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러브를 넘어선 '사랑'의 본질을 묻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말할 때, 영화와 드라마 속 남녀의 뜨거운 감정, 연인 간의 스킨십, 결혼이라는 제도로 귀결되는 관계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것이 소유욕이 아닌 진짜 사랑일까요? 우리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관념이 혹시 외부에서 주어진 개념은 아닐까요?
19세기 중반, 소설가들이 창조한 '로맨틱 러브(Romantic Love)'라는 개념은 이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인류 역사상 매우 최근에 생긴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수천 년간 결혼은 경제적, 사회적 계약이었고, 연애는 결혼과 별개의 것이었습니다.
로맨틱 러브는 "당신만이 나의 전부입니다(The one and only)"와 "당신이 있어야 내 삶이 완성됩니다(You complete my life)"라는 종교적 사랑의 개념을 육체적 열정과 결합시켜 만들어낸 인위적 조합입니다. 문제는, 이 사랑의 개념이 우리의 기대를 왜곡하고, 결국 사랑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 교수는 불교의 '공(空)' 사상과 '무아(無我)' 개념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본질에 접근합니다. 사랑은 '나'와 '너'라는 경계를 인식하고, 그것이 환상임을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내가 실체가 아니고, 너 또한 실체가 아니라면, 우리는 결국 하나의 유기적 존재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 사랑은 특정한 감정이나 욕망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향한 평등한 따뜻함이 됩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자비(慈悲)', 기독교에서는 'God is Love'라는 존재 자체로서의 사랑이라 표현합니다. 이는 특정한 누군가를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감사'하고 '경외'하는 태도입니다.
심리학자 메슬로우는 사랑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결핍을 채우려는 사랑(Deficiency Love)과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사랑(Being Love). 결핍 사랑은 불안, 질투, 통제 욕구를 동반합니다. 반면 존재 사랑은 평온, 기쁨, 감탄, 자율성의 존중을 특징으로 합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태도를 떠올려보세요. 그 존재 자체가 고맙고 사랑스럽지, 무엇을 해주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듯이, 진정한 사랑은 조건과 보상 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보다 현실적인 설명도 있습니다. 심리학자 아론 부부는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자기 확장(Self Expansion)'을 사랑의 본질로 설명합니다. 상대방의 시각, 자원, 정체성이 내 삶으로 확장되고, 나 또한 상대의 삶에 녹아드는 것입니다. 이는 궁극적인 '경계의 소멸'은 아니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사랑의 형태입니다.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명상을 안내합니다. 손바닥, 어깨, 가슴의 경계를 느끼고, 안과 밖을 구분하는 의식이 서서히 옅어지며, 몸과 마음이 주변 공간으로 스며드는 체험을 이끕니다. "나는 너를 사랑해"가 아니라 "나와 너는 우리가 되었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 그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잘못 배웠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한다'는 말에는 늘 '너는 내 거야'라는 소유욕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그 반대입니다. 너는 내 것이 아니며, 나는 너에게 무엇도 요구하지 않으며, 그저 너의 존재 자체를 고마워하는 마음. 나와 너의 경계가 옅어질 때, 사랑은 더 이상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향한 따뜻한 흐름이 됩니다.
진짜 사랑은 목적어가 없는 사랑입니다. 그저 샘솟는 따뜻함입니다. 이 사랑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 보려 합니다. 내 안에, 이미 그 사랑이 있다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