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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pr 16. 2022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켰다

와글와글2 프로젝트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켰다. 불이 켜지면, 어둠에 잠겼던 온 집안이 일순간 환해지면서 모든 것은 한눈에 들어온다. 현관 입구를 지나 욕실, 장롱이 놓인 작은 방. 거실과 주방, 그리고 건넌방과 욕실이 딸린 안방.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그 집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같은 모습이다.   

   

엄마는 욕실 바닥에 앉아 양치를 했다. 불편해 보였는데 엄마는 그게 편하다며 쪼그리고 앉아 늘 이를 닦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에도 엄마는 손을 조금씩 떨면서 양치를 했다. 작은 바가지에 양칫물을 뱉으면서도 힘들어했다. 부모에게 받는 것에만 익숙했던 철없는 자식이 나였다. 가끔 양치질을 할때면 문득 생각하곤 한다. 그때 내가 양치를 해드렸으면 좋았을걸...하고 말이다. 하지만 생각이 모자랐던 것이 어디 양치뿐이었을까. 

     

욕실 옆의 작은 방엔 오래된 장롱이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래전 그 장롱을 처음 장만했을 때 엄마가 너무나 뿌듯해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같은 돌장식이 있던 화장대도 있었는데, 거기에 달린 서랍 속엔 몇 개 되지 않는 엄마의 패물이 있었다. 가끔 엄마 반지를 손가락에 끼곤 눈앞에 손을 들어 이리저리 들여다보곤 했다. “이거 예쁘다!” 백금으로 된 엄마의 결혼반지를 탐냈다. 엄마는 떠나고, 이제 그 반지는 내게 있다. 지금도 여전히 예쁘다. 하지만 생각한다. ‘이 예쁜 반지가, 그대로 엄마의 화장대 서랍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날 거실에 놓을 가죽 소파가 새로 왔다. 막상 사놓고 엄마는 잘못 산 것 같다며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저 백화점이 집에서 가까우니, 거기 가서 샀다고 했다. 

“나랑 가구단지에 좀 더 다녀보지 그랬어? ” 라는 내 말에 엄마는 지나가듯 말했다. “너 바쁘니까 자꾸 가자고 하기 미안했지.” 바쁜 것도 사실이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를 댔던 것도 사실이었다. 모든 것은 후회로 남는다.     

거실 맞은편엔 식탁이 놓인 주방이었다. 그 식탁에서 나는 엄마·아빠와 종종 밥을 먹고 오후에 출근했다. 점심 무렵 부모님 댁에 가면 엄마는 새로 지은 솥밥을 내주었고, 생선 한토막을 자글자글하게 구워주었다. 그 어느 의사도 이유를 정확히 대지 못한 채 한쪽 팔이 불편해진 아빠는 음식을 자주 흘리며 드셨다. 아빠가 식사를 마치고 일어난 자리를 보며 엄마가 늘 웃었다. “아이구, 반은 흘리고 먹었네.”     


주방을 지나면 건넌방과 안방이 있다. 건넌방에는 엄마가 앉아서 인터넷을 보고, 가계부를 쓰던 앉은뱅이책상이 있다. 뭐 그리 매일 가계부를 적느냐는 말에 엄마는 늘 웃었다. “이걸 안 쓰면 돈이 어디로 도망간 거 같아서 쓰는 거야.” 가계부를 부록으로 주는 12월이면 엄마는 여성잡지를 샀다. 엄마에게 가계부는, 일 년의 마무리이며, 새해의 시작이며, 동시에 인생 그 자체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생 가계부를 써본 일은 없다. 어디로 갔는지 당췌 알 수가 없는 것이 돈뿐일 리는 없다. 지나간 시간을 기록하는 가계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있다면 오래된 마음들도 변치 않은 채 차곡차곡 머물러, 그리울 때마다 페이지를 펼쳐 보여줄 수 있을까.     


안방의 돌침대에서 누워, 아빠는 종종 다리를 들어 흔들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 엄마는 매일 뭐 하는 거냐고 했지만 그때마다 아빠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운동하는 거야.”

건강이 안 좋아지며, 기억하는 것보다 잊는 것이 많아진 아빠는 가끔 침대에서 일어나는 법을 잊기도 했다. 침대에서 겨우 부축해 거실의 소파까지 나오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부축하는 아빠 팔은 점점 야위었고, 부축하는 내게 의지하는 몸은 점점 무겁기만 했다.

아빠가 먼저 병원에 입원하고 나자 집안은 더욱 고요해졌다. 아빠가 누워서 다리를 흔들던 그 침대에 이제 엄마가 늘 누워있었다. 초인종 소리가 들려도, 전화벨 소리가 들려도 엄마는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새해가 시작되고, 엄마 역시 아빠처럼 안방의 그 침대를 벗어나 병원 침대로 옮겼다.

그리고 몇 달 후 봄, 두분은 이십여 일을 사이에 두고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갔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길이었으므로, 매일 쓰던 세간들을 두고, 아끼던 가구를 두고, 집을 두고 갔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도 모두 두고 갔다.     


두 분이 살던 집은 정리했다. 하나씩 하나씩 버려지고, 정리되어 그렇게 한 달여 만에 두 분의 모든 것으로 가득하던 집은 빈집이 되었다. 이제는 여러 해가 지났다. 지금 그 집엔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종종 나는 그 집을 떠올린다. 

아무도 없는 그 집으로 돌아가 불을 켠다. 

기억의 불을 켜는 순간, 어둠에 잠겨 있던 빈집이 환해지며, 그 공간은 다시 마법처럼 살아난다. 

모든 것이 다시 돌아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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