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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전담 교사의 20년 이야기

얘들아 나랑 얘기하자!

by 가히


7살 귀요미로 내게 온 A는 순둥순둥한 성격의 조용한 아이였다. 성실하고 말없던 아이는 ‘모범생’이라는 세 글자가 딱 어울리는 제자였다. 초등 고학년을 지나며 키가 부쩍 자라더니 중2 무렵에는 내 키와 비등비등해졌다.


A가 중1이던 어느 날, 교실에 들어선 순간 그녀의 얼굴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하얀 피부에 선한 눈매를 가진 그녀의 눈두덩 위 아이라인과 눈 밑의 검은 화장 자국이 선명했다. 그녀의 순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어설픈 모습 터지는 웃음을 꾹 참으며 못 본 척 수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업 중에도 몇몇 여자아이들의 허였게 들뜬 피부 화장이 눈에 띄어 교사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춘기를 앞두었거나 이미 시작한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단순한 지적이 아니라 ‘참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오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구나.”


영어로 진행되던 수업에서 한국어로 바뀐 내 말에 아이들의 표정이 순식간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언제일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장난기 많은 남학생 몇몇이 대답했다.


“지금이요.”

“태어났을 때?”


음,. 그래, 모두 맞는 말이야. 하지만 우리 인생의 ‘황금기’, 진정한 성장이 이뤄지는 시기는 바로 사춘기란다.”


“네에??”

“예에~~?”


사춘기를 단순히 반항기나 심리적으로 혼란한 시기로만 인식하던 아이들에겐, 내 대답이 생소했던 것이다.


"사춘기는 청춘의 피가 출렁이며 어른으로 나아가는 시기다. 이 시기에는 자아가 형성되고 자존감이 자라나는 엄청 중요한 시기란다, 지만 신체적 변화가 심해져서 감정 기복, 이성에 대한 관심, 외모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질 수 있어. 왜냐하면 전두엽이라는 뇌의 한 부분이 급격하게 발달하기 때문이지, 이런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란다."


교실 안 아이들의 표정이 진지해지며 집중하는 모습들에 내심 놀라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말이야. 이 아름답고도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너희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단다. 사춘기는 그저 지나가는 시기가 아니라, 너희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기 때문이야.”


나의 진심을 담아 설명을 이어갔다.


“자, 어떡할 거야? 하루 종일 거울 보며 어설픈 화장으로 예쁜 얼굴 망치고, 야한 영상에 시간을 낭비하며 이 소중한 사춘기를 흘려보낼 거야? 너희 인생의 절정을 만들어 줄 이 귀한 선물을 그렇게 보낼 거냐고!”


나의 질문 섞인 호소에 아이들이 공감하는 표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사춘기가 왔다 싶으면, 선생님과 함께 해결하자. 나도 그 시절을 지나온 선배니까, 언제든 대화는 환영이야. 알겠지?”


마지막 나의 당부에 “네!!”라는 그들의 시원한 대답으로 마무리했던 수업이었다. 다음 날, A는 말끔하게 세수한 뽀얀 얼굴로 내게 인사하며 수업에 들어왔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교육 현장에서 20년 넘게 수많은 제자들을 만나온 내게 벌써 10년도 더 지난 과거이야기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내 마음에 생생히 살아 있다.


흰 도화지처럼 무엇이든 새길 수 있는 아이들, 스펀지처럼 흡수력 좋은 그들을 맡아 교사로서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 제자들과는 공감이, 학부모들과는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던 그 시절은 내겐 평생 간직할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긴 세월 동안 나의 교육방식에 반대하는 학부모와 학생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엄격함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려는 내 진심을 이해하고 지지해 준 부모님들과, 교사의 진심에 공감해 준 제자들 덕분에 나는 참으로 운 좋은 교사였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변했다. 초등학생의 메이크업도, 자유로운 이성 교제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교육의 기준 역시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교육이란,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성장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어야 하는 책임이 수반되는 직업이어야 함을.


유행을 따르든, 환경이 바뀌든, 아이들에게는 늘 멈춤’과 ‘질문’의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지금의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이 진정한 교육의 본질이 아닐까.


교실은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 그 이상이며 삶을 함께 나누는 작은 사회다. 교사는 그 안에서 가장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아이들을 정직하게 대하고, 존중하며, 기다려주는 자세로 다가갈 때 비로소 진짜 교육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자신에게 묻는다.

“이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교사의 기준은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 아이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나 싶은데 벌써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났다. 계절이 바뀌는 이맘때쯤이면 또다시 달라진 모습으로 내게 놀라움을 안겨줄 제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이번엔 어떻게 젊은 그들과 공감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사춘기 전담 교사의 시간은 올해도 쏜살같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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