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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히 Aug 31. 2023

아빠는 아흔셋 청년

100세 아빠 파이팅!!

"아빠,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하다니까 마스크 꼭 하시고  운동 적당히 하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조깅을 취미로 하는 친정아빠의 올해 연세는 아흔셋.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에서 공원까지 걷고 뛰며 하루 두세 시간 운동이 일상이 된 지 수십여 년 째다. 코로나동안 집 앞의 초등학교로 운동 장소가 바뀌어 나와 내 동생들은 그나마 안심이었다. 운동하시는 동안 핸드폰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한 것이 여러 번이었기 때문이다. 산에서 운동하는 아빠를 만난 지인들은 아빠의 건강한 모습에 다들 깜짝 놀라며 이구동성 부럽다는 말을 전했다.


영어통역관으로 40여 년 근무하셨던 아빠는 근무하는 직장한국근로자들의 근무여건개선과 권리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서슬 퍼런 60년대 군사정부시절 노조를 결성해 힘없는 한국근로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맞섰고 그들을 위한 법정싸움에 영어변론까지 도맡았다.


어린 시절 이상한 사람들이 수시로 우리 집에 몰려와 안방과 부엌 살림살이까지 들춰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요즘 말하는 가택압수수색이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아빠는 노조위원장직을 계속하셨고 우리 집은 도움을 청하고 감사를 표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 홀어머니의 큰 아들로 태어난 아빠는 영특한 머리로 일제강점기 중. 고등학교를 친척의 도움으로 마치고 자립으로 대학교를 졸업하셨단다.


이후 일류대학 졸업생들만 갈 수 있다던 공군장교시험에 합격해 군 복무를 하셨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미군들과의 생활에서 아빠의 영어실력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시절 미모의 한 여대생이 제복과 아빠의 젠틀한 매너에 매료되어 구애했지만 차이나는 가정환경 탓에 정중히 거절했단다. 외할야버지젊은 시절 연애담에 내  아들은  "우와! 우리 할아버지 정말 멋지셨네~~"를 연발하며 아빠의 청춘삼매경에 빠졌다.


퇴임 후 영어교육을 원하는 사람들의 성화에 영어수업을 나이 90이 될 때까지 계속하셨다.


당시 우리 자매는 입버릇처럼 건강하고 총기가 좋은 아빠를 은근 자랑스러워했다.


"'세상에 이런 일' 프로그램에 아빠를 출연시켜야 해"

"아니, 이런 노인한테 왜 배우러 오는 거야"


유학 한번 하지 않은 영어 비전공자 아빠의 영어는 반평생 통역으로 갈고닦았다 하더라도 놀라울 만큼 완벽했다. 우리 다섯 딸들 또한 젊은 시절 아빠로부터 받은 영어교육의 수혜자들이니 운 좋은 자식들이다. 언어 DNA와 교사로서의 재능을 온전히 물려받았으니  또한 받은 큰 딸이다.


평생 건강하고 절대 늙지 않을 것 같던 아빠의 모습이 매년 달라진다. 인간이면 누구나 오는 늙음이지만 상한 마음은 아픈 가슴이 되었다. 그럼에도 딸들의 안부전화에 아빠는 한결같다.


"엄마 아빠는 잘 지내고 있으니 전혀 걱정하지 마라.
응, 괜찮아 늙으면 좀 아프기도 하는 거지"


아흔이 넘었지만 마음만은 청년인 우리 아빠.

자신의 일은 뭐든지 스스로 하시며 먹고 싶은 음식, 집안청소도 하셨던 신식남자 우리 아빠.


남아선호사상이 높았던 시대에도 다섯 딸들을 끔찍이 여기고 단 한 번도 아들이란 말을 입 밖으로 내본 적 없는 딸바보 우리 아빠.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지금처럼 그대로이길 바라는 내 마음에 오늘도 다시 욕심을 넣는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청년 같은 100세 아빠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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