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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자전거의 쓰임

by 전명원 Mar 11. 2025

                                      

서재엔 실내 자전거가 있다. 이 글을 쓰려고 보니 안장엔 철 지난 털장갑이 올려져 있고, 핸들엔 머플러가 걸려있다. 딱 봐도 매일 쓰는 물건이 아니라는 걸 주렁주렁 걸린 것들이 증명한다.

“그거 옷걸이 되는데 한 달도 안 걸린다는데 내 손가락을 건다.”

“설마 다이어트 하려는건 아니지? 다이어트는 안 먹는 것부터 시작일 텐데….”

“무릎이나 구부러지긴 하냐? 벌써 자전거를 타고 되는거임?”

실내 자전거 추천하라는 내 말에 친구들이 앞다퉈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평소에도 운동이라면 숨쉬기 운동이 제일이라는 사람이 실내 자전거를 추천하라니 다들 놀리느라 신이 났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다가 맥없이 자빠져 무릎뼈 골절로 수술을 받은 이후 나의 무릎은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이다. 그나마 이제 여행 가면 하루 이만 보를 걸을 때도 있고, 2층 정도의 계단이라면 망설임 없이 오르기도 한다. 초록색 신호등이 점멸할 때 뛰는 거라면 여전히 꿈도 꾸지 않지만, 가끔은 살짝 달리기 비슷하게 뛰는 흉내를 내기에 이르렀디.

처음 수술하고는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아 담당의는 마취하고 무릎을 꺾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내심 불안해서 모임의 정형외과의에게 물었다. 그는 너무 당연하게 대답했다. “진짜로 꺾어요!”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짚던 목발을 내던지고, 5단 보호대에서 3단 보호대로 바꿔 찰 즈음엔 괜스레 다 나은 것만 같던 마음이 바사삭 부서진 것은. 그전까지는 몇 달만 있으면 저절로 날아다닐 줄 알았으니 ‘재활’ 같은 건 남의 이야기였다. 

뒤늦게 덜컥 겁이 난 나는, 의사가 알려준 재활 체조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석 달 후에 120도로 꺾어지는 무릎을 만들어오지 않으면 마취하고 꺾겠다는 말은 엄포겠지 하면서도 묘하게 진담처럼 느껴져서 생각날 때마다 무릎을 구부리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석 달 후, 두근대는 맘으로 의사 앞에서 검사(?)를 받았다.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처럼 의사의 표정을 살폈다. 의사는 “아주 잘했다”라고 했다. 기쁜, 아니 안심된 마음에 ‘참 잘했어요’ 도장이라도 있으면 찍어달라고 내밀뻔했다.      


집에 돌아오며 단톡방의 친구들에게 실내 자전거를 추천하라고 한 것은 의사의 권유 때문이었다. 무릎의 근력을 위해서 가장 안전한 운동기구인 실내 자전거를 권했다. 

사실 실내 자전거의 경험이 없지 않다. 십 년도 더 전에, 나는 그 실내 자전거를 집에 들여놨었다. 목적은 다이어트였다. 태어나길 우량아였다는 내가 일생 날씬해 본 적은 없으니 44사이즈를 꿈꾸며 다이어트를 부르짖지는 않는다. 그저 몸무게 앞자리 하나만 바꿔보고 싶다는 소소한 바램일 뿐이지만, 다이어트에 소소함이라니 가당찮은 이야기지. 결국 살은 못 빼고 실내 자전거는 친구들 말대로 옷걸이로 전락하다 버려진 아픈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무릎을 다치며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 달 넘게 목발을 짚고 다녔으며,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오는 보호대를 차고 로봇처럼 요상한 걸음걸이로 동네를 다닐 때마다 시선을 모았다. 3단 보호대로 바꿨다가 2단 보호대로 바꾸었을 때의 감격은, 그게 뭐라고 날아갈 듯하던 기억도 생생하다. 불편한 걸음걸이로도 사방을 돌아다닌 나는 이제 왜 할머니들이 신호등의 초록 불이 바뀌기도 전에 서둘러 횡단보도에 먼저 내려서는지 그 마음을 안다. 조금만 늦으면 나 역시 불이 바뀌기 전까지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 한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제 동네의 횡단보도중 어디가 가장 시간이 긴지도 알고 있을 정도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장애인들의 어려움도 이젠 생각할 줄 알게 되었다. 장애인용 시설이 어디에,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내가 불편한 다리로 돌아다니며 느낀 것이다. 또한 장애인들이 집 밖으로 나서면 어떤 장애물들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실내 자전거는 1단부터 9단까지 조절하게 되어 있었다. 안장 높이 역시 마찬가지로 조절이 가능했다. 무릎이 구부러진다고 해도 힘이 없으니 자전거 타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엔 안장에 오르고 내리는 것도 조심했다. 1단도 만만하진 않았다. 10분쯤 타고나면 힘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건 다행히 몸에도 해당이었다. 언제인가부터 실내 자전거를 30분쯤 타도 힘이 들지 않고, 기어를 높여도 탈 만했다. 

뛰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지만, 원래도 뛰지는 않는 사람이니 서운할 건 없다. 적어도 걸을 땐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게다가 한두 개의 계단도 피해 가던 사람이 이제 급하면 2층쯤의 계단 오르는 건 크게 겁을 내지 않게 됐다. 

물론 이제 좀 살만하다 싶으니 언젠가부터 자전거도 타지 않는다. 자전거엔 먼지가 쌓여가다가 거실에서 서재로 퇴출되었다. 그리고 가방, 혹은 머플러 등이 자꾸 걸려있곤 한다.     


무릎을 다친 건 2년 전 3월 초였다. 지난 가을, 이제 무릎에 박힌 핀을 빼려나 하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이제 운동강도를 높여 보라고 했다. 나는 방에 먼지 쌓인 실내 자전거를 생각하며 속으로 뜨끔했다. 화제를 돌릴 겸, 무릎에 박힌 핀은 언제 빼냐는 내 말에 의사는 말했다.

“레지던트 돌아오면 빼시지요.”

강남 간 제비도 돌아오는 계절인데 병원 나간 레지던트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은 아직이다. 살은 못 빼도, 무릎에 박힌 핀은 이제 빼고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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