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남겨진 가능성
연재 16. 마무리
확실히 '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 ‘내가 해봐서 아는데' 투의 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특히 느낀다. 10년 넘게 해 보니 말이야, 걔네들은 안 해봐서 그래, 요즘 '마이' 편해졌네, 우리 때는 안 그랬다! 등등. 사실 요즘 저런 식의 말들이 너무 많이 풍자와 조롱, 경멸의 대상이 되어서 그렇지, 누구나 자기가 경험을 했으면 그것에 대해 말하고 조언하고 표출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내가 그거 해봤는데, 거기 가봤는데, 걔 만나봤는데, 그 선임 겪어 봤는데 XXX야,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먼저 경험을 해본 사람으로서 앞으로 겪을 새로운 사람, 후배들에게 말해주는 건 자연스러운 행위다.
물론 작금의 꼰대 담론이 단순히 자기 경험을 '라떼는…'이라고 말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 경험을 가지고 되지도 않는 권위를 내세우거나 자신만이 답인 양 고압적으로 꽉 막힌 태도를 취하는데서, 듣고 경청하는 기능 자체가 사라지고 마비되어버린 고루함에서, 그런 고리타분한 양반들이 보편적으로 여기저기 많기에 비판을 넘어 환멸의 대상이 되고 있는 면이 강할 것이다.
나이만의 문제는 아니다. 저런 식의 '나 때는', '우리 때는'으로 시작되는 표현을 가장 많이 하고 들었던 순간을 생각해보니, 스무 살 갓 넘은 청년들로 가득한 군대생활을 할 때였다. 이등병 때 나는 이 부대 안에 21세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악습이 널려있다고 생각했다. 고민을 같이 했던 졸병들과 얘기할 때면 "고인 물은 썩는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라고 말하며, 우리가 선임이 되면 그렇게 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을 했다.
그러나 계급장 막대기를 하나 둘 늘려가면서 이 친구들은 고참들과 별반 다를 거 없이 똑같이 물들어갔다. 후임들을 향해 "세상 많이 좋아졌다, 나 때는 ‘이렇고 저렇고’ 했는데", "우리 때 같았으면 너희들은 ‘어쩌고 저쩌고’ 되었을 거야!"라며 고함을 쳐댔다. 더 악랄하게 과장해서 '라떼는 말이야'을 부르짖는 녀석도 있었다. 나 역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으나, 엇비슷하게 꼰대스러운 선임이 되어간 면이 꽤 있었을 것이다.
그때 느꼈다. 변화란 힘든 거구나. 관성의 작동은 이렇게 무겁구나. 새파랗게 젊은 청년들도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질서에 편입되고 습관에 물들어버리는데,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은 오죽할까.
"지금 이웃의 비명을 듣지 못하고, 경주마처럼 시야가 가려져서 이익을 향해 돌진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나는 알고 있다. 이 '젊은 꼰대'들이 늙으면 나보다 더 꽉 막힌 꼰대가 된다. 이것은 내가 노망 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 김훈, 한겨레 '거리의 칼럼'
노 작가의 이 말에 적잖은 공감을 느낀다. 상병, 병장이 되며 아무 거리낌 없이 '꼰대짓'을 하는 선임으로 되어갔듯이, 세상에 물들어가고 마흔, 중년이 되고 기성세대가 되면 어느새 후배들에게 '경멸스러운 꼰대'라고 공격당하는 대상이 될 것이다. 386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글에서 다루었지만, 비판적인 면이 있고 후세대들이 바꾸고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회의적이기도 하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부끄러움에 대한 인식조차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경쟁에 이기면 승자고 뒤쳐지면 패자다. 그것이 공정이고 세상의 이치다. 경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오류나 모순에 대해, 열차의 뒤칸에 탄 이웃의 고통과 비명에 대해서는 '세상이 원래 그래. 안락한 퍼스트 클래스, 비즈니스 석에 아무나 앉는 건 아니지 않느냐' 되레 무시하고 눈을 감아버리는 퇴행적인 어른으로 무감각하게 흘러가는 기성세대가 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그저 그렇게 그냥 시간이 흘러가버려서,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꼰대로 돌변한 아침을 맞이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다. 머지않은 마흔을 앞두고 나 개인으로서도 압도적으로 밀려왔던 불안과 방황의 상념과 더해서, 한번쯤 제대로 짚고 정리하며 지금의 '전환 시절'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본인의 삶은 물론 사회 전반의 진전 혹은 퇴보에 일정 정도씩 자기만의 방식으로 점을 찍고 족적을 남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흔적을 남길 것이다. 나는, 밀레니얼로 통칭된 우리 세대는 무엇인가. 어떻게 인생 항로를 걸어갈 것인가.
위로와 한탄은 이제 그만 되었다. 결국은 결단이고 행함이다. 지금 우리가 그토록 욕하고 환멸을 느끼는 386을 비롯한 기성 '꼰대'들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 과연 그들보다 덜 꼰대스럽게 될 수 있을까. 앞서 말했지만 나는 아직 명쾌한 확신이 없다. 그럼에도 확신을 불어넣어 본다면 무엇이 있을까? 이번 작업을 통해 눈에 띄게 재발견할 수 있었던 점이 있다. 개인과 조직 사이에서, 불안과 자유 사이에서 여전히 계속 표류하고 있는 자아이자 사회적 존재였다.
뚜렷한 무언가는 아직 없지만 그 사이에서 비춰 들어오는 가능성이라는 "명백한 범주"(키에르케고르)는 포착이 되었다. 사회에 녹아들면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거나 잃지 않고 오롯이 세우며 실현하고자 하는 모험을 궁리해왔고 아직 결행 중이다. 그리하여 각자의 '소규모 인생계획'을 탄탄하게 가꾸고 개별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며 조화를 이루는, 그동안 획일성이 짙었던 우리사회는 제대로 이룩하지 못한 가능성의 범주. 그 미완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은 다시 개별적인 주체들에게 실존적인 과제로서 던져진다.
말할 수 없는 건 가급적이면 말하지 않으려 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친구, 또래들이 겪은 인생의 궤적이나 경로는 비슷한 면도 있지만 상이한 지점도 많을 것이다. 개개인의 경험이 달랐을 것이다. 같은 현상과 사건을 두고도 받아들이는 수준과 반응에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 하리라. 각자의 다양한 삶에서 여전히 갑갑하고 굴곡진 세상을 향해 개성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연재 끝. 감사합니다]
대문사진: MBC 드라마 <꼰대인턴>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