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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세기소년 Aug 20. 2020

왕자는 서울대에 가고 싶다 #3

김치 미러

배달 일을 오후로 빼고 나왔다. 내 발걸음은 서울대학교를 향했다. 그나저나 궁금했다.


‘핸드폰이 어쩌다 서울대에서 발견 되었을까?’


 아무렴 상관없었다. 핸드폰을 찾을 수 있으니. 심지어 그녀는 나를 서울대학교 학생이라고 믿게 되었다. 아마 그래서 말투가 상냥해 졌을 것이다. 내 생각에 그녀는 서울대에 들어가서 까지도 생계를 위해 성가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삶에 어느 정도 회의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나 같은 동지를 만난 것이다. 분명 어마어마한 공동 소속감 대한 표현이었다. 난 귀여운 그녀의 얼굴이 꽤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서울대 학생이라니 한참 달라 보였다.


 집 앞 골목길에서 나서면 낙성대역이 나왔고 더 걸어 언덕을 한참도안 올라가다보면 서울대학교 후문이 보였다. 그쯤 되니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올걸 그랬나 약간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이내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서울대’ 학생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젊은이들 같았다. 하지만 서울대학교라는 타이틀이 그들을 특별하게 보이게 했다. 후문 쪽에 가까워질수록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분명 서울대 학생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들의 옷차림이나 생김새를 하나하나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다 문득 무릎이 늘어나 너덜거리는 내 운동복 바지와 노랗게 물든 머리가 눈에 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면 얼른 면바지를 사 입고 머리도 검은색으로 염색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안경이나 가방도 사면 괜찮을 것 같았다. 서울대 학생이 된 것 같았다. 난 더 무심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행진했다. 이놈들이 나를 평범한 서울대 학생 중 한 명이라고 인식했으면 했다.


 어느덧 후문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캠퍼스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대학교는 이런 곳이구나 싶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열이나 행, 교복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나 넓은데 고추 밭 이나 논도 없다. 서울의 흔한 도시도 아니었다. 내가 본 이곳은 확실히 다른 새로운 곳이었다. 나는 뭐랄까 내 인격이 웅장해지는 듯한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와는 오후 한시까지 도서관 앞에서 보기로 했다. 나는 캠퍼스 지도가 그려진 표지판을 무심한 척 힐끔힐끔 쳐다봤다. 대놓고 보다가는 내가 서울대 학생이 아닌 것을 들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위치 파악이 너무 힘들어서 대놓고 봐도 이해가 가지 않을 판국이었다. 그때 다른 놈들이 내 옆에 서서 지도를 열심히 훑어보고 있었다. 대충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교양수업 조별과제 때문에 박물관 앞에서 조원 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것 같았다. 그들은 딱 봐도 신입생인 듯 보였다.


"저기.."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네?" 둘 중 한 안경 잡이가 대답을 했다. 그 안경 잡이 놈은 눈알시력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안경을 쳐다보는 내 눈이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하긴 저런 망원경을 끼고 책을 봤으니 서울대에 왔겠지 싶었다.

"무슨 과세요?" 내가 물었다.

"저는 경영학과요. 얘는 경제요." 망원경을 쓴 놈은 친절하게도 자신의 전공을 술술 불었다.

"일학년이구나. 그렇죠?"

"네." 녀석은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아, 그냥 좋아 보여서요. 저는 곧 군대 가는 이학년 이거든요." 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진짜 좋아 보여서 뱉은 말이었다. 그래서 기지를 발휘해 군대라는 수단을 이용했다.

"아, 그렇구나! 저희도 곧 따라갈게요. 선배님." 녀석들의 반응은 멍청할 정도로 순진했다. 확실히 믿는 눈치인 것 같았다. 아마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말을 걸어준 사람이 없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아니에요. 원래 이렇게 말 거는 사람 아닌데 그냥 심심해서. 고마워요. 그럼 먼저 갈게요. 나중에 캠퍼스에서 마주치면 인사라도 해요!" 나는 한술 더 떠서 용감 해졌다. 호기심 많은 신입생 녀석들은 자유분방한 선배 와도 같은 내 모습에 호의를 표했다.

