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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주민 Oct 18. 2021

어제의 길, 오늘의 길

당신의 흔적, 나의 발자취, 우리의 걸음

그 골목은 할머니가 걷던 길이다. 그녀의 하루는 새벽기도로부터 시작했다. 해야 할 집안일을 마치고 미사 시간이 가까워지면 일찌감치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걸었다. 성산동 성당 가는 길이다.


집에서 나와 성산동 방향으로 걸었다. 찻길(잔다리로)이 나오면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 후 옆길(월드컵로20길)로 들어가면, 일직선으로 뻗은 좁은 주거지 골목으로 들어섰다. 따라서 쭉 걸어가면 성당이다. 그 길은 서교동과 성산동의 경계지대에 걸쳐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집들은 성산동이다. 왼쪽은 서교동이다. 걷고 있는 길은 가까스로 서교동에 속한다. 성당도 두 동의 경계 위에 서 있다. 


주위에는 빨간 벽돌로 쌓아 올린 오래된 연립주택이 보였다. 90년대 초반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있던 것과 유사한, ‘맨숀’ 이름을 붙인 회색과 잿빛이 섞인 돌로 지은 구식 연립도 여전히 있다. 필로티 구조가 아닌, 1층에 주차장이 없고 파란색 계량기 통이 앞에 보이며 지하는 창고나 보일러실로 쓰고 있는 구형 주택이다. 사이 공간에는 푸른 나무가 솟아있어 걷는 시선에 운치를 준다. 다행히 굴곡 없는 평지 길이다. 할머니는 이렇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게 얼마나 복이냐며 항시 감사해했다.


그녀는 나와 동생에게도 신앙을 물려주고 싶어 했다. 우리는 좀처럼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어릴 적 멋모르고(?) 세례를 받았고 성당과 아예 담쌓고 사는 건 그녀를 너무 슬프게 하는 것이었다. 일요일이면 뒤를 따랐다. 매사 부지런한 그녀는 먼저 나가서 앞서 걷고 우리는 천천히 끌려가는 발걸음으로 걸었다. 그녀는 언제나 성당 앞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뒷자리에 엉거주춤 있었다.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밖으로 나와서 옆길로 샌 적도 많다. 골목길을 배회하며 놀다가 미사 끝날 때쯤 다시 성당으로 갔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천천히 왔던 골목을 걸어 다시 집으로 갔다.


그녀를 떠나보내는 날


하얀 눈이 슬프고 낭만적이게 내리는 1월의 겨울날이었다. 할머니가 천천히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던 성당 계단을 나와 식구들은 그녀의 관을 짊어지고 올랐다. 동생은 눈물을 흘렸다. 매일 그녀가 오가던 곳에서 영영 떠나보낼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고 했다. 나도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냉랭한 한겨울에 새벽부터 치른 장례 미사에 식구들과 이웃 신자들이 함께 성당에 모였다. 그녀는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명절이면, 크고 작은 모임에서 얼굴을 마주하면 항상 ‘내 새끼, 예쁘다, 사랑해’라는 말을 함께 나눠 들었던 사촌 동생들도 모두 할머니의 마지막 미사에 눈물을 흘렸다. 그녀와 함께 성당을 다녔던 이웃 아주머니의 말은 그 어떤 표현보다 나의 가슴에 진하게 남았다. 


“할머니, 참 좋게 잘 사셨어”


그녀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분이셨다. 부귀영화, 유명세와도 전혀 거리가 먼 삶이었다. 그래도 그녀가 머물고 자리한 곳에서는 사랑과 관심의 흔적이 따뜻하게 묻어 있다. 


여전히 그 길을 걷는다


그 길을 걸을 때면 자주 그녀의 흔적을 곱씹고 되새긴다. 여느 때처럼 집에서 나와 성산동 방향의 잔다리로를 향해 걷는다. 유명한 중국집 ‘진진’(할머니가 걸어 다니던 시절에는 없었다) 앞에서 맛집에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며 북적이는 인파가 건너편에 보인다.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오른쪽으로 한 블록 걸어가서 옆길(월드컵로20길)로 똑같이 꺾어 들어간다. 이 골목길은 여전히 한적한 주거지다. 직선으로 뻗은 좁은 길을 쭉 걸어가면 어김없이 오른편이 성당이다. 


