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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세기소년 Aug 19. 2020

왕자는 서울대에 가고 싶다 #2

김치 미러




 서울에서 배달일을 하면서 제일 성가신 건 주소 찾기였다. 내비게이션을 보면 더 헷갈렸다. 무슨 골목이 그렇게 많고 집이 많은지 신기했다. 관악구의 주택들은 온통 빨갛고 다닥다닥 붙어있어 마치 닭장 같았다. 하루 8시간 정도 배달일을 하고 나면 자장면, 치킨, 피자 등 온갖 배달음식 냄새가 몸에 배겨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3월이 지나갔다.


 그래도 이 배달 일이 영 싫지만은 않았다. 4월의 신선한 봄바람맞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있노라면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다. 물론 짜증 나는 것들도 있었다. 대게 사람들이었다. 문을 늦게 여는 사람, 집에 없는 사람, 늦게 왔다며 소리 지르는 사람, 사나운 개가 있는 집, 팬티바람으로 나오는 사람 등 이기적이고 예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도시나 시골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있는 듯했다. 그런 놈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음식에다 해코지를 하고 싶었다. 이를테면 음식에다 가래침을 뱉는다던지 말이다.


 그날도 배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배달 마감을 누르려는데 주머니에 핸드폰이 만져지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오토바이를 샅샅이 뒤졌다. 역시 없었다. ‘배달 중에 흘린 걸까?’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했던 경로들을 수색하듯 뒤졌다.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 와서 큰 마음먹고 할부로 산 최신 핸드폰이었다. 게다가 아직 할부가 이년이나 남아 있었는데 말이다. 순간 서러움이 복받쳐 소리를 지르며 울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배달 음식을 픽업했던 식당에 갔다.


 “저희 배달 주문 없는데요?”


 종업원이 나를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내가 무슨 용건으로 들어온 지 알리는 없었다. 하지만 하이바를 착용한 내 모습만을 보고 말하는 종업원의 태도에 나는 약간 짜증이 났다.



“그게 아니라 제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요. 여기 분실된 휴대폰 없었죠?” 최대한 침착하고 정중하게 물었지만 너무나 급했던 탓에 하마터면 사투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네.” 종업원은 찾아 보기는커녕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혹시 매장 전화로 제 핸드폰에 전화 한 번만 해도 될까요?”

“아니요.” 종업원은 내 말을 끊더니 칼같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내가 무척이나 성가신 존재라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 말이다. 쬐끄만한 여자 종업원은 앞치마를 풀더니 이내 휙 하고 사라졌다.


 화가 났다. 그런데 화를 낼 수 없었다. 정황상 화를 낸다면 내가 너무 추해 질 것이다. 음식이 왜 늦게 왔냐며 배달부에게 화를 내는 손님 새끼들과 다를 게 없는 격이 된다. 난 그런 격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서울에 살며 돈을 버는 서울 시민이니깐. 꾹 참았다.


 식당에서 나와 오토바이에 키를 꽂고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에서 전화 한 통 빌릴 사람 하나 없다니...’ 조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느 정도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 일단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그때 그 여자 종업원이 매장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제 퇴근한 듯했다. ‘그래도 귀엽게 생겼네.’ 나는 그 와중에 이런 생각을 했다. 아마 내가 화를 내지 못했던 것도 그녀가 꽤 귀여워서였을 수도. 하지만 방금 전 그녀에게 무시받은 내 모습을 생각하니 다시 화가 치밀었다. 아무래도 무슨 말이라도 따끔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찰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와 핸드폰을 건넸다.


“매장 전화는 주문받아야 돼서 쓸 수가 없어요. 급하시면 이걸로 쓰세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황급히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그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미안하지만 급히 가봐야 할 약속이 있다고 했다. 난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번호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남긴 번호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난 이곳에 연고가 없으며 자취를 하느라 연락받을 수단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녀도 내가 딱했는지 찝찝한 표정으로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조심성이 있을 뿐,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다음날 배달 동료의 핸드폰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 어제 핸드폰...”

“아, 네! 찾았어요!” 여자가 한층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분명 어제와는 사뭇 다른 목소리였다.

 “정말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하마터면 기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근데, 서울대 학생 맞죠?”

 “네?”

 “아, 어떤 분이 중앙도서관 앞에서 주웠다고 했어요. 저도 같은 학교 학생이거든요.” 이제야 그녀의 목소리가 밝아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그러시구나. 안녕하세요. 어, 그러면 제가 캠퍼스 어디로 가면 될까요?” 나는 당황하지 않고 거짓말로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이나 생각했다.


“서울대.”


 혼잣말을 하고 내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뿌듯했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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