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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몰뚜뚜 Apr 13. 2024

01) 퇴사,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약간의 돈, 머리는 돌, 늘어난 술.



"나는 회사생활을 버틴다는 말이 싫어! 난 진짜로 즐기면서 할 거야!"




대학생 시절의 나는 생각했다.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재수, 휴학 등을 거치며 내 동갑 친구들에 비해 조금은 느렸지만, 나도 어느새 직장인이 되었다. 3년간의 길지 않았던 회사 생활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평생 같이 놀 친구들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직장인에게 퇴사란 무엇인가.



넌 누구니?



어느 순간부터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며 주말만을 바라보는 찌들어버린 생명체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바라던 그 주말의 모습은 어떤가? 평일에 쌓인 풀리지 않는 문제 덩어리의 늪에 빠져 여전히 허우적거리고 있다. 답답하다. 뭐가 그렇게 답답한 건지 알 수도 없지만, 그저 답답하다. 그러고 싶지 않음에도 주변에 그 지저분한 냄새와 흔적을 잔뜩 묻히기도 한다.



아침마다 고민했다. 만약 내게 남은 생이 1년이라면 이렇게 살지 않을텐데. 이러다가 내일 죽게 되면 얼마나 아까울까. 왜 이러고 살까. 왜 이렇게 매일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살고 있을까.



하지만 눈앞으로 날아오는 돌덩이를 두고 딴생각에 빠져 동작을 멈출 수 없었다. 갑자기 웬 돌이람? 사방에서 쏟아지는 돌덩이에 얻어터지기 시작했다. 힘겹게 돌의 공격을 피하는 법을 익히고 또 무겁지만, 이리저리 돌을 옮겨가며 오로지 숨통이 끊어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이 행위에 어떠한 목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기억이 희미해졌다. 이게 내 할 일이니, 우선 열심히 돌을 피해야겠지.



버티다보면 더 단단해지려나. 그럼 잘 할 수 있으려나. 이것밖에 못하는 나약한 나 자신을 탓하고 다그치며 딱딱하게 굳어갔다. 큰 돈은 못 벌어도 재밌게 살고 싶었는데 이건 뭐 돈도 없고 재미도 없고. 성실하게 살아왔을 뿐인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다들 이렇게 산다니까 어쩔 수 없는 건가.


쉴 새 없이 덤벼드는 돌에 맞지 않기 위해서,
맞아도 덜 아프기 위해서,
차라리 내가 돌이 되면 참 좋겠구나.


어느새 스스로 돌이 되어갔다. 소주 1잔을 간신히 마시던 내가 소주 2병을 깔 때 쯤이었다.




"아! 그만하자!”

(돌다리가 사람을 친다면, 그것은 돌다리가 아니다. 괴물이다.)



나는 그저 꿈꾸는 삶에 도달하기 위한 돌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돌은 단지 그 다리를 위한 재료이자 수단일뿐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관계가 역전된 채로 그 돌로 무참히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었다.



대체 왜?



도저히 싫어졌다. 그다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 그냥 멈추고 싶었다. 참을 수 없다는 말보다 '싫어졌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나의 생각과 의지가 아직은 꿈틀거릴 때, 내가 원치 않은 것들이 엉기고 뭉친채로 굳어져 나를 무너뜨리기 전에, 멈추자.


그리곤 무모한 듯 단호한 나의 다짐을 들은 L이 이렇게 말했다.



"좋아! 우리 이참에 집을 사자!"




그로부터 2개월 후, 우리는 법적 신혼부부가 되어 수도권에 위치한 역세권 준신축 아파트를 매매했다. 퇴사로 인해 수입이 없어지는 나의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매우 낮은 금리의 국가 정책 대출을 실행했다. 스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던 그 잠깐의 순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우리만의 기회로 만들어냈다. 나의 온 몸을 강타한 피땀눈물의 돌을 모조리 긁어 모아 기어코 돌다리로 탈바꿈해냈다. 이렇게 우리의 첫 번째 내집마련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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