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8일 밤, 방콕 수완나폼 공항. 익숙한 소음과 혼잡함 속에서 나는 혼자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은 여행과 만남, 작별이 반복되는 거대한 교차로 같았다. 늘 그랬듯이 사람들은 어딘가로 향하기 위해 서둘렀고, 그 사이에서 나는 차분히 이곳의 풍경을 관찰했다.
체크인을 기다리는 긴 줄이 눈에 띄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줄이었고, 나는 무심히 그 행렬의 끝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서있는 방향 끝으로 제주항공 로고가 보였다. 유독 체크인이 느렸던 기억이 난다. 다만 그 순간엔, 그저 불편한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2024년 12월 29일 새벽, 북경을 경유해 김포로 향하는 여정 중 휴식을 취하려던 찰나 스마트폰 화면 위에 속보가 떴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활주로 이탈, 사망자 발생.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그 뉴스가 눈길을 잡았다. 잠시 후엔 전원 사망이라는 소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한참을 그 화면을 응시했다.
무안공항 활주로에서 숨진 179명의 사람들은 어젯밤 방콕 수완나폼 공항에서 내가 봤던 그 긴 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가족을 만나러 갔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휴가에서의 즐거운 추억을 안고 귀국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그렇게 삶과 죽음이 갈렸다. 짐작할 수조차 없는 우연과 운명 같은 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피해자 지원 업무를 맡으며 처음으로 사고의 현장에 다가갔다. 유가족의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보험과 배상, 보상 체계는 차분히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법률과 보상금은 결코 생명을 되돌리지 못했다. 유가족을 만나 그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말없이 듣고 또 들었다. 그 순간의 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컨설팅 업무로 참여한 베트남 롱탄 신공항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숫자와 데이터를 다루는 업무였지만, 본질은 결국 사람이었다. 공항 운영에서 중요한 건 효율성이 아니라 그곳을 오가는 사람의 안전과 삶이었다. 베트남 공무원들과 논의하면서 가끔은 절차와 숫자 사이에서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공항이 더 이상 비극의 공간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어떤 보상도, 어떤 법적 판단도, 삶을 잃은 사람과 그 유족들의 마음을 온전히 채워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조차 없다면, 남은 사람들의 삶은 더욱 무거워질 것이 분명했다. 담담하게,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임을 안고 나는 오늘도 업무를 계속한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일순간 갈리는 것을 본 뒤, 나는 삶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고 있다는 것,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 일이 때론 가장 큰 행운임을 알게 되었다. 담담히, 또 묵묵히 지금 주어진 일을 계속 해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