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의 오늘을 생각했다. 그 이른 새벽 아침을.
한 사람이 내쉰 숨을 영영 다시 들이켜지 못하고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바라본다는 건 그저 ‘슬픔’이라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마치 거대한 벽 앞에 선 것 같은 막막함이랄까.
엄마가 떠나던 그 새벽을 떠올리며 리스본의 언덕길을 올랐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리스본’ 대신 현지에선 포르투갈어 표기인 ‘리스보아’라는 말로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곳, 리스본은 남루함과 소박함. 친근함과 낯섦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화려하게 잘 정돈되고 가꾸어진 느낌보다는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같은 항구도시여서 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급경사의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보고 있으면 우리네 부산이 떠오르기도 한다.
역시 이곳도 유럽.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성당을 만난다. 골목하나 돌때마다 성당이 하나씩 나타나는 것만 같으니 말이다.
더 이상 성당은 보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리스본 대성당을 가야겠다고 맘먹고 나선 이유는, 바로 오늘이 엄마의 기일이었기 때문이다. 8년 전의 새벽과 그 새벽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 엄마를 생각했다.
리스본 대성당은 언덕 위에 있었다. 리스본이라는 도시를 말할 때 ‘일곱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시’라고들 하는데 그 말이 이해될 정도로 사방에 가파른 언덕길이 리스본의 매력인 듯하다. 리스본의 첫인상처럼 리스본 대성당을 보았을 때의 느낌은 바로 ‘리스본답다’라는 것이었다. 애써 꾸미고 단장하지 않은 투박한 느낌의 성당이었다.
소란한 밖과 달리 성당 내부는 고요했다. 잠시 앉아 짧은 기도를 했다. 엄마와, 이제 함께하지 못하고 먼 곳으로 떠난 가족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성모상 앞에서 초를 켰다. 일렁이는 작은 촛불을 한동안 바라보다 조용히 성당을 나섰다.
성당 밖으로 나와 보니 언덕 아래 저 멀리까지 리스본의 붉은 지붕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비탈길마다 차와 트램과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산 자들의 세상은 이처럼 활기차고 왁자지껄하다. 시끄럽지만 즐거워 보이는 풍경으로 가득하다. 떠난 이들의 세상은 어떠할까. 스스로에게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언젠가는 알게 되려나.
병상에 누웠던 엄마가 어느 날 지나가듯 말했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리스본 대성당의 언덕길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는, 이제 해답을 찾았을까.
나는 엄마에게 인사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평안하시길요.
리스본의 그날 저녁, 나는 파두 공연을 보러 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주축이던 대항해 시대. 바다는 모험가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을 테고,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움이기도 했을 터이다. 그런 그리움의 정서가 포르투갈의 ‘파두’라는 음악을 만들어 냈다. 바다와 모험에 영광만 있을 리는 없으니 아픔과 한을 지닌 소리가 만들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를 일이다.
가수의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작은 공연장엔 마이크도 필요 없었다. 12현으로 이루어진 기타와 클래식 기타 두 대로 반주하고 가수는 구슬프면서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소리로 노래했다. 나는 그들의 노랫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다. 내가 리스본에서 꼭 파두를 듣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검은 돛배’를 듣고서였다.
' 난 해변에 쓰러져 있었고 눈을 떴지
거기서 난 바위와 십자가를 보았어
당신이 탄 돛배는 밝은 불빛 속에서 너울거리고
당신의 두 팔은 지쳐서 흩어지는 것 같았어
뱃전에서 당신이 내게 손짓하고 있는 것을 보았지
그러나 파도는 말하고 있었어
당신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
번역된 가사를 읽으며 그녀가 노래하는 흑백 영상을 봤을 때,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그 노래의 감성이 느껴졌다. 리스본의 작은 파두 공연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노랫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어쩐지 슬퍼지면서, 동시에 힘이 생기는 음악이었달까.
공연 마지막엔 가수가 간단한 후렴구를 따라 부르도록 유도했다. 뜻도 알 수 없는 그 파두의 후렴구를 흥얼거릴 수 있다. 언젠가는 그마저 잊겠지만, 그때에도 리스본은 내게 특별하게 남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