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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히 Apr 13. 2024

산수유 피던 날

반곡마을을 아시나요.

내게 봄꽃은 언제나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벚꽃이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나오던 앞산의 수줍은 진달래와 담벼락 위 개나리, 누구보다 앞 달려와 내게 봄을 알려주는 전령이었다.


태어나 자란 도시의 봄꽃은 꽃송이가 만개할 때면 밤을 환하게 밝히는 벚꽃으로 전국을 들썩이는 축제가 우리들을 설레게 했다.


유난히 날씨 변화가 심한 금년 봄은 꽃소식이 자주 들렸다. 다른 해보다 더 빨리 꽃잔치를 볼 수 있을 거라며 이곳저곳의 꽃소식에 마음이 설레던 3월.      

주변 지인들의 꽃 사진이 카톡방에 바쁘게 올라올 때마다 그저 감탄만 하다가 지난 주말 남들 다 다녀왔다는 어느 곳이 문득 떠올라 무작정 길을 나섰다.


평일의 도로는 한산했고 그곳의 꽃 행사는 축제기간이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남은 꽃들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도착한 곳은 바로 전남 구례였다. 은은한 꽃 이름이 마음을 편하게 잡아끄는 '산수유꽃의 마을’이다.

한 시인의 시 제목이 와락 당겨온다.     


산수유, 그 환한 꽃자리 – 김교희     

부푼 속내

총총 쏟아지누나

하늘 가득 자지러지는 노란 수다

한순간에

와락 안겨, 툭 터지는 봄날      

 


 온 천지가 노란 산수유마을에서도 풍경이 좋다는 ‘반곡마을‘은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마을 어귀부터 자그마한 산들 위에 핀 산수유가 눈을 사로잡았다. 몇 그루의 나무에 핀 모습과 다르게 연한 파스텔로 그린 듯 겨자색의 꽃들이 산 전체를 가득 감싸고 있었다. 은은하게 피어있는 노란 산수유를 뿌려놓은 듯 마을은 '3월의 봄' 바로 그 자체였다.     


산수유 가득한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축제가 없었다면 그저 지나칠듯한 조용하고 한적한 산골 마을이었다. 도로변을 지나 주차를 한 후 마을로 들어섰다. 날씨는 봄이 왔음을 알리듯 포근하기 그지없었고 살랑대는 바람은 무거운 겉옷을 벗게 했다. 옆으로 난 마을 골목골목, 어린 시절 시골 고향처럼 정감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나무로 만든 데크 길 또한 운치를 더해 주었다. 눈길 가는 곳마다 그림 같은 산수유와 맑은 하늘의 조화가 예술이었다. 바쁘게 사진을 담다 옆을 본 순간 놀라운 모습에 걸음을 멈추었다. 좁다란 골목골목 시골집들이 나란한 이 마을 중심에 숨어있듯 자리한 커다란 계곡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 이런 멋진 계곡까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잔치를 해도 좋을 만큼 널찍한 계곡엔 자연이 선사한 바위들이 평상처럼 빼곡히 놓여있었다.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아 흐르는 계곡물소리와 산 위에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를 보고 있는 내가 전설 속 신선 같았다. 그 자리에 누워 자연과 하나가 되어 하루종일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동행한 선배와 서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주며 봄 천지가 선물해 주는 그림 같은 시간 속에서 물아일체의 경험을 했다.      


누군가 말했다지.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생각 없이 떠난 내게 행복이란 큰 선물이 산수유 모습으로 다가온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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