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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ug 10. 2022

비가 쏟아지던 그 동네엔

                               

밤새 비가 많이 내렸다. 기록적인 폭우라고 서울은 온통 난리라는 뉴스가 하루종일 메인에 떠 있었다. 강남, 서초 등이 물바다가 되어 지하철역이 물에 잠기고, 차들은 지붕만 내놓은 채만치 강물에 떠 있는듯한 무서운 사진도 있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그것도 강남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기엔 참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 장면들이었다.     

하긴 서울뿐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수원에서도 역 부근의 지하차도가 침수되어 시내를 한 바퀴 빙 돌다시피 해서 출근했다는 친구의 경험담이 단체채팅창에 올랐다. 남편 역시 사방에 길이 막혀있어서 평소보다 세배쯤은 더 걸려서야 회사에 도착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계속 재난 문자가 날아오고 있다. 요 몇 년 동안 코로나에 관한 재난 문자를 많이도 받았는데 이번에는 거기에 더해 물난리 소식이라니. 코로나와 비로 인한 재해까지 사방에 재난으로, 재난 소식으로 넘쳐나는 세상인건가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나는 어려서 수원의 권선구 세류동에 살았다. 지금 개발된 새 동네들은 아예 없던 시절이다. 그때 이쪽은 다 복숭아밭이었지, 라고 어른들이 이야기하던 시절이었으니 수원에서도 세류동은 참으로 오래된 동네이다.

세류동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날은 오늘같이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다. 장마철 동네에 한꺼번에 비가 많이 오면 늘 하수구가 막히고 빗물이 잘 빠지지 않았다. 그때 우리 집은 차도에 면한 주택이었는데 대문 앞 차도엔 비가 많이 올 때면 흙탕물이 빠지지 않고 차올라서 인도의 경계석 위로도 물이 넘실대곤 했다. 지나는 차들이 아무리 조심해서 다녀도 흙탕물은 사방으로 튀었다. 우리는 장화를 신은 채로 흙탕물에 들어가 첨벙대며 놀다가 엄마에게 혼나곤 했다. 재난도 놀이가 되었던 철모르는 어린 시절이었다.     

중학생이 될 무렵 그 동네에서 이사했으니 이제 세류동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 수원의 새 동네는 자꾸 생겼고, 도시는 그렇게 계속 커지고 있다. 주택이 당연하던 시절에서 이젠 아파트가 당연한 시절이 되었다. 이제 새 동네의 상징은 고층아파트의 브랜드에 따라 달라지는 세월이 된 것이다. 

토박이로서 나는 같은 수원에 여전히 살고 있다. 그렇지만 사는 동네가 다르고, 생활권 역시 다르므로 이제 세류동을 갈 일은 좀처럼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어려서 내가 살던 집 앞을 지날 일이 있었다. 오래된 동네엔 고층아파트보다 역시 주택이며 낮은 빌라가 대부분이었다. 

오래된 동네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 옛 모습을 도무지 알 수는 없었다. 그저 짐작으로 이쯤에 우리 집이 있었지, 싶은 근방을 지날 때 마음이 아련했다. 단층 주택들이 늘어선 주택가였던 곳엔 이제 주택 대신 이삼 층의 상가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지금의 모습에서 그 옛날 비만 오면 도로가 개천으로 변신하던 물난리의 풍경을 상상할 수는 없었다. 세월이 많이 지났고, 오래된 동네도 천천히 변해왔을테니까.


뉴스에선 물바다가 된 사진을 끊임없이 송출한다. 여전히 비가 와서 반지하가 침수되기도 하고, 폭우로 하천이 범람하기도 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계절이 아니면 물의 무서움을 잊고 산다. 그럴 때 도시의 물난리 소식은 먼 곳에 있는 것이다. 뉴스 화면을 물끄러미 보다가 나는 다시 내가 살던 어린 시절의 세류동을 생각했다. 

장화를 신고 흙탕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넘실대는 차도에서 첨벙대며 놀던 내가 있다. 

차들이 물을 튀기고 지나갈 때마다 그 물이 사방으로 튀는 것을 보며 신나게 소리를 지르던 내가 있다.

지금도 폭우가 내리면 그 집 앞 도로는 차도에 물이 넘실댈까. 아마도 별다른 뉴스를 듣지 못했으므로 요즘은 그 시절과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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