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그림책 속의 따스한 한 장면 같은 풍경이었다. 남편은 여행 전문기자가 올린 그곳의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정말 멋지지 않니, 다음엔 여기 가자!”라며 눈을 빛냈다. 남편도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지만, 우리 둘에겐 명확한 차이가 있다. 나는 낯선 곳을 좋아하고, 남편은 익숙한 곳을 좋아한다. 나는 멀리 가는 걸 좋아하고, 남편은 가까운 나라를 좋아한다. 그러니 거리상 가깝고, 언어가 통하는 일본이 남편의 최애 여행지가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 덕에 근래 일본을 찾지 않았던 해는 거의 없었으니, 이제 나에게 일본이라면 익숙함과 식상함 그 사이 어디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진 속 풍경을 보고 난 뒤엔 마치 일본 여행이 처음인 사람처럼 그곳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시라가와고는 기후현의 하쿠산 아래 자리 잡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멋진 마을이다. 눈이 2미터 넘게 쌓이는 것도 놀랍지 않다는 곳이다 보니 ‘갓쇼즈쿠리’라는 독특한 형태의 지붕을 가진 집들이 지어졌다. 갓쇼즈쿠리라는 이름은 ‘기도하는 손 모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이름처럼 길고 뾰족한 초가지붕을 두껍게 얹은 집들의 동네, 시리가와고의 사진을 한동안 바라봤고, 그곳으로 가는 길을 여러 번 검색했다. 푸른 계절의 시라카와고는 요정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마을이었다. 온통 흰 눈에 덮인 높다란 뾰족지붕의 시라가와고엔 어쩐지 눈의 여신쯤이 산다고 해도 믿어질 풍경이었다.
“나고야 여행 가지 않을래?”
딸이 말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시라카와고를 생각했다. 나고야라면 사실 몇 해 전 다테야마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기억이 있다. 가뜩이나 노잼도시로 유명한 나고야를 또 갈 일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라카와고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곳을 가기에 나고야는 최적지이다. 물론 대중교통으로는 너무나 불편한 곳이기에 원데이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 시간상으로 이득인데 그 원데이투어는 모두 나고야에서 가능했다. 사실 원데이투어라기보다는 전세버스와 비슷한 개념이긴 하지만.
시라가와고를 생각하며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간다고 나섰다. 막상 시라카와고를 내게 얘기해준 남편은 휴가를 낼 수 없으니 빠졌는데 나는 위안이랍시고 한마디 덧붙였다.
“나중에 여름의 시라카와고는 같이 가.”
물론 말하고 보니 위안이 되지 않을 것 같긴 했다.
시라가와고의 설경을 보려면 시기를 잘 맞춰야 한다. 보통 1월이 적기라고 하는데, 그만큼 적설량이 어마어마해서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눈이 쌓인다. 12월 말에 여행 일정을 잡은 우리는 눈이 있을까 걱정했다. 눈이 없이 황량한 겨울 풍경만을 보는 것 아닐까, 눈이 오더라도 애매하게 오기 시작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출발이 임박해 검색해 보니 이미 시라가와고엔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뒤늦게 서둘러서 운동화에 끼우는 아이젠과 발목에 눈이 들어오지 않게 하는 스패츠까지 구입해서 비행기를 탔다. 여전히 핀이 박힌 무릎이 걱정이었기에 혹시라도 미끄러워 넘어지면 큰일이니 과하다 싶게 준비하는 편이 나았다.
나고야에서 시라가와고는 약 150킬로미터의 거리. 대중교통으로는 보통 세 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한다. 나고야는 겨울이라기보다는 늦가을 정도의 선선한 날씨로 눈 따위는 상상할 수 없지만 한 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리고 나자 점차 풍경이 바뀌었다. 눈발이 흩날리다가 산악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본격적인 설국이었다. 그 어디에도 흰색 외의 다른 색을 찾기 힘들 정도로 온 세상은 눈에 묻혀있었다. 그 설국을 통과하는 산악도로의 양쪽은 온통 높고 깊은 산이었으며, 산과 산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도, 산을 뚫고 지나가는 터널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래도 산악도로는 제설상태 또한 완벽했다.
나는 운전 경력이 이미 삼십 년에 가깝지만, 눈길 운전은 거의 경험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눈을 만나는 경우를 제외하면 내린 눈이 다 녹을 때까지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눈길에는 되도록 대중교통으로도 나서는 일이 없으니 이런 설국을 내달리는 경험은 꽤 신선하다. 새벽에 나선 길이라 졸음이 찾아오다가도 창밖 풍경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연신 유리창의 습기를 닦아내며 눈 구경하기에 바빴다.
시라가와고는 에도시대의 몰락한 성주를 모시던 사무라이들이 들어와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했다. 성주를 잃은 사무라이들은 이 깊고 깊은 산속 마을에 와서 숨듯이 터를 잡고 어떤 맘이었을까. 두 손을 합장한 모양의 뾰족한 초가지붕 집을 짓고, 그들도 겨우내 2미터가 넘게 내리고 내려 쌓이는 눈을 바라봤겠지.
마을 뒷산의 전망대로 오르는 셔틀버스는 타려고 기다리는 줄이 길었다. 미리 그럴 것이라는 정보를 접했던 우리는 아이젠과 스패츠를 장착하고 전망대로 걸어 올라갔다. 왕복 20여 분의 비탈길이라 아이젠만 있다면 걸어 올라갈 만했다.
전망대에 오르면 시라가와고의 눈 덮인 뾰족지붕들의 작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 작은 경탄을 하게 하는 예쁜 풍경이다. 이제 눈이 오기 시작하는 12월이니 계속 눈이 쌓이고 쌓이는 1월이면 쌓인 눈의 두께도, 질감도 또 다를 것이다.
사진을 찍는 것도 잊고 넋 놓고 바라보다가 뒤늦게 여러 컷 찍고 돌아온 밤, 호텔 방에 누워 내가 찍어온 사진을 오래 들여다봤다. 사진 속 시리가와고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다. 하지만 내가 찍어온 사진 속엔 그곳의 청량한 공기, 코끝을 시리게 하던 눈의 냄새, 온통 흰 눈에 덮인 풍경의 눈부심이 없었다. 역시 사진에 모든 것을 담기는 힘든 법이다. 사진작가라면 또 달랐으려나.
나는 잠시 눈을 감아봤다. 그제야 그것들이 느껴졌다. 눈의 냄새, 눈에 반사되는 햇살의 눈부심,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눈밭을 뛰어다니는 내가 감은 눈 속에 있었다.
멋진 사진 한 장은 나를 시라가와고로 이끌었다. 하지만 역시 사진이라면 누군가 찍은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마음속에 담아 현상된 것이 진짜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사진작가도 담을 수 없는 냄새와 느낌,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이 고스란히 떠오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