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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몰뚜뚜 Apr 23. 2024

06) 식은땀이 흐르는 부동산 전자계약 시스템

국토부에게 묻습니다. 이 앱 누구 짓입니까.



드디어 밝은 본 계약서 작성의 날. 계약서가 완전히 작성되어 완벽한 계약 완료가 되기 전까지 안심할 수 없다. 혹시나 매도인(집주인분)의 마음이 바뀌어 계약을 파기할지도 모른다. 긴장감을 숨긴 간단한 인사 후 부동산 내 테이블에 함께 마주 앉았다. 나와 L 둘 다 부동산에서 무언가를 계약해 본다는 게 처음이다. 더군다나 전세나 월세가 아닌 수억 원의 돈이 오가는 매매 계약이라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나만 아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다행히 굳이 계약을 파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제 우리는 마음을 놓고 첫 부동산 매매 계약을 즐기면 된다.

디딤돌 대출의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는 조건 중 전자계약 시스템이 있다. 종이 계약서가 아닌 국토부가 만든 전자계약 시스템으로 매매 계약 체결 시 0.1%의 우대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흠 그게 뭐 큰 가? 싶을 수 있으나 백만 원, 천만 원도 아닌 억 단위의 돈에서는 0.1%가 매우 크다. 때문에 당연히 전자계약을 요청했다. 하지만 얼마 안 된 이 시스템에 모두가 익숙치 않아 어떤 소장님은 그런 거 모른다고 안 해주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 쪽 소장님은 젊기도 했지만 최선을 다해 우리의 요청사항을 모두 반영해 주시는 분이셨다.




"아! 신분증 놓고 왔네요!"



아뿔싸. 어째서인지 매도인이 신분증을 갖고 오지 않으셨다. 대체 왜?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다주택자이신 거 같은데 부동산이 너무 익숙한 공간이라 편해서 깜빡하신 걸까. 다행히 동네 주민이셔서 집이 가까워 잘 해결됐다. 그런데 매도인 쪽의 소장님이 공인 인증서 비밀번호를 모른다고 하신다. 우리 쪽 소장님과 매도인 쪽 소장님이 달라서 2개의 공인 인증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국토부에 전화했더니 점심시간이라 안 받는다. 간신히 받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공인중개사 협회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도 점심시간이라 안 받는다. 나도 배고픈데! 이렇게 된 김에 그냥 전자계약 말고 종이에 하자고 하면 어쩌지? 우대금리 0.1%가 얼마나 소중한데 이걸 놓치면 어쩌지? 아니면 다 귀찮으니까 가계약금 낸 거 물어줄 테니 이참에 더 비싸게 팔겠다고 하면?



"소장님. 저 같으면 이 시간에 찾으러 가요. 거기 사무실에 전화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다행히 우리의 히어로, 우리 쪽 소장님께서 협회나 은행에 직접 가서 비밀번호 찾아오시라고 잘 정리해 주셨다. 우리 소장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진행으로 매도인 쪽 소장님은 어쩔 수 없이 어딘가로 떠나셨다. 잊어버린 비밀번호를 찾으러. 은행인지 공인중개사 협회 사무실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도 어찌 되었건 해결되었다.


하지만.
진짜 빌런은 따로 있었다.



아무도 몰랐다. 앱스토어 평점 1.2를 기록한 국토부의 [부동산 전자계약]앱의 명성을. 온갖 욕설로 도배된 리뷰를 볼 때도 예상치 못했다. 다들 왜 이렇게 화가 많으실까나.

(2023.6 기준. 부디 지금은 업데이트 되었길 바란다.)



로그인이 안된다. 인증번호 문자가 와도 눌리지 않는다. 계속 다시 하고 다시 하고 다시 해서 간신히 마지막 단계까지 왔는데 앱이 꺼진다. 아니 잠깐만, 이런 거를 IT강국인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 V국토교통부V에서 만들었다고? 이럴 수가 있어? 누구야? 이거 깜짝 카메라 아니야? 개발자 누구야? 하 방법이 없다. 그저 될 때까지 무한반복 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대략 1시간 정도? 부동산 테이블에 모두가 모여 앉아 각자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는 1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무더웠던 여름날, 선풍기 바람만 간신히 오는 자리에 앉아 식은땀을 흘리던 그 순간. 열은 바짝 오르고 인증번호는 계속 쌓이고. 당시 매도인은 진작에 포기하셔서 우리 소장님이 폰을 넘겨받아 그 자리에서 PASS 인증까지 만들어 마찬가지로 될 때까지 계속 다 해주셨다. 어찌어찌 마침내 해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안이 있다면, 그 앱을 만든 관련자들은 국가가 나서서 압수 수색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본 계약서 작성이 완료되었다. 이제 계약금 10%까지 낸 상황. 아직은 우리 집이 아니다. 잔금 일자까지는 대략 1개월 반. 나머지 잔금 90%까지 내야 진짜 우리집이 된다. 그때까지 우리는 혼인 신고부터 대출 신청 및 실행, 총 잔금 준비 등 각종 준비를 해야 된다. 그 기간 동안 나와 L은 명확한 역할 분담을 했다.



(우리 둘의 행복을 열렬히 기원하던 나의 제주 한달살이)


나는 앞으로의 우리 인생에 행복이란 무엇인지 제주 한달 살이를 통한 보헤미안 정신 수련, L은 육지에서 대출 및 매매 계약 전반에 대한 계획 수립. 마치 나는 그저 놀고먹기만 하고 L 혼자 고군분투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L이 먼저 부동산 실전 스터디를 맘껏 누릴 수 있도록 친절히 양보해 준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앞으로도 부동산의 다양한 경험들을 함께 쌓아나갈 것이니까요!



파하핫!

HAPPY TOGETHER!





국토부의 전자계약 앱과 싸우던 본 계약서 작성일, 혹시라도 매도인이 계약을 파기할까 불안해하던 그 날, 미친듯이 질주했던 그 단 하루의 일정은 아래와 같다.



1) 11시 : 매트리스 쇼룸 방문 및 상담.

2) 1시 : 주민 센터에서 인감 발행.

3) 3시 : 부동산에서 매매 계약.

4) 4시 : 구청에서 혼인 신고.

5) 6시 : 할머니집 근처 간 김에 같이 가서 인사.



나의 제주 한달 살이까지 3주도 채 안 남은 시점이었다. 나는 퇴사를 했어도 L은 직장인이기에 연차를 써야 한다. 고귀한 연차날인만큼 그 하루에 여러 개의 일들을 몰아서 처리해야만 했다. 아마도 이날 대중 교통비만 이만 원씩 썼을 것 같다. 위치가 다 제각각에 있었는데, 가장 비싼 정열의 레드 라인 신분당선을 타고 다녔으니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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