"형! 안녕히 가세요!" 망원경은 마치 동네에 친한 형이라도 생긴 듯 좋아하는 눈치였다.    


 나는 도서관의 위치를 확인하고 열심히 뛰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했다. 외부인으로 보지 않았으면 했다.


 우리는 서로 단박에 서로를 알아봤다. 그녀는 단화와 청바지를 입고 남방을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팔에는 야구 잠바를 걸쳐 올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알파벳으로 서울대학교라고 쓰여 있는듯 했다. 학과 에서 준 옷인지 뭔가 근사했다. 그녀는 어색하게 나를 보고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핸드폰 여기요. 그런데 무슨 과세요?" 그녀가 핸드폰을 건넸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저, 경영학과요. 그쪽은요?" 나는 아까 그 망원경 놈을 떠올렸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학과는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나마 경영학과가 전국의 대학교 어디에나 존재하고 정원이 많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저는 물리학과 에요."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하마터면 와- 하고 감탄사를 연발할 뻔했다. 물리학과라니. 그건 굉장히 어려운 공부임에 틀림없었다. 그녀는 실로 대단한 여자일 것이 분명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녀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같은 서울대 학생이라는 명목을 갖추니 대화가 한결 수월했다. 그녀는 물리학과 신입생이라고 했다. 지방에서 왔으며 가뜩이나 서울 지리도 헷갈리는데 학교마저 너무 커서 한참 적응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공감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녀는 내 반응이 재미있다며 크게 웃었다.


"열매요. 주열매. 그쪽은요?" 이름은 열매였다. 열매는 수업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고 했다.

"이름 되게 귀엽네요. 저는 전왕자에요. 성이 전 씨예요. 저도 좀 특이하죠?" 나는 그녀 앞에서 제법 여유가 생기고 있었다.

“우와. 이름이 멋있어요." 열매는 나에게 흥미를 보였다. 나는 열매와 캠퍼스를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를테면 대학에 오면 하고 싶었던 것들이나 가입하고 싶은 동아리와 같은 이야기 들이었다. 하지만 더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혹시나 내가 모르는 내용이 나오기라도 하면 금방 들킬 것 같았다. 우리는 후문에서 버스를 타고 낙성대 역 쪽으로 내려갔다. 열매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한체 헤어졌다. 난 그날의 배달일이 참 감사하고 행복했다.


 배달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 어느덧 저녁 열시였다. 씻고 나와 불을 끄니 피곤이 몰려왔다. 정말이지 피곤한 하루였다. 그때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소주 몇잔 하셨는지 목소리에 잔뜩 취기가 묻어났다. 간단한 안부 연락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그만 시골로 돌아오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시내에 있는 거래처에 혼자 고추를 옮기시는 게 영 힘든 모양이었다. 난 여덟살 때부터 두 발로 고추 옮기는 것을 거들었고, 열두 살 때부터는 자전거를 타고, 열 여섯살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옮겼다. 약 십 이년 동안 아버지의 고추농사를 도운 셈이었다. 아버지는 지금 나의 부재가 상당한 일손의 손실인 셈이다. 게다가 대학교를 다니지도 않는 내가 서울에 눌러 붙어 헛 바람만 잔뜩들어 지내는 모습으로 인식하고 나를 한심하게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만약 서울대학교 학생 사칭을 하며 돌아다니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더 나를 한심하게 보실까 싶었다. 하지만 난 아버지께 지금이 너무나도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으며 아마 내년 쯤에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학교에 들어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 와중에 나는 하마터면 서울대학교를 다니고 있다며 아버지께 큰 소리를 낼 뻔했다. 문득 생각해보니 마땅히 친한 친구도 없는 내 성격에 아버지의 존재는 내 주변에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나는 문득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버지와 전화를 끊고 한참을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데 오늘 만난 열매가 떠올랐다. 그리고 망원경 신입생도. 서울대 학생들과 캠퍼스도. 오늘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인가. 평소 나를 둘러쌓고 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하루였다. 난 서울대에 입학했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다니는 여자 친구가 생겼고 경영학과에 다니는 후배가 생겼다. 이건 뭐 더할 나위 없이 끝내주게 좋은 하루였다. 더 이상 내 인생에 맵고 빨간 땡볕 고추는 없을 것이다.


