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아상을 깨물면 행복해지잖아요
별 것 없다. 나를 믿는 마음에 붙인 이름, "해맑은 크루아상 권법". 그게 전부다.
필요 이상의 과도한 절망에 빠졌다. 이로 인해 내 인생이 멸망한 것 같은 기분.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이며, 이대로 모두의 기억 속 도태된 패배자로 남겠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는, 결국 그렇게까지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피하고 싶은 아침이 다가오고, 뜨고 싶지 않은 눈꺼풀이 열리면 또 미운 하루가 시작된다. 문득 이런 감성도 지겨워졌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망해도 나 혼자 망하는 게 인생인데, 다 어쩌라고?
그래서 잠시 잊었던 나의 천진난만한 장면 하나를 꺼내왔다. 마냥 해맑게 걸어가는 뿌듯한 표정들.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 굳게 믿고, 아니 그때는 '믿는다'는 표현 없이도 모든 성공을 마땅한 결과와 동일시했다. 하지만 이후 막대한 경제적 손해를 입은 적도 있고, 트집 잡고 싶은 손가락질의 구실이 되기도 했다. 짊어질 책임의 무게를 알게 되니 자연스레 몸을 움츠리게 되었다.
과감하고 시끄럽던 사람이 상처 입지 않는 최고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최대한 쭈그린 채 가만히 숨어 있는 것. 그러면 아무것도 잃지 않아 괜찮아진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손해도 없고 재미도 없는 날들의 연속. 잠깐만, 내가 왜 이래야 하나? 나쁜 짓으로 세상에 해가 되는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숨통이 붙어있는 한 뭐든 이것저것 해 보는 게 지금보단 낫지 않나? 아, 어쩌라고!
하지만 무력해진 영혼이 다시금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슬프게도 쉽지 않은 태세 전환이다. 딱히 의지하고 있는 종교도 없는 터라 나를 품어 줄 신도 없다. 나는 그저 거대한 우주의 창백한 지구 속 작은 미물일 뿐인데 뭐가 이리 유달리 고달플까. 나를 구원할 당신은 대체 무엇인가요, 부디 당장 응답하시오.
답을 찾고자 여러 이야기를 뒤적거리다 '잠재의식의 힘'이라는 단어에 멈춰 섰다. 과할 정도로 자신의 잠재력을 믿는 것인데, 비과학적이면서도 살짝 사이비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종교를 갖는 것보다 쉬워 보이고,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며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도 않으니 해볼 법하다. 그냥 난 잘 된다! 믿으면 끝. 어라? 어떤 사람은 여기에 이름을 붙이고 친구처럼 부르며 사네? 오케이, 접수. 지금부터 나의 구원자는 오직 내가 되리라.
그리하여 나는 내가 잘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마음에 애칭을 붙이기로 했다. 뭐가 있을까. 내 평생의 행복에 언제든 어울리는 이름이. 고민은 길지 않았다. 거창하지 않지만 선명히 기뻐지는 어떤 순간이 떠올랐으니까.
생각만 해도 평온해지는 네 글자. 크루아상. 단단한 듯 촘촘히 쌓아 올린 초승달 모양, 그럼에도 파사삭 부서지는 부드러운 방어막, 흐뭇한 미소로 향긋하게 남는 버터향. 이 작은 천국을 만든 건 고작 밀가루와 버터, 소금, 이스트뿐이라니. 가장 평범하고 따뜻하면서도 언제나 다정하고 꿋꿋한 존재. 이것이야말로 내가 연마하고 싶은 구체적인 기술 그 자체가 아니더냐!
이것이 나의 [해맑은 크루아상 권법]의 유래다. 무작정 나를 믿고 사는 삶의 태도. 나를 배신한 노력을 마주쳐도 알맞게 슬퍼하다 다시 또 깨무는 순수한 한 입.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오면 다짜고짜 크게 외친다. "해맑은 크루아상 권법!"
*추신. 여전히 못 미더우면 주문 앞에 "뭐 어쩌라고"를 두 번 외쳐 시동을 거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