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정은 총 7박 9일이었다.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낮에는 도시의 이곳저곳을 탐험하듯 돌아다니고, 저녁엔 호텔 창밖으로 시드니의 해가 지는 것을 봤다. 노트북을 펴고 여행자의 하루를 썼고, 먼 곳의 가족들과 안부를 주고받았다.
시드니와 한국의 시차는 두 시간. 시차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곳에 머무는 동안 시차는 호텔 방으로 돌아온 이후 느껴졌다. 꽉 찬 하루를 보내고 내가 돌아다니며 본 것들을 식구들에게도 보여주었는데, 막상 그 시간에 가족들은 아직 일터에 있었다. 그제야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새삼스럽게 내가 먼 곳에 와있음도 실감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여행은 끝나고, 일상은 다시 이어질 시간이다. 탑승권에 선명한 나의 좌석번호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40C. 일주일 전 같은 좌석번호 40C에 앉아 시드니로 향하던 그 두근대던 마음이 떠오른다. 이제 탑승권엔 그날과 달리 ‘출발지 시드니. 목적지 서울/인천’이란 문구가 선명하다. 이제 진짜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시드니의 마지막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여행에서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다. 그러니 시드니의 못 본 곳을 하나라도 더 가보는 것보다, 한 번 더 가고 싶은 곳을 가기로 했다. 주립도서관에 다시 갈 생각이었다.
MATIN PLACE 역에 내려 주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시드니의 크고 푸른 나무들이 넓은 그늘을 드리운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일주일 여행에서 이곳 도서관을 세 번 찾았다. 마음 같아선 매일 오고 싶을 정도로 이곳이 좋았다. 올 때마다 매번 두 시간쯤 머물렀는데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시드니에 얼마나 볼 것이 많은데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보러 다니지, 도서관이 웬 말이냐고.
하지만 도서관에 앉아있던 그 시간은 내게 충전의 시간이었다. 도서관의 열람실에 앉아 늘 여행기를 썼다.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자의 싱싱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시드니 여행이 그만큼 의미있어지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여행을 해야 할지, 또 어떤 시간을 살아야 할지 그려본 시간이기도 했다.
간혹 관광객들의 떠들썩한 소음이 열람실 안으로 스며 들어왔다. 그 소음과 열람실의 고요 사이 어딘가에 있는 나는 지난 일주일간의 여행을 돌아봤다.
문장을 만들기 쉽지 않은 생존 영어. 집에서 열 시간 넘게 날아온 먼 곳. 일행도 없는 혼자만의 여행.
걱정도 했지만 나는 생각했다. 이 여행을 끝내고 나면 나는 한 계단쯤 더 올라서서 풍경을 보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물론 겨우 한 계단을 더 올라섰다고 해서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더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그 정도로는 단지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의 느낌만이 미묘하게 달라질 뿐이다. 하지만 한 계단에 올라서서 그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를 느껴본 사람은 또 한 계단 오를 꿈을 꾸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잘 해내고 싶었다.
여행이란 그렇다. 돌아갈 수 있으니 여행이다. 여행 중엔 길을 잃어도 된다. 멀리 힘들게 돌아가고, 차를 잘못 타서 엉뚱한 곳으로 가도 그것은 여행이니 괜찮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일이라면 다르다.
나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조약돌을 하나씩 뿌리며 집을 뒤로하고 걷는다. 가고 싶은 만큼 가고, 걷고 싶은 만큼 걷다가 이제 그만 돌아오고 싶어질 때면 그 조약돌이 집으로 돌아갈 길을 알려줄 것이라 믿는다. 해가 지고 난 어둠 속에서도 조약돌은 희게 빛날 테니까.
이처럼 여행자는 떠나는 사람인 동시에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지나고 보면 모든 여행이 다 빛나는 조약돌을 뿌리는 걸음은 아니었다. 더러는 새가 물어 가버릴 빵조각을 뿌려놓아 돌아오는 걸음이 힘들던 기억이 왜 없었겠는가.
창밖엔 이미 내가 타고 돌아갈 비행기가 와 있다. 내가 다닌 곳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언젠가 내가 시드니에 다시 올 날이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곳 시드니에 뿌려놓은 것은 새가 금방 물어 가버릴 빵조각이 아니라, 달빛 아래서도 희게 빛날 조약돌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제 또다시 40C에 앉을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