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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r 22. 2024

아직 그림 그리는 중

                                  

민화를 그린다. 물론, 그린다고 말하기엔 좀 난감한 수준이다. 모임의 민화 작가분이 계시니 그분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하는, 그저 색칠 놀이 정도로 생각하면 맞겠다.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서양화 생각을 먼저 하므로 수채화처럼 스케치하고 채색을 하는 것을 먼저 생각했다. 가끔 문화센터에 민화원데이클래스가 있는걸 볼 때마다 대체 어찌 민화를 원데이클래스로 한단 말인가 궁금했었다. 이런 궁금증은 내가 민화를 배워보고야 어느 정도 풀렸다.     


민화는 원화에 얇은 한지를 대고 본을 뜬다. 더 쉽게는 아예 본이 그려진 종이를 팔기도 한다. 그것을 가지고 채워가며 칠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색칠 놀이의 고급 버전쯤이라 할 수 있다. 모임에 민화 작가님이 계신 덕에 그분의 재능기부로 상상하지 못했던 민화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하다 보니 왜 사람들이 컬러링북을 사다 색칠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꽤 집중하게 될 뿐 아니라 채색을 하고 나면 성취감도 무척 좋다.      


요즘은 물고기 부채를 그리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무식한 거 안다. 사실은 ‘약리도( 躍鯉圖)’라는 것인데, 자꾸 습관처럼 물고기 그림이라고 한다. 약리도(躍鯉圖)란 등용문의 고사에서 유래되어 잉어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표현한 민화이다. 

『후한서(後漢書)』이응전(李膺傳)에 등용문(登龍門)에 관한 부분을 보면, “용문(龍門)은 황하(黃河) 상류에 있는 협곡인데 물살이 폭포 같으며 큰 고기들도 쉽게 오르지 못한다. 일단 위에 오르는 데 성공한 잉어는 소미성룡(燒尾成龍)하고 떨어진 놈은 점액(點額 : 이마에 점이 찍힘)이 생긴다. ”라고 나와 있다고 한다. 이 현상을 등용문이라 하여 입신출세를 뜻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그래선지 이 약리도를 주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방에 걸어두는 경우가 많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집에 수험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이, 더 큰 것을 성취하고 싶은 열망에 한때 사로잡혔던 나이도 지나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꿈이 사라졌다거나, 그저 하루하루 평온하게만 보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여전히 꿈을 꾸면서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줄은 알게 되었다. 물을 차고 오르는 잉어를 벽에 그려놓고 도약을 꿈꾸지는 않지만, 여전한 꿈을 생각하며 조금씩 조금씩 잉어를 그리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사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약리도를 그리기 시작한 건 ‘물고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뛰어오르든, 헤엄치든 간에 나는 물고기를 사랑하는 낚시꾼이므로 약리도를 정성껏 그려보고 싶었다.     

 

생각과 달리 잘되지 않는 것이 그림이다. 하기야 내가 그림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학창 시절 50점 만점의 미술 실기점수는 25점도 받아봤던 사람이 나란 사람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색을 칠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한지에 한 번 칠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밑 채색을 했다. 그리고 ‘발림’이라는 과정을 거쳤는데 일종의 그라데이션 작업이었다. 이 발림을 거치고 나면 그림은 생동감있어졌다. 물고기도, 연꽃도, 모란도 모두 이 발림 과정을 지나고 나면 입체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늘 세 시간 동안 꼬박 그린것은 물고기 비늘이었다. 비늘도 한 가지 색이 아니다. 이중 삼중으로 색을 칠하고, 맨 마지막엔 비늘과 비늘이 겹치는 부분마다 검은색으로 일일이 점도 찍어준다. 비늘마다 두 번 세 번 칠하고, 검은 점까지 일일이 찍고 나니 눈이 뱅뱅 도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잉어는 한번 칠할 때와 두 번 칠할 때가 다르고, 비늘의 검은 점이 찍히는 것과 아닌 것이 천지 차이였다. 이를테면 화룡점정인 것이다.

문제는 밑 작업으로 채색할 때는 선생님께 손이 빠르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점점 위로 올라가고 마지막 발림 과정에 이르면 여지없이 제 실력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라데이션 작업이 쉬울 리는 없다. 아무리 흉내를 내보려 해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색이 퍼지지 않았다.     


민화라고 쓰고, 색칠 놀이라고 읽긴 하지만 이것도 엄연히 그림은 그림이다. 그리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여러 번 색이 덧칠될수록 그림이 달라진다. 한번 붓질과 두 번 붓질이 다르다. 이 달라진다는 것이 나를 긴장하게 한다. 점점 색이 덧칠될수록, 그림이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손끝이 조심스러워진다. 이제 망치면, 덮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 일도 그러할지 모르겠다. 젊어서의 실수는 ‘병가상사(兵家常事)’가 될 수 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니 지더라도 낙담하지 말라는 이 말의 의미가 물론 젊은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나이를 들고 보니 (비록 더 연배 있으신 분들 앞에서 할 소리를 아니더라도) 이제 실수한다면 다음 기회가 그리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무언가 망쳤다면, 이제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사는 일이 조심스러운 이유다.     


“다음 시간에는 먹으로 테두리 선을 덧그릴거에요. 그럼 그림이 한결 더 선명해진답니다.”

다 그린 것처럼 잠시 뿌듯해하다가 선생님 말씀에 정신을 차린다. 그렇다. 아직 그림이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완성되어가는 약리도 부채를 들어본다. 다소 얼룩덜룩하고, 군데군데 자연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부채 속 잉어가 물을 차고 뛰어오르는 몸짓을 본다. 힘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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