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본질적으로 다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위대한 통찰
“왜 당신네 백인은 그렇게 많은 화물(cargo)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우리는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했나요?”
이 단순하면서도 뼈 있는 질문 하나가, 재레드 다이아몬드를 과학자의 길에서 인류 문명 탐구의 길로 이끌었다.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이었던 얄리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고자, 그는 30년 넘게 전 세계 문명의 발달 경로를 탐색했다. 그리고 그 답을 『총, 균, 쇠』라는 방대한 저작을 통해 내놓는다.
“왜 어떤 사회는 다른 사회보다 더 빨리 발전했는가?”
다이아몬드는 이 책에서 단호하게 말한다.
문명의 수준 차이는 인종적인 우월함 때문이 아니다.
그는 다양한 지질학적, 생태학적, 기후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명 간 격차의 진짜 원인은 '환경'이라는 비인격적 요소에 있다는 주장을 논증해 나간다.
농업이 시작된 지역은 어디였는가?
재배 가능한 식물과 가축화 가능한 동물이 있었는가?
지리적으로 동서로 열려 있는 대륙이었는가, 아니면 남북으로 단절된 대륙이었는가?
이런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스페인의 피사로가 어떻게 잉카 제국을 일방적으로 정복할 수 있었는지, 왜 라마는 바퀴와 결합되지 못했는지, 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가 긴 시간 동안 서로를 모르고 지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게 된다.
책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겪었던 태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를 떠올렸다.
한국에서는 종종 태국 사람들을 ‘게으르다’, ‘빠릿빠릿하지 못하다’는 고정관념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내가 태국에서 생활하고 교류하며 관찰한 바로는, 그것은 결코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환경이 낳은 삶의 방식의 차이였다.
태국은 기후가 덥고, 과일과 식물이 풍부하며, 논농사가 잘 되는 땅이다. 가만히 있어도 자연이 인간을 살려내는 기후 속에서는, ‘속도’나 ‘효율’보다 ‘유지’와 ‘균형’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반면,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계절을 놓치면 한 해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수확이 없다. 겨울을 준비하지 않으면 얼어 죽거나 굶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 부지런해야 했고, 더 계획적일 수밖에 없었고, 더 창의적이어야 했다.
그 결과는 온돌, 장류, 김치, 저장 기술 같은 독창적인 생활문화로 꽃피었다.
결국 다이아몬드가 말하고자 한 핵심과, 내가 직접 체득한 삶의 진실은 한 점에서 만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다를 뿐이다.
『총, 균, 쇠』는 우리가 갖고 있는 문명의 오만을 흔드는 책이다.
“우리가 더 발전했다”는 착각 뒤에는, 단지 농작물이 풍성했고, 가축이 있었으며, 위도가 동서로 펼쳐졌다는 우연이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환경적 행운'을 ‘문명의 자격’으로 오인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나 역시 선진국 사람들을 만나고, 개발도상국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느꼈던 것은, 문화적 차이보다 인간적인 공통점이 훨씬 더 깊다는 사실이다. 언어가 다르고, 식습관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지만, 슬픔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사랑 앞에서 웃는 것은 다를 바 없다. 문명의 껍질만 걷어내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다이아몬드는 역사를 과학처럼 연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실험할 수 없는 인류사를 관찰하고, 비교하고, 종합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 결과는 단순히 학문적 통찰을 넘어선,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겸손의 철학’**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유럽이 우월하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우리가 선진국이라는 이유로 타인을 평가하는 태도를 근본에서 바꾸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저, 운 좋게 자란 땅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우리와 그들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믿었다면, 『총, 균, 쇠』는 그 믿음을 조용히 해체할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느낄 것이다.
“정말 중요한 건, 어디서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해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