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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l 12. 2023

나의 살던 그 집

텃밭일지 26

   

장마가 온다고,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고 했다. 기상청의 말이라면 반은 접어 듣는 법이지, 했는데 역시나 비가 온다던 날에 해가 쨍쨍했다. 하지만 역시 6월 말은 장마철인 것이 맞다. 오늘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부터 보슬보슬 비가 내리더니 한낮에도 어두운 하늘에선 빗줄기가 이어지고, 유리창은 습기로 뿌옇게 되어 맑지 않았다.      


하루 정도 비가 오면, 이제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텃밭 작물들이 맛있게 물을 마시겠구나.’

‘나는 물주러 안 나가도 되겠구나.’

하지만 어쩌다 하루 적당한 비가 내리면 좋은 일이지만 일기예보대로 일주일 내내 장맛비가 내린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번 주 내가 사는 곳은 주초에 하루 정도 비가 오고 이틀은 해가 쨍쨍했다. 그리고는 다시 오늘 비가 오는 것이니 이 정도 간격이라면 텃밭에 물주기를 대신해주는 고마운 비이다. 하지만 아랫지방은 비로 난리라고 하며, 인명사고도 있는 모양이다. 이럴 땐 우리나라도 결코 작은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사람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진 세월이지만 역시 자연을 거스르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주가 아니라는 마음도 든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다 거의 그친 창밖을 오래 내다보았다. 비가 오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나름 운치 있다. 젖은 아스팔트 위를 지나는 차들의 타이어 구르는 소리도 촤아아악, 하며 9층 베란다까지 올라오는 오후였다. 폭우도 아니었고, 태풍 같은 바람이 분 것도 아니었으니 텃밭의 작물들에겐 적당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득 예전 살던 집이 생각났다.     

결혼해서 아파트를 몇 군데 옮겨다니다가 처음 지은 집이었다. 마당에 로망이 있었지만, 도시의 주택에서 마당의 로망을 찾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우리의 집도 상가와 원룸으로 이루어진 3층 다가구주택이었다. 로망을 펼친 마당은커녕 주차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주택 살이 십 년의 시간은 늘 동네 골목에 주차 자리 찾는 일의 스트레스로 기억될 정도이다.     


하지만 내 인생 처음 지어본 집에 대한 마음은 당연히 남다르다. 건축사 사무소를 쫓아다니며, 건축업자와 계약을 했고, 터파기부터 자재를 하나씩 고르는 일까지 많은 시간과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집이 건축 경험은 소중한 자산으로 남기도 했다. 십 년의 주택살이를 채우고 지금은 근처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언젠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집을 짓는 일은 단순히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조권, 용적률, 건폐율같은 생소한 용어들이 아니어도 참 어렵기도 복잡하기도 했다. 다행히 편한 건축업자를 만났기에 그는 내가 원하는 조건 대부분을 들어주었다. 바닥재며 외장재, 심지어 문고리 하나까지 브랜드를 지정해서 계약서를 썼지만, 현장에서 또다시 수정하게 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뒷집과의 사이는 겨우 법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의 간격만 가지고 있었는데 건축업자는 배수로를 뒷집과의 사이 공간에서 건물 앞까지 노출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배수로가 노출되는 것이 싫었다. 심지어 1층은 상가였기에 더욱 배수로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비가 많이 오면 배수로를 막을 수 있다고 걱정했지만 나는 끝내 배수관을 땅속으로 묻자고 고집을 피웠다. 내 고집대로 배수관은 살짝 땅 밑으로 들어갔으므로 상가 옆의 공터는 깔끔했다. 하지만 문제는 비가 내린 후부터 발생했다.      


비가 오지 않을 때 날아온 나뭇잎이며 흙이나 모래로 뒷마당에서 연결되는 배수로 입구는 자주 막혔다. 처음엔 그런 상황을 예상도 못 했기에 뒷마당이 물바다가 되어서야 배수로가 막힌 것을 알았다. 건축업자의 말을 듣지 않고 마당을 예쁘게 하고 싶다는 바램으로 배수로를 땅 밑으로 감추어버렸으니 누굴 탓할 일도 아니었다. 그 집에서 사는 내내 비만 많이 오면 건물 뒤로 비가 넘칠까 봐 걱정했다. 그 일은 큰 교훈으로 남았다. 무엇이든 겉모양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     


지금도 그때 기억이 남아 그 집에서 이사한 지 십 년이 다 되어오는데도 비가 많이 올 때면 그 뒷마당이 종종 생각난다. 올 장마철엔 거기에 얹어 나의 텃밭 생각도 한다. 주민센터에서 텃밭을 분양하면서 제법 높게 밭을 만들고 테두리에 배수로를 확실하게 해두었으니 괜찮겠지, 하면서도 텃밭을 가꾸며 장마를 맞이해본 적은 없으니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장마가 지나가면 폭염의 여름이 올 테고, 그 여름 끝자락이면 해마다 태풍이 온다. 

장마 걱정이 지나면 불볕더위에 작물이 타들어 갈까 걱정할 테고, 그리고 나면 태풍이 올 때마다 또 걱정하겠지. 그러고 보면 사는 일은 걱정의 연속이다. 걱정 없는 삶은 있을 수 없지만, 걱정 끝에 믿어보기로 한다. 다 괜찮을 거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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