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유행이 아닌 '중독'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정-반-합’이라 불리는 변증법적 사고방식을 통해 설명하고자 했다. 쉽게 말해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정)이 등장하면 그것을 반박하는 또 다른 이론(반)이 등장하고, 서로 상반된 두 주장은 마침내 합의에 이르러 종합적인 결론(합)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타버스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디지털 기술과 온라인 세상은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유희,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허나 디지털 기술과 온라인 세상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역으로 오프라인과 아날로그에 대한 강력한 향수도 함께 느꼈다. 온라인이 전달하지 못하는 실제 현실의 감각을 오프라인에서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름 카메라, 스티커 사진, LP판 등 복고 트렌드가 유행한 것도, 체험경제이론과 체험 마케팅이 등장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리고 온라인(정)과 오프라인(반)에 대한 사람들의 서로 상반된 욕구는 마침내 메타버스(합)의 탄생을 야기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특징을 모두 포괄하는,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논리를 모두 수용하는 새로운 세상의 탄생을 말이다.
한편 이렇게 탄생한 메타버스는 오늘날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메타버스의 필요성과 가치는 빠르게 인정받고 있다. 내가 처음 메티버스와 NFT에 대해 글을 썼던 작년 4월만 하더라도 관련 사례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10개월이 지난 지금은 아니다. 그림이나 사진을 NFT로 만들어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사연부터 각종 금융 상품과 게임, 정부 정책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이와 관련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 82조 빅딜로 눈길을 끈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건도 메타버스 사업을 위한 단계라는 분석이 있었다. 심지어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도 NFT 및 메타버스 관련 사업을 시작했을 정도이니 사실상 말을 다한 셈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편안하지가 않다. 걱정스럽기도 하다. 우리가 메타버스와 NFT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작년 12월,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 ‘로블록스’의 주가가 9% 넘게 빠지는 일이 발생했다. 하락세는 이후로도 꾸준히 이어져 현재 고점 대비 30% 가까이가 빠진 상태다. 작년 상반기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어려운 결과다. 대관절 로블록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로블록스에 따르면 작년 4분기 매출액은 약 5억 7000만 달러에 달한다. 성장세도 다소 둔화되고, 순이익도 많진 않지만 그래도 전년 대비 80%, 전분기 대비 11%가 넘는 성적을 거두었으니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닌 셈이다. 심지어 로블록스 자체에서도 주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매출액을 증대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선제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블록스가 맞이한 건 주가 하락이라는 악재였다. 이에 대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일간 활성 이용자(DAU)와 전체 유저들의 게임 플레이 시간을 꼽았다. 지난해 11월 로블록스의 DAU는 4940만 명이라고 한다. 전년 대비 35%가 증가한 수치다. 다만 문제는 10월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100만 명이 줄어든 수치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시스템 오류 같은 악재들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전체 유저들의 게임 플레이 시간에 있다. 3분기와 비교했을 때 소폭 상승한 다른 지표들과 달리 유저들의 게임 플레이 시간은 오히려 감소했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생명은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체 유저들의 플레이 시간이 줄었다는 건 로블록스가 생각보다 매력적인 플랫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한편 마크 주커버그의 메타(구 페이스북) 역시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이쪽은 오히려 더 심각하다. 하루아침에 시가총액 300조 원이 증발되는 악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애플의 사생활 보호 조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부진 등도 한몫 하긴 했지만 호라이즌 월드, 오큘러스 퀘스트로 대표되는 메타버스 관련 사업의 실패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실제로 메타는 메타버스 사업의 성공을 위해 기업의 이름까지 바꾸는 의지를 보여주었지만 100억 달러가 넘는 손실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야만 했다.
국내 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메타버스가 한창 관심을 받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달려든 곳 중 하나는 바로 게임 회사들이었다. 작년만 하더라도 NC소프트, 넥슨, 넷마블, 컴투스, 네오위즈 등 여러 게임사에서 NFT 및 메타버스 관련 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BM을 개발하고 유저들을 끌어모으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그렇다면 1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성적은 어떠할까?
국내 게임회사 중 한 곳인 위메이드는 지난해 ‘미르4’ 글로벌판을 내놓았다. 흥미로운 건 이 게임이 게임 내 이템과 캐릭터에 NFT를 도입하여 유저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P2E)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게임을 일종의 메타버스화 시킨 셈이다. 덕분에 ‘미르4’ 글로벌판은 많은 주목을 받았고, 개발사인 위메이드 역시 주가가 10배 가까이 급등하는 경사를 맞이했다.
