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런 홍대가 좋았다
서교동에 살면서 백수였던 적이 듬성듬성 있었다. 들어오는 돈이 없으면 당연히 뭐든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 홍대입구역으로 가다 보면, 꽤 오래된 돈가스 집이 있다. 핫하거나 힙하진 않고 평범한 분위기의 가게인데 문 앞에 붙은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분은 들어오십시오. 대접하겠습니다.”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메시지를 보며, 용기 내서 들어가 볼까, 생각해본 적이 없지는 않다. 실제 반쯤은 그걸 생각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계기가 된 적도 있는데, 끝내 입에서 공짜로 달라는 말이 태연하게, 불쑥이라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말문이 막히고 가벼운 지갑은 열리고 계산을 하고 먹었다.
혼밥을 한 날이었다. 백수 같은 어설픈 프리랜서로 경계인처럼 듬성듬성 밥벌이를 하던 날, 홍대입구역 근처를 서성이다가 그 돈가스 집에 빈자리가 보여서 점심을 먹으러 왔다. 뒤이어 한 여성분이 약간은 움츠린 자세로 머뭇거리며 슬며시 가게로 들어왔다. 영화 '소공녀'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미소’(집은 포기해도 취향은 포기하지 않고 사는 도시 방랑자로 나온다)와 비슷한 풍모를 한, 사회에 반쯤 속해 있고 나머지는 유유하게 방랑 중인 것 같은 자태와 인상을 지닌 빈티지한 차림의 분이었다.
홍대 근처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분위기의 청년, 중장년 시민까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홍대는 둥지 내몰림과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이고 개성 있고 가난한 예술가, 상공인, 주민은 모두 본거지를 떠났으며 거기에 대기업 자본과 브랜드 상점, 향락과 관광의 코스들만 줄지어 들어섰다는 기사 내용은 거의 공식과 같다. 과거의 홍대가 아니고 다 밀려났다. 맞는 애석한 추세고 현상이지만, 너무 큰 그림의 도식화를 하다 보면 그 안의 나무를 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홍대가 좋았다
여전히 가난한 청년과 시민과 예술인은 홍대 어딘가를 배회한다. 뭐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 얼룩지고 때가 묻어있고 빈티지스러운, 자유로워 보이면서도 어딘가 애잔함을 자아내는, 부랑자와 예술가 중간쯤 걸쳐 있는 듯한 뉘앙스의 사람들. 홍대입구역 근처의 번지르르하게 새로 솟은 높은 빌딩 아래에서, 벽에 기대어 낡은 옷차림에 커다란 기타 가방을 멘 채 우수에 찬 눈빛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 걷고 싶은 거리에 놓인 벤치에서 부스스하고 펑키한 머리를 한 채 대낮부터 누울 듯 비스듬히 앉아서 커다란 헤드폰을 낀 채 남들 시선은 상관없이 홀로 몸동작에 맞춰 흥얼거리는, 세상과 단절된 존재인양 아나키틱한 분위기를 내뿜는 청년 등등.
물론 엘레강스한 레스토랑에 가면 이런 사람들은 보기 힘들 것이다. 대부분 거리에, 빌딩 모퉁이 구석에, 모처럼의 무대가 있는 공연장에, 플리마켓이 열리는 좌판에, 저렴한 커피값의 카페에, 가격은 착하고 양은 푸짐한 밥집에, 그리고 누구나 오가는 숲길에, 주인 없는 벤치에서 마주친다.
그런 홍대가 좋았다. 주류 브랜드와 자본이 밀물처럼 세게 밀고 들어왔지만 여전히 비주류도 흩뿌려져 있는 곳. 떠밀려가듯 표류하고 배회하면서 겨우 버티고 매달려있기도, 유유히 도시를 떠돌고 흘러 다니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 홍대에는 가격이 비싸지 않은 술집과 밥집이 곳곳에 있다. 쉽게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애당초 돈 없는 학생과 청년, 예술가를 대상으로 형성된 상권이었다 보니, 캐주얼하고 비싸지는 않으면서 소탈하고 험블(humble)한 개성을 지닌 가게들이 여전히 꽤 있다. 강남처럼 럭셔리한 고가의 집들로 채운 분위기는 아직 홍대에서는 드물고 대세는 아니다. 홍대는 강남이 될 수 없다.
그녀는 식당 앞 ‘대접하겠습니다’ 문구를 가리키며 저것을 보고 들어왔다며 자리를 청했다. 종업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안내했다. 나의 바로 옆자리였다.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와, 고를 수도 있냐며 재차 물었고, 종업원은, 그럼요, 라고 답했다. 그러면 치즈 돈가스를 먹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에서 나온 사장님이 그녀 앞에 섰다. 실례지만 이건 고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본 돈가스가 나가고요. 메뉴를 고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따로 제가 선행으로 하고 있는 거라서요.”
순간 여성분은 말문이 막히는 모습이었다. 고르라고 해서 고른 건대. 부끄러움과 섞인 어리둥절하다는 표정만 계속 짓고 있자, 사장님은 재차 말을 했다. “고를 수 있는 게 아니고요....” 메뉴판 밖에서 별도로 자신이 선행으로 하고 있는 서비스라는 말을 다시 했다.
