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떡이 커보이는 마법

텃밭일지 7

by 전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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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에서 집으로 걸어오다 보면 나의 텃밭을 지나게 된다. 구획된 작은 텃밭들이 스무 개쯤 올망졸망 모여있는데 그 둘레엔 무릎높이의 낮은 펜스만 있을 뿐이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길을 종종 받는다. 물론 열매가 열리면 어느 밤 애써 키운 그것이 사라지는 슬픈 순간도 없지는 않다고 한다.


나의 텃밭은 마침 인도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내가 키우는 작물들이 보기 좋게 여물고 난 뒤에 누군가 몰래 따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사실 나중 일이다. 지금 내가 하는 걱정은 지나다니며 나의 텃밭에 눈길을 주는 사람들의 걱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것이 제대로 크기나 하려나, 싶은 것이다.

가지도 제대로 대를 뻗지 못하는 것 같고, 고추는 좀 나은데 자라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쪽파는 왜인지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것만 같고, 상추는 서너 개 이미 바닥에 붙어버린 채 사망한 상태이다. 물도 자주 주고 (너무 자주 준 것일까), 매일 들여다보는데 (들여다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듯) 나의 작물들이 쑥쑥 자라거나 싱싱하게 나날을 보내는 것 같지 않다.


옆의 남의 밭작물들을 들여다본다. 대부분 심은 것은 나처럼 상추, 고추이거나 치커리, 대파 정도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도 있긴 하지만, 남의 밭의 작물들은 모두 싱싱하고 튼실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소연했더니 누구는 너무 일찍 모종을 심었다고 했다. 아침저녁으로 추우니 봄 냉해를 입기도 한다고. 또 누구는 비료를 뿌려야 한다고 했다. 나도 비료를 뿌리긴 했는데 적정량을 몰라 너무 적게 주었거나, 아니면 너무 많이 줬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 누구는 매일 물을 주라고 했고, 또 누구는 일주일에 한 번만 줘도 된다고 했다.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까 싶다. 심지어 인터넷을 뒤져봐도 정보는 제각각이었다.


텃밭에 물을 주고 옆 밭의 싱싱해 보이는 청상추를 보며 한숨을 쉬는데 입구의 정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시던 할머니 두 분이 아는 체를 하셨다.

“처음에 심을 때 바로 심지 말고 다른 집들처럼 호미로 밭의 흙을 좀 일구어서 심으면 좋아요. 물은 낮에 주는 것보다는 아침저녁으로 해 뜨겁기 전에 주는 게 좋고요.”

그러고 보니 다른 집들은 대부분 흙으로 밭을 갈아서 모종을 심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심지어 돌도 안 골라내고 모종부터 심었으니 한숨이 났다. 물 역시 대부분 점심 먹고 운동 삼아 나와서 뿌려주었다. 밥 먹고 나 운동하는 것만 생각했지, 작물이 뜨거운 햇살 아래 고생하는 것은 알지 못했다.


한 분은 조용히 웃으셨고, 다른 한 분은 계속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셨다. 말끝에 “우리도 신청했다가 떨어졌어요. 늙은이들 소일거리 하게 좀 당첨시켜주면 좀 좋아.”하면서 웃으셨다. 뭔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 눈치였는데 옆의 친구분이 소매를 잡아끌었다.

“얘! 시어머니처럼 굴지 말고, 그만 떠들어. 가자 이제.”

그분의 말씀에 나는 손을 내저으며 웃었고, 자꾸 말을 붙이고 싶어 하시던 할머니도 머쓱하게 웃으셨다.


두 분이 천천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봤다. 나이 들어 친구와 함께 동네를 다니고, 볕을 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삶은 보기 좋았다. 나이 들면 친구가 최고라고들 한다. 사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나이가 들고 나면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것이 또래 친구이든, 자식이든, 남편이든, 형제이든 말이다.


한동안 나의 텃밭을 들여다보았다. 곤죽이 된 상추 서너 포기는 뽑아버려야겠다. 나처럼 노지는 아니지만, 아파트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다는 친구가 강낭콩 모종을 몇 개 줄까 물어봤었다. 친구에게 모종을 얻어다가 상추 몇 포기를 뽑아낸 자리에 강낭콩을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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