 이틀 정도 지나고, 나는 열매에게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자며 연락을 했다. 이틀 동안 꽤나 바빴다. 우선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고 학교에 메고 다닐 가방을 샀다. 무릎이 다 늘어난 트레이닝 바지는 버렸다. 그리고 서울대학교에 관한 정보수집을 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오픈 채팅방이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샅샅이 뒤졌다. 서울대학교 신입생으로서 알아야 할 기본 생활백서와 같은 지식들을 습득했다. 심지어 다른 학과 학생들과 온라인에서 만났고 만남도 개최했다. 경영대학의 주요 강의실 위치와 주 전공 과목 들도 알아냈다. 별로 어렵지 않았다. 커뮤니티에 들어가 신입생이나 입시생인척 가장하고 선배들의 비위를 살살 맞춰주면 그들이 알아서 많은 정보들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두 번째 방문하는 서울 대학교는 어느새 나에게 익숙해진 장소가 되어 있었다. 동시에 열매와 두 번째 만나는 날이었다. 나는 가방을 메고 깔끔한 면바지와 남방을 입고 나왔다. 거울을 비친 내 모습은 누가 봐도 대학생이었다. 열매와 후문에서 만나 교내 식당으로 향했고 함께 밥을 먹었다. 열매는 우리 서로 동갑이니 말을 편하게 하자고 했다.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녀와 밥을 먹는 도중 문득 궁금했다.


"그런데 열매야, 내 핸드폰은 어떻게 발견된 거야?"

"아, 어떤 사람이 내 번호로 전화 줬어. 주었다고."

"아... 그래?" 나는 더 물어보고 싶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발견되어야 할 장소는 배달음식을 픽업하는 식당이나 남의 집 대문 앞 혹은 오토바이로 지나간 차도 등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덕분에 내가 서울대 학교 학생이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난 이것도 일종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나 근데 놀랐어." 열매는 밥을 먹다 말고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뭐가?"

"우리 학교에 나처럼 식당 아르바이트 하면서 다니는 애는 거의 없는 줄 알았거든." 열매는 민망한 듯 보였지만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어서 그녀는 내 첫인상이 너무나 별로 쳤다고 했다. 또한 이렇게까지 친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말도 했다. 아마 열매가 하고 싶은 말은 첫인상으로 함부로 평가해서 미안하다는 뜻 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껏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맞다 왕자야, 너 영화 좋아한다고 했지?"

"응"

"영화 동아리 신청받던데, 같이 신청할래? 혼자 가기는 부담스러워서. 너랑 같이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아."


 열매와 나는 학식을 먹고 영화 동아리 가입 신청서를 내러 갔다. 동아리 신청서에는 동아리 활동 설명이 적혀있었다. 그때 내 눈에는 신청서 좌측 상단에 있는 학과명, 그리고 이름을 적는 란만 들어왔다. 자칫하면 대형 사고였다. 열매는 내가 당황해하는 동안 동아리 활동 설명서를 유심히 읽어 보고 있었다. 동아리 가입신청을 받는 여학생이 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가입 신청하러 오셨나요?"

"네? 네."

"어디 과세요?"

"저, 경영학과입니다."

"어? 진짜요? 저도요. 혹시 일학년이에요?"

“네."


 그 여자는 의아한듯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분명 반가움만 담긴 표정은 아니었다. 나는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올 것 같아서 정원이 가장 많다는 경영학과를 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른 위기였다. 왜 등신같이 열매랑 동아리 신청을 한다고 했을까. 너무 깊이 들어가 버린 걸까. 절대로 들킬 수는 없었다. 나는 순간 시간이 멈춰버리길 바랐다. 머리를 쪼개고 또 쥐어짰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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