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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pr 06. 2022

어젯밤 꿈속에

와글2

아빠를 꼬옥 껴안았다. 

"아빠아..."

젊은 시절처럼 풍채가 좋은 아빠는 웃었다. 아빠가 그처럼 밝게 파안대소하는 걸 언제 보았더라. 아빠를 꼭 끌어안고 있는 도중에도 그 생각을 했다. 

아빠는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290만 원이었다. 왜 하필 290만 원이었을까. 꿈에서도 꿈인 것을 알았다. 꿈에서도 아빠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나는 아빠를 그렇게 꼬옥 껴안은 채 대답했다. 

"알았어, 아빠. 드릴게요."     


부모님이 함께 아프셨다. 아침 일찍 길 건너 부모님 댁에 가면 요양사와 도우미가 오기 전에 환자가 둘인 집을 대충 정리하는 것이 일과였다. 힘들어서 그만하겠다고, 갑자기 그들이 오지 못하겠다고 할까 봐 이른 아침마다 환자의 흔적을 대충이라도 치우고, 손님처럼 그들을 맞이했다. 

일생 자식에게 십원 한 푼 달라는 법이 없던 아빠가 가끔 돈을 달라고 하기 시작했다. 치매가 심해지고 나서부터였다. 아빠는 늘 자식에게 베푸는 사람이었고, 계산은 항상 당신이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자식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 저 멀리서 손녀가 보이면, 그때부터 지갑을 꺼내 들고 용돈부터 주려고 했기에 늘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그런 사람이 아빠였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모습들과 상상할 수 없었던 행동을 했다. 처음엔 화가 났고 속이 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엄마가 말했다. “이제 예전 아빠가 아니야.”

더 이상 예전의 아빠가 아닌 아빠는 나를 보며 종종 말했다. “만원짜리 한 장 있니?”

형제 중 제일 많이 엄마한테 혼나는 것은 늘 나였다. 혼나고 있으면 갑자기 불러서 만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시며 슈퍼 심부름을 시키셨다. 혼나던 나는 그 핑계로 냅다 집밖으로 도망쳤다. 혼나고 난 아침엔 일찍 학교에 데려다 주시며 아빠는 지갑에서 만원짜리 하나를 꺼내어 두 번 접어 손에 스윽 쥐어주셨다. 

아빠가, 만원짜리 한 장 있느냐고 물어보실때마다 엄마에게 혼나고 학교가던 아침에 손에 쥐어주시던 그 만원짜리들을 생각했다.      


소소한 것을 잊을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병원의 담당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며, 이미 처방할 수 있는 최대치로 처방하고 있다고 했다. 그저 진행속도를 늦추는 것 정도를 기대할수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자주 보는 이도 누군지 잊었고, 제일 가까운 친척도 잊었다. 약을 먹었는지, 밥을 먹었는지 잊는 것은 일상이었고, 때로는 집도 잊었다. 아빠의 얼굴을 알아본 경비아저씨가 집으로 모시고 온 날, 결국 아빠를 모시고 경찰서에 가서 지문등록을 했다. 귀찮다고 안 간다는 아빠를 아이 어르듯 달래서 함께 갔다.

“경찰서에서 나이 든 분들은 다 의무로 해야 하는 거래요. 안하면 안된대. 엄마는 아파서 누워있으니까 나중에 하고 아빠 먼저 오늘 하고 와요. 경찰서 갔다가 오는 길엔 좋아하시는 아이스커피사드릴게요.” 

그렇게 함께 간 경찰서에서 아빠가 지문을 찍는 것을 물끄러미 보았다. 경찰서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하는 아빠를 부축해서 다녀오는 길, 약속한 아이스커피를 사드리지 않았다. 집 근처까지 거의 왔을 때 그 약속을 떠올렸는데, 치매인 아빠는 그 잠깐의 약속을 잊었는지 조르지 않았다. 나는 잊지 않았지만 모르는 척 그냥 집으로 왔다. 지금도 가끔 아이스커피를 마실 때, 문득 그날의 약속이 떠오르곤 한다. 아빠는 정말 잊었던 걸까.      

아빠는 정말 잊은 걸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날 지키지 못한 아이스커피를 떠올리는 순간뿐은 아니었다. 치매가 급작스럽게 심해진 일년동안 수도없이 많이, 자주 그 생각을 했다. 정말 잊은 걸까, 정말 모르는 걸까, 정말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

바야흐로 백세시대다. 누구는 축복이라고, 또 누구는 재앙이라고 말하는 백세시대말이다. 노년이 길어졌다. 텔레비전이며, 이야기 속 단골 소재로 치매가 종종 등장한다. 감동적이고, 애틋하다. 드라마 소재로 이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볼 때마다 생각한다. 그것은 드라마일 뿐이다. 현실에서의 치매는 결코 아름다울 수가 없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옆에서 늙어가는 부모를 보았다고 해서 내가 그 나이를 완전히 이해할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지금의 이 나이를 이해할 수 없던 세월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더 훗날의 나이역시 내가 지금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만원짜리를 접어 손에 쥐어주던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를 꼬옥 안아주었던 꿈은 아직도 생생하다. 후회는, 그렇게 영영 늦어버린 채 후회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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