곧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다시 잡념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 생각도 ‘에너지 덩어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들은 처음에는 내 아랫배 한 귀퉁이에서 간혹 머물다 사라지곤 했다. 그 ‘불편한’ 생각들은 아랫배 한쪽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거나 때로는 아픈 느낌을 주기도 했다. 옛 어른들이 말한 ‘속이 썩는다’라는 표현과 증상이 유사하다고 할까.     


그러다 어느 날부터 그 생각들이 마치 암 덩어리처럼 몸속에 자리 잡히기 시작했다. 아랫배 어느 곳에 존재하던 이 절망의 덩어리는 차츰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시작했고 조금씩 단단해지면서 커지기 시작했다. 불안, 염려가 심할 때는 커지다가 마음이 가벼워질 때는 잠시 사라지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3월 중순이 되면서는 절망의 덩어리들이 더욱 활성화됐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마음을 아프게 했고 어떨 때는 불쑥 기운이 솟아올라 진을 빼놓곤 했다.     


급격히 무너지는 몸과 마음     

어느 날 점심시간에 사무실 인근 햄버거집에 갔다. 싱그러운 봄의 기운이 솟아오르는 화창한 날씨였으나 내 마음은 어두컴컴한 지하실과 같았다. 계산대에 서 있던 해맑은 인상의 아가씨에게 햄버거를 주문하는 순간, 내 마음속 암 덩어리가 요란스럽게 팽창, 요동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회한과 비참함, 허탈, 후회, 자책, 수치심, 좌절, 죄책감, 절망감 등 온갖 부정적 감정과 생각이 한꺼번에 격렬하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일순간에 마음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이런 체험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은 지극히 평온했다. 그 아가씨는 지옥 같은 내 마음 상태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밝은 미소로 응대했다. 그때 그녀와는 1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심리적으로는 너무나 먼,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어쩌면 나는 저 사람들처럼 정상적으로 살아가지 못할지도 몰라. 영원히 이런 절망감에 사로잡혀 지내게 될지도 몰라….’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저 우주 먼 곳의 블랙홀 안에 있는 주인공이 시공간과 차원이 다른, 지구에 있는 딸과 교신할 때처럼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공황발작의 초기 증상이 아니었나 싶다.   

  

억지로 기운을 차리고 사무실에 돌아와 돌을 씹듯 햄버거를 먹었다. 너무 마음이 아파 몸도 매우 지친 상태가 되어 의자를 젖히고 누워 잠을 청했다. 극심한 피로감이 찾아왔으나 도리어 정신은 말똥말똥해졌다.     


확실히 내가 이상해졌다. 이건 단순한 증상이 아니다. 몇 시간을 사무실에서 그렇게 보낸 후 나는 컴퓨터를 켜고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우울증’이란 용어를 검색했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기준을 보면 우울증 환자는 거의 온종일 우울한 기분, 피로 또는 에너지 상실, 흥미나 집중력 감소, 체중 및 식욕 감소, 불면 또는 과수면, 자기 비하 또는 죄책감, 무가치감, 죽음과 자살에 대한 반복적 생각 등의 증상을 보인다.     


바로 내가 그랬다. 체중 변화, 죽음과 자살 생각을 제외하고는 다 해당했다. 그럼 내가 우울증에 걸렸단 말인가…. 겁이 더럭 났다. 우울증은 평소 염세적 또는 부정적인 사고를 하거나, 지나치게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거나, 아니면 실연당한 사람 또는 갱년기 여성에게 찾아오는 특별한 병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로부터 한 보름 지났을까. 불면증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1~2시간 자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아예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날이 찾아왔다. 참으로 기나긴 불면의 밤이 시작되고 만 것이다. 

   

정상적인 경우 잠을 못 자면 다음 날 낮에 피곤하고 졸음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낮에는 피곤하긴 했지만 졸음이 찾아오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의자에 눈을 붙이는 순간 정신은 도리어 말똥말똥해졌다. 전철 안에서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잠을 못 자니 머리가 쉬지 못해 피곤하고 멍해졌다. 그런 멍한 상태로 지내다 보니 머리 회전이 둔해지고, 기억력이 감퇴하며 모든 일에 흥미가 사라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극도로 예민해지면서 문 여닫는 일상 소리에도 신경이 파르르 곤두서곤 했다.     


몸을 피곤하게 하면 자연스레 잠이 찾아온다는 얘기를 듣고 차를 타지 않고 하루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 다닌 적도 있었다. 내가 사는 강동구 암사동에서 잠실, 반포, 강남고속도로 터미널을 거쳐 시청까지 걸어갔다 돌아온 날 저녁, 매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 순간 머리는 다시 맑아지고 잠기운은 달아났다. 그리고 온갖 망상이 또다시 나를 엄습했다. 한참을 드러누운 것 같은데 시간을 보면 자정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일어나 앉아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성경이나 에세이, 불경을 집어 들어본 적도 있다. 그러나 책을 집어 드는 순간, 머리는 또다시 온갖 잡념에 휩싸였다. 단전호흡을 해보기도 하고, 소파에 나와 누워보기도 하고, 조용히 음악을 들어보기도 하고 별별 짓을 다 했지만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위스키도 마셔보았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음주가 알코올중독으로 빠지는 필연적인 길이란 사실을 알기에 더는 마시지 않았다.     


이렇게 긴긴밤을 지새우고 새벽이 오면 정말 끔찍하고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절망감과 좌절감이 가득했다. 몽롱한 정신으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옷을 갈아입고, 운동하겠다고 나서면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다시 털썩 소파에 누우면, 마음 한쪽에선 다시 나가 운동하라고 재촉했다. 


밖으로 나가 조깅을 해야 하는지, 그냥 쉬어야 하는지조차 결정을 못 해 우왕좌왕, 갈팡질팡했다. 무엇을 해도 편치 않았다. 무슨 생각과 행동을 해도 마땅치 않았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이렇게 힘들었는데도 나는 병원에 가거나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았다. 약 기운을 빌어 잠이 드는 일 자체가 내가 정신적으로 허물어지는 길이요, 약물 남용으로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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