고개를 끄덕였으면 그냥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어리둥절한 표정만을 짓고 있자, 사장님은 그분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목소리를 높여서 말을 반복했다. 매장에 있는 손님들이 웬만큼 다 들릴 정도로. 의도야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마스크도 끼고 있어서 잘 못 알아듣는다고 판단해 음성을 높인 것일 수도 있지만, 순간 나는 사장님이 하는 말의 톤과 단어 선택, 억양이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소해 보이는 감정 하나로 파국으로 치달아 버리고는 한다. 창피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돈 없어서 공짜로 먹으려고 들어온 사람이라는 게 수군수군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 알려진 모양새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장님은 기본 돈가스를 내주겠다고 말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여성분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기분과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 매장 문을 열고 나갔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그런데 그녀는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매장 앞 의자에 앉고는 종업원을 불렀다. “포장해 달라”고 요청을 하는 것이었다. 알바생 종업원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사장님에게 말했는데, 그도 열이 올랐는지 직접 나갔다. 그러고는 문을 닫고 서로 얼굴을 붉히며 날 선 말을 주고받고 받고주고 하는 모습이었다.
말이 서로 통하지 않았나 보다. 사장님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매장으로 들어와 주방으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분이 매장 문을 활짝 열더니, 가게 안을 향해 모두가 들리게끔 크게 외쳤다. “저기요, 제가 여기 앞에 몇 번씩 지나다니다가 문구 보고도 생각만 했지 그냥 갔었는데요. 겨우 마음먹고 들어왔는데....”
사장님은 안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좋은 마음에서 하는 건대, 맡겨둔 음식 찾아드시러 온 건 아니지 않냐, 고를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녀는 본인이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메뉴를 고를 수 있다고 안내받아서 그렇게 했다고 되풀이해 말했다. 사장님은 알바 하는 친구가 잘 몰랐던 거다. 사장인 내가 하는 말이 맞다. 그녀는 오기가 생겼는지 물러서지 않고 치즈 돈가스를 꼭 먹어야겠다는 투로 버텼다. 순간 매장 분위기가 싸하게 얼어붙을 정도로, 둘이 감정적으로 세게 말을 주고받았다. 주위에서 보기에는, 뭐 저렇게까지 그러나, 이해하고 주는 거 먹을 수도 있는데, 여성분이 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적당히 넘어가면 될 거 물고 늘어지는 ‘진상’ 손님 느낌이랄까.
더 실랑이하면 가게 분위기만 이상하고 곤란해질 거 같았을 것이다. 결국 사장님은 빨리 상황을 정리해야겠다고 판단했는지 알겠다고, 원하는 것으로 주겠다고 말했다.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해서 ‘이거 가지고 빨리 나가시라’는 투의 마지못하고 내키지 않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포장봉투를 여성에게 쥐어줬다. 여성분도 감사하다는 인사나 표정은 전혀 없이 말없이 받아 들고 차갑게 문 밖으로 나갔다.
주제넘지만
나는 사장님이 평균적인 사람보다 윤리의식이 낮은 분은 전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높은 축에 속할 것이다. 바쁜 점심 시간대에 공짜 밥을 줄 수 있는 식당, 많지 않다. 기본 돈가스나 치즈 돈가스나 천 원 차이인가 그랬다. 그러나 정말이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어서 마음이 동하고 상하는 건 굉장히 섬세한 부분이다. 늘 악마는 디테일. 그래서 우리는 가난한 아이들에게만 선심 쓰듯 베풀어주는 선별 급식을 하지 않고, 아이들 마음을 배려해 모든 아이들에게 조건 없이 무상으로 주자고 했고 그렇게 시행하고 있다.
돈가스 집은 무료급식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곳이 아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이토록 장사하기 어려운 시기에, 오지랖 넓게 괜한 거 했다가 감정만 상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장님께 한마디 해줄까,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명색이 사회복지를 전공한 사회복지사다. 어려운 사람과 이웃을 대할 때, 받는 사람 입장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 수 있는지 어쭙잖게나마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화가 올라있어 보여서, 그리고 요리하고 손님 맞기 바쁜 시간대라, 거기에 괜한 말은 잘하지 않는 수줍은 성격이라, 개운치는 않았지만 그냥 나왔다.
한가할 때 방문하게 되면 주제넘을 수 있지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이왕 좋은 뜻으로 하실 거면 옆에 앉은 주변 사람들이 공짜 밥 먹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지는 못하게끔, 주위에 티가 나거나 들리지 않게 조용히 대접해보시는 건 어떠하겠냐고. 그리고 그날은 “종업원이 착오가 있었나 본대, 저 서비스는 기본 돈가스가 제공됩니다.” 이런 식으로 뉘앙스만 조금 바꿔 말했다면 제가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이 넘어갔을 거 같다고. 선행 계속 잘 이어 가시라고.
참고: 대문 사진은 근처 경의선숲길에서 거리 공연 장면을 찍은 것으로, 글 속 인물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