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의 팬인 남편은 요즘 가을야구에 빠져있다. 올 시즌 우승을 놓고 LG와 한화의 경기가 열리면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한다. 그가 응원하는 LG의 가을야구를 기다렸던 것처럼, 나도 가을을 기다렸다. 낚시도 역시 가을 낚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을이 왔는데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았다. 내 시간이 나면, 날씨가 받쳐주지 않았고, 날씨가 좋을 때는 내가 떠날 수 없었다. 그러니 하루 시간이 났는데 날씨마저 좋다면…. 무조건 떠나야 하는 날이다.
가을을 뛰어넘어 바로 겨울이 오는 걸까 싶을 정도로 며칠간 아침저녁 기온이 뚝 떨어졌지만, 다행히 낮에는 예년 기온을 회복한다는 예보가 맞았다. 수량도 적당하고, 물색도 좋았다.
긴 계곡물 속이라면 어디든 물고기가 살 것 같지만 사실 사람들이 몰려 사는 마을이 있듯 물고기들도 몰려 사는 곳이 있다. 낚시꾼들은 그런 곳을 ‘포인트’라고 부른다. 포인트를 찾았다고 해서 늘 조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오늘은 놀랍게도 한 포인트마다 서너 마리씩은 얼굴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겨울을 준비하는 것인지 한창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가을은, 말들만 살찌는 계절은 아닌 거다.
긴 계곡의 돌밭을 걷고, 물을 건너고, 갈대숲 사이를 헤치고 다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투명했으며, 바람은 선선하고, 등 뒤로는 햇살이 따스하게 붙었다. 물고기들은 낚싯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생의 감각을 전해왔다.
그렇게 즐겁고 호젓한 낚시를 마치고 오래된 다리 옆의 키 큰 호두나무 아래에 차를 세우고 낚싯대를 정리했다. 호두나무 잎사귀는 모두 말라 바닥에 수북하게 쌓여있어서 걸을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냈다. 멀리 어느 집에서 동네 개가 짖었다. 주위를 잠시 걸으며 산과 계곡, 그리고 바람을 한껏 가슴에 담았다. 살다가 숨이 찬 순간이 오면 그때마다 조금씩 꺼내어 숨을 쉬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또 한 걸음 내디딜 힘을 얻는다.
차를 돌려 다리를 벗어났다. 오늘의 낚시를 끝냈지만, 집으로 향하기 전 한곳에 더 들러볼 참이었다. 인가도 없는 시골 도로변에 뜬금없는 카페가 하나 있고, 그곳엔 초로의 여주인이 있다. 그녀는 서울로 떠나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작은 카페를 열고 꽃차를 만들어 판다. 그녀의 카페엔 어디서 나타나는지 알 수 없지만 가끔 동네 사람들이 농기구를 들고 와서 커피를 마시고 가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근처 산속에 산다는 시인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카페 문이 닫혀있었다. 불이 꺼진 카페 앞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괜히 마당의 자갈밭 위를 소리 내며 걸어보다가 돌아왔다. 못내 아쉬웠다. 괜한 내적 친밀감으로 여름내 어찌 지냈는지 그녀의 안부가 궁금했는데 말이다.
집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러다가 해도 뜨지 않는 깜깜한 새벽부터 오늘 하루가 저물어가도록 그 누구를 만나지도, 그 누구와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 냈다.
내가 이십여 년간 혼자 낚시를 다닌다고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혼자 외롭지 않냐. 혹은 무섭지도 않냐.
그런데 나는 그 ‘혼자’라는 이유로 낚시를 좋아한다. 혼자 인적없는 계곡의 물가에 설 때, 내 발소리만 터벅터벅 들리는 시골 마을 길을 걸을 때, 세상은 온통 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람도, 하늘도, 햇살도 온전히 나 혼자 누리는 것 같은 시간이다. 그 덕에 나는 혼자 낚시하는 동안 마음의 곳간을 가득 채운 부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오늘도 집에서 멀리 떠나와 혼자 보낸 하루는 이렇게 채워졌다. 돌아오면서 문득, 뒤로 멀어지고 있는 계곡에 살고있는 그녀를 다시 떠올렸다. 그러다가 ‘멀리서 내 안부를 궁금해할 누군가도 혹시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낚시 잘 마치고 오고 있느냐 묻는 가족들의 카톡이 핸드폰 액정화면에 떴다. 뭘 좀 잡았느냐. 길은 막히지 않느냐. 그들은 묻고 있었다.
그렇다. 나의 궁금증도 채워졌다. 멀리서 내 안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그곳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계곡에서 혼자 보낸 하루가 외롭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