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지 27
어느새 7월 1일이다. 한해의 반이 지났고, 동시에 한해의 반이 아직 남아있는 오늘은 여름의 절정을 향해가는 뜨겁고 타버릴 것 같은 태양이 머리 위에 있는 7월의 첫날.
이틀 내내 비가 내리더니 6월의 마지막 날인 어제는 무더웠다. 땅속 습기가 모두 올라오는지 뜨겁고 더운 공기는 습기마저 머금고 있어 마치 사우나 속 같았다. 오늘 날씨도 이른 오전부터 이미 폭염이다. 이런 폭염의 날씨에 그래도 모종을 심어보겠다고 들고 나섰다. 더운데, 이렇게 더운데 왜 나는 정오가 다 되어오는 이 시간에 모종을 심겠다고 나설까, 하면서 길을 건넜다. 초보 농부는 일머리도 없는 것이다.
지난봄에 상추를 심어 참 요긴하게 먹었다. 샌드위치에 넣어 먹고, 비빔밥도 해 먹고, 쌈으로도 자주 먹었다. 이웃들에게 나눠주며 “제가 키운 거예요” 으쓱해보기도 했다. 물 주는 것이 때로 귀찮았고, 잡초 뽑아주는 건 더 귀찮아서 잡초 반 작물 반인 텃밭에서도 상추는 잘 자라주었다. 하늘하늘한 상추 줄기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상추 나무’가 되었다. 새 이파리도 더는 크지 않고, 연하지도 않았다. 그만 상추를 뽑아내야 하는 때가 이때로구나,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었다.
상추를 모두 뽑아내고 허전해진 자리엔 대파, 서리태, 그리고 비트를 더 심었다. 다들 여름에 모종을 심어도 잘 자라는 것들이라고 했다. 나의 선생님인 인터넷을 항해하며 알아낸 정보들에 의하면 그랬다.
상추를 뽑고, 내친김에 잡초를 뽑고, 새 모종들을 호미로 구덩이를 파가며 심어주었다. 며칠 내린 비에 제법 자린 깻잎도 넉넉히 뜯고, 숨어서 자라고 있던 가지 열매도 땄으며, 처음으로 고추 여러 개도 수확했다. 물만 먹여주었는데 이렇게 예쁜 열매를 맺다니. 기특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폭염주의보가 내렸다는 덥고도 더운 날, 오전 열한 시에 시작한 일은 한 시간 만에 끝났다. 땀이 이마에서 흘러내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 느껴졌다. 집에서 나올 때 선크림을 평소보다 더 꼼꼼히 바르고 나왔지만, 선크림이 더위까지 막아주는 건 아니므로 그 한 시간 텃밭 일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 텃밭 입구의 정자에 앉아 부채질하고 있었다.
“상추 안심었으면 좀 따줄 테니 가져가요.”
이웃 텃밭 할아버지께서 내가 일하는걸 보고 계셨던 모양이다. 노인정 회원들이 함께 분양받아 텃밭을 가꾸신다고 했다. 상추며, 치커리를 필요한 만큼 뜯어가라시는데 그래도 되나 싶어 머뭇거렸더니 넉넉히 뜯어서 손에 쥐여주셨다.
“다들 재미로 가꾸는 거니 이렇게 나눠 먹으면 좋지요.”
푸근하게 웃으시며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텃밭을 나서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봤다.
엄마는 병세가 깊어지면서 도통 먹을 것을 입에 대지 못해서 말라갔다. 뼈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였다. 매일 요양병원에 가서 점심 한 끼라도 억지로 입에 넣어주어야 했는데 그때 매임이다시피 엄마에게 먹인 것이 상추였다. 상추라면 좀 먹을 것 같다는 말에 매일 상추에 고기 조금 넣어 입에 넣어주었다. 매끄러운 상추는 그나마 모든 미각이 사라지고 뭐가 들어가도 까끌까끌하다는 엄마 입속에 들어가기 좋았다.
“내가 우리 딸 봉양을 받는 날이 오다니….”
매일 상추를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며 입에 밀어 넣다시피 하던 어느 날 엄마가 혼잣말처럼 말했었다. 병이 깊어진 처지와 딸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들이 한데 얽힌 엄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니까 엄마, 많이 먹고 기운을 좀 내야지.”
엄마의 시선을 피하며 상추쌈을 새로 하나 싸서 억지로 입에 하나 더 넣어주었던 그 어느 날을 종종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내 손에 쥐여준 상추무더기를 멀뚱멀뚱 바라보다 일어섰다. 상추를 뽑아내고, 새 모종을 심은 텃밭을 둘러보다 문득, 내가 뽑아놓은 상추무더기로 시선이 갔다. 텃밭 뒤쪽 공터에 내가 뽑아낸 상추들이 모여있었다. 흙에서 나온 상추들은 그 짧은 사이에도 햇볕에 벌써 숨이 죽어 있었다.
집으로 천천히 돌아오는데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뿌리째 뽑혀 나와 있던 상추들과 매일 점심 상추쌈을 애써 몇 개 먹는 게 고작이던 나의 병든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그해 여름을 맞지 못하고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나는 한동안 엄마가 입원해있던 그 병원 앞을 지나지 못했고, 상추쌈을 먹지 못했다.
여러 해가 지났다. 여전히 그 병원 앞을 지나는 일은 내게 쉽지 않다. 하지만 올해처럼 상추쌈을 많이 먹었던 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올봄엔 상추쌈을 자주 먹었다. 입을 한껏 크게 벌리고 매끄럽고 싱싱한 상추쌈을 입에 넣었다. 그때마다 엄마를 생각했다. 뼈만 남은 몸으로, 먹여주는 상추쌈을 억지로 입에 넣던 엄마. “엄마, 아!” 하면 그래도 딸이 먹이는 밥이라고 몇 입 못 먹으면서도 입을 애써 크게 벌리던 엄마.
뜨거운 햇볕 아래 눈이 부신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며 혼잣말을 해봤다. 엄마, 엄마,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