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십 나이에도 특별히 아픈 곳 없는 아줌마 경자 씨는 천성이 밝고 씩씩하다. 내겐 이모 같은 그녀는 또래의 노인들과는 많이 다르다.
젊은 시절 애 딸린 아저씨를 만나 고생하며 키운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키고 지금은 혼자서 산다. 일찍 세상 떠난 남편을 지극정성 보살피며 부부의 정도 좋았다. 그럼에도 사무치게 그립거나 생각나지는 않는단다. 혼자 사는 생활이 무료할듯하지만 수영과 노래교실 등의 취미로 바쁘게 사는 아줌마는 자칭 젊은 언니다.
경자 씨를 사로잡은 즐거움은 트로트열풍과 함께 시작되었다. 오디션 가수 임영웅이 아줌마의 모든 것이 되었다. 가수를 향한 일편단심은 이제는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 것이다.
눈을 뜨면 방안 가득한 '우리 영웅이'의 사진들과 눈 맞추며 그의 달콤한 노래로 아침을 맞는다. 대형 브로마이드 속 영웅이와 대화하며 아침을 먹는다. 가수 임영웅의 일정확인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그의 모든 공연과 발표곡, CD, 그의 출연 TV프로그램과 유튜브를 확인하고 시청하는 것이 경자 씨의 하루다.
임영웅콘서트는 아줌마가 다시 태어나는 시간이다. 서너 시간 이상 이어지는 공연동안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는 기본이다. 무대 앞까지 나아가 박수와 춤으로 응원하며 찐 팬의 열정을 원 없이 보이고 오신단다. 상상 안 되는 극한에너지가 짐작되는 왕팬의 열정이다. 아줌마의 신나는 설명에 엄마는 믿지 못하겠단 표정에 부러운 듯 한마디 하신다.
" 참 기운도 좋다!!"
최애가수 임영웅 콘서트는 아줌마에겐 보약이자 치료제이고 삶의 원동력이 분명하다.
하늘에 별따기 같은 콘서트티켓 구매에 자식들이 모두 나서 합심을 한다고 하니 가족들의 단합도 그녀의 임영웅사랑에 큰 몫을 한다.
잘 아는 옷가게에서 경자 씨 최애가수의 사진이 들어간 홍보물품들을 보자마자 나도 몰래 탄성이 나왔다. 바로 경자 아줌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임영웅 가수를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아!! 이 가수의 왕팬이자 찐 팬이 저의 이웃이어서요"
"아, 그래요! 그럼 홍보상품 많이 드릴게요"
가수얼굴이 들어간 엽서들과 티슈를 비롯한 생활용품을 종이가방 안에 가득 받아 들고 왔다. 왠지 모를 가슴 뿌듯함으로 기분이 좋아져서 이 소식을 엄마에게 알렸다.
"아줌마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지금 바로 우리 집에 온단다. 지 자식보다 더 좋은가보다"
"자식보다 더 낫지,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해주는 보약 같은 우리 영웅이잖아!ㅎㅎ"
엄마집엔 벌써 아줌마가 기다리고 계셨다. 물건들과 사진들을 보며 입이 함박만 해진 아줌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이 되었다.
" 오메, 우리 영웅이 징허게 이쁘네. 어찌 사람이 이렇게 곱게 생겨쓰까! 이 휴지는 내 평생 간직 허야겄다. 이 귀한 것들을 그냥 받아도 쓰까 모르겄네. 고마와서 어쩐다냐"
경자씨의 찐 고백 같은 감사가 넘친다.
그날 저녁 전화로 다시 고맙다고 하시며 이어지는 아줌마표 인사ㅡ"건행하시게~"
아줌마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뜨거워진 가슴은 행복한 하루, 최고의 인생을 만들며 경자 씨의 새로운 청춘시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