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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Sep 12. 2024

정오의 뜨거운 햇살이 필요한 순간

                     정오의 뜨거운 햇살이 필요한 순간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 조심성 없는 사람이 나란 사람이다. 이런 나는 희거나 밝은색의 옷이 맘에 들어도 선뜻 집어들기 쉽지 않다. 뭘 자꾸 흘리면서 먹으니까 심한 경우 첫 세탁을 하지도 못하고 옷을 버린 적도 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곱고 환한 색을 입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래, 나도 이제 어두운색에서 탈피해 밝은색의 옷을 입어보자, 싶다. 하지만 맘과 달리 밝은색의 옷을 ‘오래’ 입을 자신이 없어 늘 티셔츠 하나를 고르며 결정장애를 겪었다.     


옷을 사러 갔다가 흰 바탕에 초록 줄무늬가 있는 반팔티셔츠 하나를 들고 망설이는 내게 딸이 말했다. 

“명품 옷 사는 것도 아닌데, 얼룩 생기면 다시 사 입으면 되지.”

그 말이 맞았다. 1+1 티셔츠 하나 사면서 천년만년 입을 것 같은 고민이라니. 

그렇게 사 온 흰 바탕에 초록 줄무늬, 그리고 빨간 줄무늬가 있는 티셔츠 두 벌을 여름 내내 거의 교복처럼 입었다. 다른 티셔츠를 몇 개 더 사기도 했지만, 이 티셔츠들은 입을수록 편하고 맘에 들어서 좋았다. 


밝은 옷이라 매번 조심스럽게 입으며 여름을 보냈는데, 성묘를 다녀오다 들른 초계탕 집에서 빨간 고춧가루 양념을 목 부분에 두 군데나 묻히고 말았다. 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옷인데.     

집에 와서 인터넷에 떠다니는 비법을 검색했다. 김치 얼룩 지우는 법, 고춧가루 양념 없애는 법. 대부분은 비슷한 말을 했다. 주방세제로 비벼서 지우고, 과탄산소다에 담근 후 세탁기를 돌리면 된다고 했다. 여기저기 뒤지며 블로그들을 검색했는데 거의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한 블로거의 글에 눈길이 꽂혔다.

그도 같은 이야기를 하긴 했다. 주방세제를 묻혀 손으로 비빈 후, 과탄산소다에 담궈두었다 세탁기를 돌리는 것까지 같았다. 그런데 다른 점은 그다음이었다. 

그렇게 해도 얼룩은 남아있을 거예요, 라는 설명 밑에 여전히 남은 얼룩 사진도 첨부했다. 그리고 그 아래 덧붙였다.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그가 말한 ‘진짜’는 바로 ‘햇볕’이었다. 의심하지 말고 얼룩이 남은 그대로 햇볕에 바싹 말리라고 했다. 건조기가 아니라 반드시 햇볕에 말려야 한다고. 그러면서 햇볕에 말린 후 얼룩이 사라진 그의 티셔츠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나도 주방세제를 조금 묻혀 손으로 비볐다. 걸레조차 손빨래하지 않는 사람이, 좋아하는 티셔츠 하나 살려보겠다고 손으로 박박 비볐다. 그리고 과탄산소다에 담근 후 세탁기에 돌렸다. 알람이 울려서 꺼냈을 때, 그 블로거는 ‘실망하지 말라’고 했으나 혹시나 했던 나는 실망했다. 고추 양념이 묻은 얼룩은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이제 햇볕에 말려야 한다. ‘의심하지 말라’고 그가 말했던 비법은 ‘햇볕’이었으니 믿어야 했다. 시간은 오후 다섯 시였지만, 여전히 환하고 눈 부신 햇살이 남아있었다. 베란다 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정면에 닿도록 티셔츠를 옷걸이에 잘 걸어두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옷부터 확인했다. 실망스럽게도 얼룩은 그대로였다. 그럼 그렇지, 하면서도 미련을 버릴 수 없던 나는 곰곰이 다시 생각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아무래도 오후 다섯 시의 햇볕이 의심스러웠다. 


결국 그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오의 햇살 속에 티셔츠를 걸어두었다. 처서가 지나고 추석이 코앞이지만, 한낮 정오의 온도는 여전히 30도가 넘는다. 햇볕은 모든 걸 바삭하게 구울 기세였으니 어쩌면 효과가 있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나는 속으로 기대하며 지인을 떠올렸다.

그는 우연히 시장에서 산 오천 원짜리 티셔츠를 너무나 좋아한다고 했다. 그걸 오래 입고 싶어서 매번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는데 그때마다 식구들의 비웃음을 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얼마짜리인가, 그것에 얼마의 유지비용을 들이는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베란다에 걸린 초록 줄무늬 티셔츠를 바라보며 그의 말을 떠올렸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두 번의 손빨래를 하며 공을 들일 만큼은 좋아한다. 버리고 싶지 않아 얼룩이 사라지길 기대하는 만큼은 그 옷을 좋아하는 것이다.     


햇볕 속에 널어둔 티셔츠를 확인하기로 했다. 정오를 지나 시간은 오후 네 시였다. 햇살은 여전히 뜨겁고도 뜨거웠다. 이 정도의 기세라면 바싹까지는 아니어도 거의 말랐을 것이 분명하니 기대감이 차올랐다. 베란다로 나가 옷걸이에 걸어둔 티셔츠를 확인했다.

앗! 놀랍게도…. 정말 얼룩이 사라졌다. 

있던 자리를 기억하는 내게는 보일 만큼 아주 미세한 흔적이 남았지만, 지나치는 이들 대부분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말끔해져 있었다. 굉장하다. 정말 햇볕이 치트키였던 걸까. 

신기하게도 얼룩이 사라진 티셔츠와 여전히 해가 쏟아져 들어오는 창밖을 봤다. 어제와 오늘의 다른 점이라면 햇볕이었다. 얼룩을 없애는 데엔 역시 필요한 정량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밝고 환한 것으로는 부족한, 뜨겁고도 강렬한 정오의 햇살이 필요했던 거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살면서 알게 모르게 이런 순간을 종종 맞닥뜨린다. 어느 순간엔 그저 조용하게 환한 햇살이면 충분하지만, 또 다른 어떤 순간엔 '적당히'가 아니라 정말 뜨겁고도 강렬한 정오의 햇살이 필요하다. 

너무 강한 햇살 아래에선 선명한 색이 바래버려 조심스럽다. 반면, 손으로 비비고 빨아도 지워지지 않던 얼룩이 그 정오의 햇살 덕에 사라지기도 한다. 이처럼 햇볕의 온도에 따라 어떤 빨래는 걷어야 하고, 또 어떤 빨래는 일부러 널어두어야 한다. 

때를 아는 일, 햇볕 온도를 가늠할 줄 아는 일. 사는 일은 하루의 햇볕을 쓰는 일과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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