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은 일년에 한번, 크리스마스때만 성당에 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웃었던 나란 사람은 사실 일년에 한번도 성당에 가지 않던 해도 많았다. 그랬던 내가 부모님의 위령미사를 신청하러 성당에 드나들다가 이제는 매주 미사시간에 앉아있다 오곤 한다.
“우리 죽고 나면 절대 제사는 지내지 말고, 성당에 위령미사만 신청해라.” 하시던 부모님의 말씀을 종종 생각했다. 부모를 물가에 묻고 비가 올때마다 구슬프게 울어댄다는 청개구리처럼, 철부지 자식은 부모님이 안계시고서야 말을 잘 듣는 자식이 된 것이다.
부모님의 위령미사를 신청하러 다니다가 다시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고하면 다들 신기해한다. 어린 시절에 세례를 받았으나 그만큼 성당에 발걸음하지 않은 세월이 길었으니까 그럴법도 하다. 사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어느날 미사 후 신부님의 한마디였다. 보통 미사를 끝내면서 신부님이 하시는 말씀은 비슷하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미사후 신부님이 말씀은 평소와 달랐다.
“미사가 끝났으니 모두 평화롭게 돌아가십시오.”
평화롭게 돌아가라는 그 말을 되뇌이며 천천히 걸어 집으로 왔다. 신기하게도 그 말은 마치 주문처럼 내게 남았다. 성당에 한번 다녀오면 한 걸음, 또 한번 다녀오면 또 한 걸음, 그렇게 조금씩 평화로워져서 그날 이후 매주 성당으로 발걸음을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사실 사람의 인생이, 삶이 늘 평화로울수만은 없다. 내가 해결해야하는 문제들과 짊어져야 하는 짐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살면서 그것들을 마주하고, 군말없이 짐을 어깨에 둘러맬 힘을 내도록 해주는 격려를 여러곳에서 받았다. 그중 하나가 성당에서의 한시간이었다. 성당에서는 늘 평화로운 기분이었고, 그 기분을 가지고 성당을 나서면 마음의 파도가 가라앉고, 좀더 유연한 눈으로 멀리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라고는 할수 없다. 무엇보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평일 미사 하루를 다녀올뿐이니 어디가서 내세울바가 못된다. 그나마도 어느 날은 졸다오고, 또 어느날은 멍때리다 온다. 성당내의 공동체 모임에 참여하지도 않으며, 달리 아는 교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그림자처럼 스며들었다가 공기처럼 빠져나올 뿐이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성당에선 대림초라고 해서, 각기 색이 다른 네 개의 초에 불을 밝힌다. 그 네 개의 대림초 주변을 둥글게 꾸미곤 하는데 그것을 대림환이라고 한다. 한 주에 하나씩 그 불을 더 밝히다가 네 개의 초에 모두 불이 밝혀지면, 성탄이다.
성탄이 다가오니 대림초와 그 주변을 두른 대림환이 눈에 들어왔다.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 대림환을 멋지게 꾸밀 자신은 없지만, 나도 성물방에서 대림초를 샀다. 리스대신 붉은 리본으로 대림초를 둘러 혼자만의 분위기를 그럴듯하게 내보고 싶었다.
출근하지 않는 사람에겐 하루가 자유롭기만 하니 맘껏 늘어져있어도 좋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일상이므로, 반드시 매일 해야한다고 내 스스로 정해놓은 일과가 있다. 그것은 루틴이며, 목표이고, 또한 내 삶의 구성요소라고 생각하며 어기지 않으려고 한다.
단 하루도 글을 쓰지 않는 날은 없다. 다른 이의 글을 한줄도 읽지 않고 지나가는 날도 거의 없다. 이를테면 이것은 쓰는 언저리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하루이다.
그리고 매일 묵주기도를 하고, 성경을 필사한다. 이것은 주일을 지키지 않고 매주 수요일 미사 한번을 다녀올뿐인 불성실한 신자가 그나마 빼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대림초 네 개중 두 개를 밝혔다. 일렁이는 두 개의 촛불을 옆에 두고 오늘의 묵주기도를 했다. 평화롭게 돌아가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주문처럼 여겨져서 매주 성당에 가는 그 시간을 생각한다. 흐트러지고 조금씩 뜯겨나간 마음은 다시 정돈되고, 부서진 것은 모아진다. 이런 평온한 시간이 모여 인생의 행복이 된다고 믿는다. 이처럼 인생의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