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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몰뚜뚜 Apr 26. 2024

09) 우리집 이야기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 - 1

진심을 다해 내맘대로 스케치 시작


엄마가 골라준 침대, 꽤 넓은 책상, 옆에 둘 책장.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다.

인테리어에 큰 관심 없이도 이미 내게 주어진 것들이 깨끗하고 튼튼했다.
굳이 거스르지 않아도 다른 할 일들이 매우 많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갑자기 집을 사버렸다.
그것도 신혼집이다.




~ 텅 ~


맨땅에서 시작한다는 관용적 표현을 가장 실체적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집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설레는 입주 첫 주, 눈앞에 놓인 아수라장)



우선 기본적인 요소부터 찬찬히 따져보자. 집의 면적은 전용 59m2 25평으로 베란다가 확장된 형태다. 거실과 주방 그리고 방3개와 화장실 2개. 아직 준신축 아파트라 깔끔한 편이니 손볼 곳은 크게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보다 쾌적한 집을 위하여 도배부터 싹 하자!


그 다음은 뭘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내 맘대로 해보자.

이제 이 공간은 내게 매우 커다란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의미를 직접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그 다음에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겠어?


(차근차근 치워가는 중)


신나는 마음으로 컨셉을 잡고 스토리를 만들었다.
내 머릿속 장면들을 텍스트로 잔뜩 끄집어냈다.
하지만 이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경험은 없다.
그럼에도 크게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상상했다.


방법을 묻는 친구들이 있어 나의 생각의 흐름을 간단히 적어보았다. 이 아이는 이렇게 리듬을 탔구나! 하며 함께 흥겹게 즐겨보시겠습니까.





1. 집 : 9foridle.lab

몇 년전 피자를 베어 물던 어느 일요일 밤이었다. 먹음직스러운 토핑이 잔뜩 올려진 피자와 시원한 흑맥주 한 잔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월요일.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발악으로 되려 흥이 오른 순간이었다.

“우리 둘의 그룹명을 정하자!”
“그룹? 그래!”

본래 대화의 흐름은 자유로워야 제맛이다. 갑자기 뭔 그룹명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좋다고 외치는 L과 비장한 눈빛의 나.


“앞으로 뭘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공통점을 생각해보자.”
“공통점? 그래!”
“우리는 둘다 94년생이야.”
“맞아!”
“바로 그거야!”



더 나열할 것도 없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94년에 태어난 아이들, 우리가 앞으로 뭘 할지 몰라도 그래서 무한하다는 것. 이렇게 순식간에 이름이 정해졌다.


[94] + [아이들] + [알 수 없는 것을 찾아보자 => 실험실]
= nine + four + idle + lab


그 다음에 좀 더 자세히 덧붙일 수 있는 뜻을 찾아보았다. 즉, 이름을 정하고 의미를 찾아 끼워 넣었다.


1.숫자 9는 동서양의 많은 문화에서 완성과 성취를 상징한다. 또한 새로운 여정의 시작과 노력의 뜻까지 상징한다. (사실 나 역시 나중에 찾아보고 알았다.)


2. idle은 게으른, 뚜렷한 목적이 없는 등의 느긋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한 평생 낄낄거리며 살겠다는 가벼운 다짐을 담았다.  


3. lab은 실험실을 뜻하는 laboratory의 준말이다. 실험실만큼 도전이 계속 되어야 하는 곳이 없을테니!  


빨리 정리해보자.
영어로 쭈욱 써보고, 숫자 9는 살리고, 연음으로 붙이고, 점 하나 찍고, 이제 끝!

9foridle.lab [나인포리들-랩]

이렇게 탄생하여 메모장 어딘가에 휘리릭 던져놓았던 단어였다. 집을 사고 나서야 문득 떠올라 다시 발굴해냈다. 그리곤 지금 우리집의 이름이 되었다.


[9foridle.lab : 94년생 둘이 모여 사랑과 행복을 궁리하는 실험실.]






2. 거실 : Yourh Park


(댕구르르 굴러다니는 LG 스탠바이미 TV와 함께 거한 한상차림)


벽에 걸린 커다란 TV와 마주보는 자리에 배치된 편안한 소파. 굳이 나서서 일반적인 거실의 모습을 피할 의도는 없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그것이 아니었을 뿐.



‘집들이’라는 행사가 우리집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거실이 메인 공간이다. 집이 매우 넓어서 라운지와 다이닝 공간 등이 개별적으로 있었으면 좋겠지만, 우리집은 그렇지 않다. 25평의 집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우선 포기해야만 했다. 대형 TV와 넓은 소파를. 아주 커다란 테이블을 놓고 싶었다. 그 하나의 테이블이 거실을 꽉 채울테니 필연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결국 포기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과 옷방 사이에 작은 2인용 소파를 두었다. 최근에는 최대 120인치까지 투사되는 빔 프로젝터를 구매하여 침실에 두었다.


그러나 거실에서 펼쳐질 장면을 가장 최우선순위로 두었다는 점!



(돌아온 방어 시즌을 맞이하여 모인 방어 파티)


“원테이블 다이닝 레스토랑에 온 것 같아.”



정확하다. 우리의 의도를 아주 예리하게 관통한 친구들의 첫 마디다. 집들이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잘 모르겠다. 그냥 모여서 맛있게 먹고 재미있게 떠들고 싶다. 다양한 음식들을 넉넉하게 올려 놓아도 충분해야 한다. 보드게임을 할 때에도 여유를 잃고 싶지 않다. 그래서 테이블이 가장 중요했다. 어느 정도의 크기가 적당한지, 소재는 무엇으로 할지, 상판의 모양은 직사각형이 좋은지 원형이 좋은지, 색상은 또 어떻게 고를지 등등등 하나도 모르겠는데 따져야 할 것들은 많고 또 가격까지 맞아야 한다.


당장 입주는 했는데 테이블이 없어 플라스틱 리빙박스에서 간신히 밥을 먹고 계속 고민만 하며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여러 곳을 가봐도 도저히 모르겠다. 맘에 안 들거나 비싸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러던 중 맘에 드는 테이블과 마주쳤다.



밝은 베이지 우드계열의 타원형 테이블로 좁게 붙어 앉으면 8명까지도 가능하다. 가격대도 여러 할인을 끌어모아 최대한 낮췄고, 표면 코팅이 잘 되어있어서 이것저것 흘려도 쓰윽 닦으면 된다. 현재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집들이 테이블 중 최고였다.




(브런치 파티 그 자체)


대망의 집들이 파티날.

활짝 열어 둔 커튼으로 화사한 햇살이 거실을 가득 채운다. 창문 넘어 보이는 도로는 시원하게 뚫려있다. 살짝 운이 더 좋으면 그날의 석양도 편안히 직관할 수 있다. 그 옆에는 포터블 스탠드 TV로 오늘과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둔다. 이제 친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우리 모두의 할 일은 먹고 떠드는 것일뿐.



[Youth Park :둘러앉아 사랑과 낭만을 노래하는 보헤미안의 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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