하지만 위메이드는 이러한 성장세를 끝내 유지하지 못했다. 지난 9일, 위메이드가 발표한 영업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약 5,600억 원의 매출과 약 3,500억 원의 영업 이익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것만 놓고 보면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다. 문제는 이 중 위메이트의 가상 화폐(코인)인 위믹스가 차지하는 액수가 무려 2,300억 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게임으로 번 돈은 1,000억 원에 불과한 것이다. 아직 P2E가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도 기대치에 비해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수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24만 원이던 위메이드의 주가는 영업 실적 공개 이후에만 40%가 하락하며 9만 원 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우선 메타버스의 가치가 재정립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메타버스가 여전히 잠재 가능성이 풍부한 산업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 로블록스와 메타 주가 하락 역시 단기적인 현상일 뿐, 장기적으로는 크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메타버스와 NFT에 거품이 끼어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대충 끄적인 낙서에 NFT를 붙여 팔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SNS가 한참 유행하던 2010년 대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당시 우리나라의 싸이월드를 비롯해 수많은 SNS 플랫폼이 등장했지만 결국 시장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몇몇으로 재편되었다. 메타버스 플랫폼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닌 구체적인 수치로써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증명할 때가 온 것이다.
당장에 해결해야할 과제도 산처럼 쌓여있다. 우선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데 필요한 VR 기기 등의 보급과 대중화가 필요하다. 제도적인 차원에서도 정비가 필요하다. 가령 국내 게임회사들은 메타버스와 NFT를 활용하여 유저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돈을 벌 수 있는 P2E(Play to Earn) 모델을 제시하고 있지만 국내법은 사행성을 우려해 게임 내 가상 자산을 현금화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괜히 ‘미르4’가 국내판이 아닌 글로벌판으로 P2E를 실험한 게 아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메타버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법과 제도 측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우리가 메타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 메타버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떤 것을 즐길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해당 플랫폼에서 활동할 수 있는 명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유저들을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이 되지 않는다. 아직 제대로 된 BM 조차 자리 잡지 못한 플랫폼에서 NFT를 활용해 돈을 벌어봤자 얼마나 벌 수 있단 말인가. 로블록스의 가상화폐인 로벅스만 하더라도 (그때그때 시세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1개에 고작 10원 남짓이다. 말하자면 현재 메타버스로는 기껏해야 용돈밖에 벌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돈을 버는 게 목적이라면 차라리 그 시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더 이득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메타버스의 이용 목적은 오락에 더 가깝다. 그렇기에 메타버스 플랫폼들은 이용자들에게 확실한 즐길 거리, 즉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늘날 적지 않는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부진에 빠진 이유다. 예를 들어 로블록스의 경우 이용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다른 이용자가 이를 즐기기 위해서는 비용을 지불하는 나름의 경제적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 건 사실이지만 콘텐츠 자체는 기존의 미니 게임들과 별로 큰 차이가 없다.
게임 회사도 마찬가지다. 메타버스와 NFT 관련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들이 핵심적으로 제시한 건 바로 P2E(Play to Earn)였다. 쉽게 말해 게임을 하면서 동시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유저들을 끌어모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리는 돈이 아닌 즐거움을 위해 게임을 플레이한다(Play to Enjoy). 제대로 된 콘텐츠로서의 경쟁력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이 벌린다고 한들 게이머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게이머가 외면한 게임의 NFT는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애초부터 돈을 벌려고 온 사람들에게도 외면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게임사들이 내놓은 플랜을 보고 있자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메타버스와 NFT로 어떻게 돈을 벌겠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어떤 게임을 만들 건지, 지금 있는 게임들의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건지에 대한 계획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정작 고객인 게이머 입장에서는 전혀 기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작년 초 메타버스와 NFT 열풍에 올라타며 장밋빛 꿈을 꾸던 국내 게임사들의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NC소프트의 경우 100만 원까지 올랐던 주가가 말 그대로 반 토막이 났으며, 쿠키런 시리즈로 유명한 데브시스터즈는 무려 70%가 빠졌다.
작년 4월, NFT와 메타버스에 관한 예시를 들면서 나는 BTS의 데모곡 음원에 NFT를 붙여 판매한다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왜냐하면 BTS라는 그룹이 가진 팬덤의 강력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데모곡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NFT가 아닌, BTS의 팬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팬덤이 BTS라는 그룹의 경쟁력이다.
그러니 이제는 메타버스와 NFT가 주는 환상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메타버스 열풍에 중독되어 있던 건지도 모른다. 허나 쓰레기도 포장만 잘하면 팔리는 시절은 이제 끝났다. 메타버스와 NFT는 더 이상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똑같은 알을 낳는 수많은 평범한 거위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이 낳은 알을 어떻게 하면 맛있어 보이게 할지, 사고 싶게 만들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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