요즘은 이 길을 아내와 걷는다. 우연인 듯 운명처럼 그녀도 할머니 못지않은 ‘교회 언니, 누나’ 부류의 사람이고,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그 길을 걷는다. 나는 요즘도 반 정도는 이끌려 걸어간다. 골목을 걸어가다가 중간쯤에서 오른쪽 길로 새면 꽃집이 나온다. 오래된 단독주택인데 온통 꽃, 화분, 식물로 뒤덮여 있다. 대문부터 창문, 담벼락까지, 작고 꽉 찬 식물원 같다. 식물 마니아 아주머니, 아저씨가 가꾸는 ‘마덜스 가든’이란 곳이다. 꼭 옆집 어른 마냥 수더분한 인상들이다. 대문을 지나 들어가면 초록빛 식물의 세계다. 꽃, 풀향기와 더불어 전해오는 상쾌한 공기가 진하게 감지된다. 아내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길게 눈길을 준다. 아주머니,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꽃을 사서 가는 날도 잦다.


500원 동전 크기의 미세하고 작은 화분부터, 대문 앞을 지키는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까지, 집주인이 꽃인지 사람인지 모르겠다. 매일 물을 주고 가꾸고 모시느라 집을 비울 수 없단다. 휴가조차 갈 수 없다고 했다. 산책길에 들렀다 가는 것만으로도 생명력이 전해진다. 아주머니, 아저씨는 주말이면 꽃과 화분을 트럭에 잔뜩 싸들고 가서 망원시장 초입에 깔아 두고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선보이며 팔았다. 시장과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꽃을 펼쳐두었는데, 절로 화단이 만들어지는 풍경이었다. 알아서 주기적으로 ‘환경미화’를 해주니 근처 주민들은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같지는 않나 보다. 골목에서 마음대로 왜 장사를 하냐고 누군가 민원을 넣고 세게 항의를 하고 심지어 삿대질, 몸싸움까지 일어났다는데, 그 후로 아주머니는 크게 상처를 받고 장사를 아예 접겠다며 한참 우울해했다. 그런데 골목에 꽃이 사라지자, 망원시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닭꼬치와 닭껍질 튀김을 들고 와 먹으며 냄새를 풍기는 영 더 아닌 공간이 되어버렸다. 


식물을 뒤로하고 마덜스 가든을 지나 조금 더 가면 ‘키다리 아저씨’ 빵집이다. 우리밀, 유기농밀 등 좋은 재료를 쓰면서 맛도 수준급인 곳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유명한 리치몬드 제과보다 자주 찾는 작지만 큰 동네 맛집이다. 옆길로 샌 발걸음을 틀어 다시 돌아오면, 성당으로 뻗은 길이다. 변하지 않았다. 몇몇 신축빌라가 들어서거나 약간씩 새 단장을 한 집은 있지만, 걸으며 느껴지는 형태와 분위기는 그대로다. 


걸음걸이에 추억과 현재가 뒤섞인다.


그리고 전대미문의….


두터운 외투를 입고 나왔다. 할머니를 보내던 날과 같이 추운 겨울날이다. 코로나19 전염병이 동네는 물론 전 세계의 삶과 생활을 멈춰 세워버린 해의 말미, 12월 25일, 크리스마스다. 그런데 성당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주위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도 없다. ‘미사 없습니다’ 차갑게 적힌 표지판만 덩그러니 쓸쓸하게 놓여있는 풍경이 시절의 을씨년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토록 썰렁하게 비어버린 성탄절의 성당은 상상해본 적이 없다. 텅 빈 마당을 지나 할머니가 성당에 오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지나가던 성모 마리아상 앞에 섰다. 적막 속에 꾸며놓은 소박한 구유에 아기 예수가 주변 촛불과 함께 번쩍거리고 있다. 매일 새벽 시작하는 할머니의 기도는 자신을 위한 게 아니었다. 가족의 평안에서부터 주변 이웃, 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염원까지 담아서 눈을 감았다. 그녀를 닮은 성모상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오늘 밤은 그녀를 따라, 나 이외의 것들을 향해 속으로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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