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추첨에 당첨되었다

텃밭놀이 1

by 전명원


길을 지나가던 내게 우연히 눈에 뜨인 그것은, 텃밭 신청을 받는다는 공고였다. 텃밭이라니. 도시 변두리도 아닌, 아파트 단지 빼곡한 이 동네에 낯선 단어다. 낯선 동시에 사각형 아파트의 구획 안에서 먹고, 자고, 일어나 하루를 살지만 늘 마당을 꿈꾸는 나 같은 사람에겐 매력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가던 길을 멈춰서서 한동안 행정복지센터 앞에 붙은 그 공고문을 꼼꼼히 읽어봤다. 그러고 보니 센터 뒤로 공터가 있었다. 건물을 올리기엔 부족해 보이는 땅이었는데 그곳을 얼마 전부터 정리하더니 이랑을 만들고, 작은 그늘 정자도 하나 갖다두는 것을 봤던 기억이 났다. 역시 그곳에 텃밭을 이십여 개 만들어놓고 분양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동네에서 참 오래 살았다. 대학 4학년 때 부모님은 택지지구 맨 가장자리에 집을 지었다. 집 앞은 너른 논이었다. 농촌도 아닌 도시에서 이토록 푸른 논이라니 싶었다. 때마다 백로가 날아와 푸른 논 사이로 우아하게 걸어 다니고, 한여름에 창을 열어두면 논에 가득 채운 물을 지나오는 밤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도시 속의 푸른 논이 여태 남아있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논은 점차 흙으로 메꿔졌다. 길을 내고, 아파트가 지어지고, 상가건물들이 들어섰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 역시 그 논 위에 있다. 이제 지금 이 동네의 옛 모습은 그저 추억 속에나 있을 뿐이다.


길과 아파트, 그리고 상가가 지어지는 속에서 넓게 자리 잡은 구청 부지는 여러 해 비어있었다. 내년엔 들어선다더라, 하는 소리로 몇 해가 갔다. 그때에도 텃밭 분양을 했다. 운 좋게 당첨된 텃밭 농사는 쉽지 않았다. 농사라고는 농자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화분은 살리는 것보다 죽이는 것이 더 쉽던 나였다. 무언가를 가꾸는 일은 환상으로만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물이었다. 구청 부지의 텃밭은 물이 없어서 집에서부터 물을 가지고 가야 했는데 그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버려지다시피 한 밭을 옆 밭의 할머니가 대신 돌보아주신 꼴이 되었다.


그 시절의 경험이 있어 이번에 텃밭 신청을 해볼까 하며 물부터 확인했다. 사실 그 예전에 비하면 지금 텃밭은 집에서 길만 건너면 될 정도로 가까우니 물을 실어나를 수도 있겠으나 막상 해보면 그 또한 만만한 일은 아니다. 다행히 텃밭 부지 구석엔 수도가 있었다. 그 수도로 텃밭의 물을 주면 된다는 안내를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신청만 하면 된다 싶어 신청서를 내밀고 추첨일을 기다렸다. 스무 개가 채 되지 않는 작은 텃밭들인데 신청자는 그 수의 열 배쯤은 된다고 하니 10대1의 경쟁률이라고 했다. 게다가 추첨제니까 전적으로 운에 맡겨야 한다.


막상 추첨일이 되어서는 그날이 텃밭 추첨인 것을 잊고 있었다. 엄청난 경쟁률에 과연 뽑기 운이 따라올 것 같지도 않아 그저 재미 삼아 신청해본 것으로 얼마간은 마음을 접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점심 무렵 경쾌한 알람과 함께 핸드폰에 동사무소의 문자가 들어왔다. 세상에나, 텃밭 분양에 당첨되었다는 문자였다.

헐! 하면서 혼자 놀랐고, 이어서 ‘어떡하지’ 싶어서 당황했으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인터넷 사이트에서 텃밭 가꾸기, 텃밭 준비물 등의 키워드로 열심히 검색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의외로 텃밭에 대한 정보는 참 많았다. 많은 사람이 귀퉁이의 자투리땅에서, 혹은 베란다에 화분을 들여놓고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 들여다볼수록 의욕이 솟기도,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하는 내용이 많아 그날 오후는 온통 인터넷 서핑으로 보낸 듯하다.


이제 텃밭이 당첨되었으니 그다음은 농사계획을 세워야 한다. 무엇을 심을 것인지, 씨앗이나 모종 중 어떤 것으로 시작할 것인지 막막했다. 어릴 때는 모르지만 다 자라고 난 후의 키를 생각해서 작물을 배치해야 골고루 햇볕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다.

상추, 부추, 깻잎, 쪽파, 가지, 아삭이고추 이렇게 여섯 가지 작물을 조금씩 심어보기로 마음먹었다. 텃밭 초심자에게 가장 쉬운 것들로 추천하는 작물들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좋아하는 딸기며 수박 같은 것들도 심고 싶지만 길러낼 자신이 없으니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호미와 물뿌리개, 비료, 모종 등을 주문하고 두근대는 맘으로 기다리는 중이다. 텃밭이라 봐야 사실 한 사람이 누울 자리정도 밖엔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지만 모종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푸르르게 자라나 무성해진 텃밭을 상상하는 성급함마저 즐거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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