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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pr 03. 2022

동백꽃이 핀다는 것

2w매거진

화분은 들여놓는 족족 죽였다. 어떤 것은 물을 너무 많이 주어 뿌리가 썩었고, 또 어떤 것은 너무 오래 물을 주지 않아 그만 말라 죽었다. 넘치게 햇볕을 받아야 하는 녀석은 구석에 두었으니, 볕을 쬐지 못해 시들 거리다 사라졌다. 무엇이든 '알맞게' '적당히' 대해주는 것이 어려웠다.     


여러 해 전 이사한 지금의 집은 9층의 남향이다. 하루종일 볕이 집안에 가득하다. 예전 동향이었던 집에 비하면 해가 저물어올 때까지 온기가 적당했다. 그래서였을까. 또다시 화분을 들여놓을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난 화분이었다. 이사했다는 소리를 들은 남편의 지인이 촉을 나누어 예쁜 화분에 담아 보냈다. '이거 몇 달 못 가겠구나.' 하며 받았는데 웬걸, 이 녀석이 해를 넘기고도 멀쩡했다. 이름을 듣고도 기억하지 못했으나 난은 꽃대를 올리고 수줍게 꽃을 피워내기까지 했다.     


결국, 그 난 화분을 시작으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붙은 나는 집안에 화분을 늘리기 시작했다. 산세베리아, 스투키, 행운목, …. 등등 흔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특별히 손이 가는 것들도 아니었다. 

코로나가 오기 전의 이른 봄에 남편과 매화를 보러 갔다. 화분 키우기에 자신감이 붙은 나는 광양에 가서 매화를 보고, 매화를 사다가 화분에 심겠다는 야무진 꿈도 꾸었다. 우리는 눈처럼 언덕에 가득한 매화를 보았고, 그 매화만큼이나 많은 사람도 구경했다. 그 고장 먹거리라는 벚굴을 먹었고, 생각했던 대로 화분에 심을 작은 매화 한그루를 사 들고 올라왔다.     

맛있게 먹은 벚굴은 탈이 났다. 남편과 나는 장염으로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몸이 좀 낫고서야, 죽다 살아났다고 어이없는 웃음을 나눴다. 화분 키우기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던 내 손에 들려온 매화나무는 화분에서 그 해를 넘기지 못했다. 집안에서도 매화꽃을 보고 싶다는 야무진 꿈은 그렇게 그저 꿈으로만 남았다.    

 

코로나19가 덮쳤다. 자연히 집안에 눈을 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번에는 꽃시장에 갔다. 눈을 잡아끈 것은 동백 화분이었다. 한 송이가 피어있었는데, 지고 나면 다음 해부터 또다시 꽃을 볼 수 있을 거란 희망에 부풀었다.

화분에 담긴 동백은 철모르고 꽃봉오리가 맺혔다. 가을 즈음 몇 개의 봉오리가 달리더니 붉게 변하지도, 열리지도 않고 그대로 가지에서 바삭하게 말라버렸다. 잎은 초록으로 윤기가 나서 반짝였다. 가지는 쑥쑥 자랐다. 그런데도 두 해 동안 가을마다 꽃봉오리가 맺힌 후, 열리기는커녕 그대로 바삭하게 말라 떨어지는 일의 반복이었다.     

올해는 그나마 꽃봉오리도 맺히지 않아 포기했을 즈음 겨울이 되며 꽃봉오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커졌다. 연초가 되자 끝이 천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매일 동백을 들여다보았다. 두 번이나 말라비틀어진 것은 혹시 건조해서였을까 싶어 열심히 스프레이로 매일 물을 뿌려주었다. 초록 잎도 닦아주었다. 화분을 들이고, 죽이기를 반복하던 내가 이처럼 정성을 쏟았던 적이 있었나 싶게 매일 들여다보았다.     


매일 조금씩 조금씩 벌어지는 꽃을 보며 생각했다. 

꽃 하나를 피우는 일이 이렇게도 힘이 든다. 꽃피우는 그것을 옆에서 보는 일이 이렇게도 간절하다. 하지만 동백꽃이 붉게 피어나는 일에 내가 관여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이란 것은 물을 적당히 알맞게 주고, 건조하지 않게 스프레이를 열심히 뿌려주는 일뿐이다. 그리고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꽃을 여는 것은, 오로지 동백의 일이다.     

"각자의 시간을 견디고 지나가는 거죠."

연세가 많으신 친정어머니의 상태가 좋지 않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이야기해 주며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담담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여서 말이다.

꽃이 피고, 또 지는 일을 내가 대신해줄 수는 없다. 아주 더디면서 힘겹게 꽃은 열리고, 피어난다. 하물며 꽃이 피어나는 일조차 이리 힘들고 더딘데, 우리 사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분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밤사이 동백이 꽃 한 송이를 활짝 열었다. 나머지 꽃봉오리들도 한결 더 붉어졌다. 동백 화분 앞에 앉아 아침 인사를 건넨다.

“애썼다.”

오늘도 이렇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2w매거진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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