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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by 전명원

한 친구가 술잔을 높이 들었다. “청춘은!”

그 말에 화답하듯 우리는 모두 뒤이어 외쳤다. “ 바로 지금!”


언젠가 등장해 한동안 유행하다 시들해진 건배사, ‘청바지’. 어쩐지 ‘아재’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그 건배사를 하자고 한 친구가 일어섰을 때,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야, 야! 하지 마!’

청춘은 청춘을 외치지 않는다. 이미 오십 후반에 들어선 열댓 명이 모여서 ‘청춘은 바로 지금’이라며 외치는 그림이라니. 하지만 일어선 친구가 선창하자, 낯간지러움은 잊고 얼결에 따라 외치며 그 몇 초 동안 한 마음으로 정말 크게 웃었다. 비록 지금이 청춘은 아닐지라도, ‘청춘’을 외치는 이 순간만큼은 진짜였으니까.


청바지는 19세기 미국의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가 질긴 텐트용 천으로 튼튼한 작업 바지를 만들어 특허를 내고 ‘리바이스’라는 이름으로 판매한 것이 지금처럼 널리 퍼지게 된 시초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리바이스를 창업하고 청바지 사업을 시작한 1873년 이전에도 청바지를 제작했던 업체가 존재했다니 생각보다 청바지의 역사는 더 긴 셈이다.

원래는 작업복의 일종이었으나 1950년대에 말론 브랜도와 제임스 딘 등 청춘 영화배우들이 유행시키면서 언젠가부터 청춘의 상징이 된 청바지. 편하고, 아무 옷에나 어울리며, 적당한 더러움이 티 나지도 않으니, 청바지는 작업복이 아니라 일상복으로도 아주 훌륭하다.


나 역시도 청바지를 좋아한다. 세련되게 꾸미는 재주도 없거니와 꾸며봐야 도드라질 것도 없는 외모를 갖춘 덕에 늘 청바지에 운동화 하나면 외출준비는 끝이다. 하이힐은커녕 구두 한 켤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도 이런 내가 이십 대 시절이라고 해서 크게 달랐을 리는 없다. 나는 그 시절 유행하던 ‘돌청’을 주로 입고 다녔다. 청원단을 거칠거칠한 돌에 올려놓고 물을 빼서 무늬를 만드는 워싱과정을 거쳤다고 했는데, 사시사철 청바지 하나면 충분했다. 여름엔 반소매 티셔츠를, 봄가을이면 청재킷을 걸치고, 겨울이면 점퍼나 코트를 입으면 끝이었다. 친구들과 찍은 사진에서 나는 대부분 청바지를 입고, 그 시절 유행하던 파마머리를 한 채 웃고 있다. 인생은 아주 길고, 아주 천천히 흐를 것이라 믿던 시절이었다.


1987년에 입학한 동기들은 60여 명이었다. 사는 곳도 제각각인 스무 살짜리가 고등학생 딱지를 떼고 어설픈 성인의 모습으로 모였던 처음을 가끔 생각한다. 십 대 때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가방만 고등학생을 면한 채 봄을 보낸 내가 학교생활에 익숙해진 건 한 학기가 지난 즈음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남녀공학에 다닌 적이 없던 터라 조심스럽기만 하던 남학생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친한 무리가 생겨 가끔은 수업을 빼먹고 근처 작은 가게에 앉아 사이다에 소주를 타 마시고 놀기도 했다. 자취하는 친구네 집에서 발 뻗을 공간도 없이 오글오글 모여 앉아 밤새 떠들기도 했다. 철없었지만, 즐거웠다.


세월이 많이 지났다. 그사이 벌써 유명을 달리한 친구도 있고, 소식이 끊긴 동기도 있다. 동기 모임이라는 것을 다시 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 일이다.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고, 결혼하고 누군가의 아내나 남편, 혹은 아빠나 엄마가 되었다. 자신의 이름보다는 역할로 불리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세월이 갔다.

한 친구가 나서서 친구들을 모으기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연락처를 알게 된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근황을 묻고, 또 다른 친구의 연락처를 받는 식이었다. 보험업계에 있는 것도, 영업사원도 아닌 그 친구의 순수한 수고 덕에 이제 다시 87학번 동기들이 모인다.


물론 연락을 받은 모두가 모임에 나서는 건 아니니 60여 명 입학 동기 중 모이는 건 스무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개중엔 나이를 먹으며 꾸준히 보고 지낸 친구도 있고, 입대 후 처음 만난 친구도 있다. 사십여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떤 친구는 예전과 말투며 행동 모두가 그대로 판박이지만, 또 어떤 친구는 저런 면이 있었나 싶게 달라지기도 했다.

내가 친구들의 변함없는 모습과 바뀐 모습을 보듯이, 그들도 그럴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어떤 친구는 내게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어?”라고 묻고, 또 어떤 친구는 “얘 원래 이런 애였어.” 라고 한다. 우리들이 그 시절의 모습을 한 단면만 봤던 것일까, 아니면 시간의 흐름 속에 저마다 달라진 것일까.


지난 4월에 모인 이후 다들 새로운 모임 공지를 궁금해하던 차에 단체카톡방에 투표 공지가 올라왔다. 9월 5일 동기 모임의 참석 여부를 묻는 투표였다. 총 18명이 참석하겠다고 했다. 이미 몇 번의 모임에서 익숙한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 한 명은 이번에 연락이 닿아 처음 만나게 된다. 카톡 프로필의 사진을 확인하고 다들 댓글을 줄줄이 달았다.

쟤 왜 두 배로 얼굴이 불었냐.

우리가 알던 00이가 맞는 거지.

9월까지 못 기다릴 것 같은데….


얼굴이 달라지고, 주름이 늘어난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적당히 철 지난 개그를 유머랍시고 꺼내놓고, 또 거기에 장단 맞추며 크게 웃는다. 개인적인 아픔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아무렇지 않은 얼굴 뒤의 표정도 짐작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 덤덤한 척 들을 줄도 안다. 어쩌면, 더 이상 청춘이 아니지만 ‘지금이 바로 청춘’이라며 ‘청바지!’를 크게 외치는 나이는 이런 것일까. 낯간지럽다고, 아재 같다며 웃었던 그 건배사를 생각하며 혼잣말을 해본다. 청바지. 그래, 청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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