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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ug 15. 2024

밤의 장례식장

                            

언제인가부터 나는 다른 이들의 경조사에 거의 가지 않는다. 축하하고, 애도하는 마음은 대부분 송금으로 전한다. 핑계 같지만, 옷이라곤 죄다 청바지에 티셔츠뿐이니 결혼식장에 가기 마땅치 않다. 게다가 막상 조문을 가더라도 작년에 골절 수술받은 무릎으로는 아직 절을 하지 못하니 그도 곤란하다. 

그렇다. 원래 세상엔 핑계 없는 무덤이 없는 법 아니던가. 되도록 경조사에 직접 가지 않는 이유를 대라면 열 가지도 넘게 댈 수 있다.     


하지만 보다 솔직한 나의 마음은 사실 다른 데에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동문의 부고나 청첩이 단체 카톡에 오를 때면 당황스럽다. 몇 년에 한 번 잠깐 볼까 말까 한 사이는 지인이라 하기에도 뭣한데, 막상 소식이 오면 난감하다. 부고나 청첩이란 원래 꼭 얼굴을 마주하고 축하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거나,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며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고픈 사이에나 주고받는 것이 맞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세상의 부고와 청첩은 너무 많고, 또 너무 가볍기만 하다.     


하지만 어제 날아온 부고라면 가봐야 하는 것이 맞았다. 오래 함께해온 낚시모임 회원의 모친상이었다. 

나는 낚시를 시작한 지 올해로 십팔 년 차인 낚시꾼이다. 어떤 취미 하나로 십팔 년을 보냈다고 하면 꽤 오래된 세월이다. 그쯤이면 일가를 이루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사실 세월만 흘렀을 뿐 나의 조과나 실력은 늘 일 년 차에 머물러있다. 좀 더 많이 잡거나, 큰 물고기를 잡아보겠다는 맘도 없을 뿐 아니라 ‘원래 취미란 노는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으니 설렁설렁한다. 늘 목표도, 기대치도 없이 물가로 떠났으므로, 돌아올 때 역시 별 스트레스가 있을 리 없다.      


이런 나의 낚시 인생을 시작한 이후, 오랫동안 동호회라는 걸 가입하지 않았었다. 처음부터 혼자였던 나는, 그대로 혼자인 낚시가 편한 사람이 되었다. 간혹 일행이 있어서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역시 멀고 험한 길로 돌아가더라도 혼자 가는 길이 더 좋은 사람이 나였다. 

그러다 우연히 블로그 이웃의 권유로 채 열 명이 되지 않는 작은 낚시모임의 일원이 된 것이 십 년쯤 전이다. 사실 동호회라고 해서 다 같이 낚시를 가는 것은 아니다. 다들 나처럼 대부분 제각각 간다. 모두 플라이낚시를 하지만, 또 플라이낚시만 하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각개전투 스타일의 동호회랄까. 게다가 낚시동호회이긴 하지만, 낚시하면서 본 것보다 술집에서 본 시간이 더 많고, 잡은 물고기보다 비운 술병이 더 많을 것 같다.     

그런 모임의 회원이 모친상을 당한 것이다. 조문을 핑계로 오랜만에 회원들을 만났다. 다들 말했다. 오랜만인데 어제 만난 것처럼 편하다고.

낚시꾼들이 모였으니 조문을 마친 후엔 다들 낚시 이야기로 시간을 채웠다. 요즘 어디가 조과가 좋다는 이야기. 플라이낚시 인구는 퍽 줄었다는 이야기. 누가 대어를 낚았다는 이야기. 이런저런 끝도 없는 물고기 이야기들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다가 일어섰다. 상주인 회원은 따라 나와 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와주어 감사하다고, 장례가 끝나고 연락드리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일행이 차를 빼러 간 사이 건물 밖에서 기다리던 나는 그제야 장례식장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죽음을 맞은 이는 아직 세상에서 죽지 않고, 산 이는 아직 죽은 이를 떠나보내지 않은 곳. 그러니 장례식장이란 어쩌면 누군가의 삶과 누군가의 죽음이 함께 있는, 일종의 경계선 같은 곳일지 모른다.

돌아가신 회원의 어머니는 94세라고 했다. 자식을 다섯이나 두셨으니 모두 출가하고 후손을 낳아 증손주까지 명단에 올라있었다. 수십 명이 되는, 내가 본 유족명단 중 가장 빼곡했다. 조문객실에서 앉아 있을 때 근처 테이블에서 누군가 말했었다. 호상이네.     


백세 가까이 살다 돌아가시면 덜 아쉬울까.

수십 명의 후손들이 함께 모여 가시는 길을 지키면 덜 슬플까.     


그럴 리는 없다. 그 어떤 죽음도 호상이 될 수는 없고, 그 어떤 애도도 나눈다고 작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여름의 꼭대기, 이 더운 날씨에 멀고도 먼 길을 홀로 가야하는 사람의 평안을 기원하며 나는 잠깐 심호흡을 했다. 여름 밤공기속에 옅은 향내음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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