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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자부심 앞에서

by 전명원

원주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를 찾아가는 길은 목적지 1킬로쯤 앞두고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행렬 맨 끝에 서니 언뜻 멀리에 샛노란 은행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노랑 무더기였다.


오래전 어느 모임 자리에서 연세가 좀 있으신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분은 봄이면 진해 벚꽃을 보러 가고, 가을이면 단풍 구경을 간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해마다 방어며, 주꾸미 같은 제철 음식은 꼭 산지에 가서 맛보고 오는 것이 낙이라는 것이다. 제철엔 무슨 무슨 축제니 하는 이름이 붙어 인파가 너무 몰리니 꺼려진다는 내 말에 그분은 웃으며 대답했었다. 내가 앞으로 새로운 계절을 백번쯤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날은 웃고 넘겼던 말을 언제인가부터 나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 이야기를 해준 분의 연배가 된 건 아니지만 이제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는 그 말을 좀 더 이해하는 사람이 된 걸까.

우연히 본 원주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의 사진 한 장은 나를 사로잡았다. 숲도 아닌 곳에, 심지어 주변에는 다른 은행나무 한 그루도 없는데 오직 혼자 우뚝 선 거대한 은행나무. 게다가 비현실적으로 노랑은 선명했다. 나무는 1300년을 살았다고 했다. 이번 가을엔 나이 많은, 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큼 오래 살아온 그 은행나무를 보러 가리라 해마다 맘먹었다. 그런데 내가 시간이 나면 나무의 시간이 아직이었다. 나무의 시간이 온통 노란색으로 흐드러진 사진이 SNS를 넘나들 때면 내가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몇 해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반계리 은행나무의 실시간을 알 수 있다는 방법이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근방에 설치된 42번 국도의 CCTV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하며 나 역시 그 CCTV에 접속했다. 아, 정말 화면 귀퉁이에 거대한 은행나무가 보였다.

그날 이후 매일 그 CCTV로 은행나무를 봤다. 도시의 은행나무가 절정일 때도 반계리 은행나무는 푸릇푸릇했는데 언제인가부터 하루가 다르게 노란 물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무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딱 맞는 하루가 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오후의 고속도로를 달려 반계리로 향했다.

그렇게 거대한 은행나무 앞에 섰다.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도 은행나무는 훨씬 더 크고 놀라웠다. 그리고 푸른빛이라고는 섞이지 않은 온전한 샛노란 색으로 가득했다.


나는 얼마 전 일본의 다케오라는 도시에서 3000년 된 녹나무를 본 적이 있다. 대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한참 오르면 막다른 길의 언덕 위에 그 3000년 된 녹나무가 서 있다. 일본에서도 손꼽히게 더운 도시라는 다케오의 8월 한낮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삭하게 말려버릴 기세였는데 인적없는 대숲에 들어서는 순간, 여름이라는 계절이 저만치 물러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가을의 선선함도 아닌 묘한 대숲의 공기를 느끼며 3000년을 살아왔다는 녹나무 앞에 섰을 때, 그 나무에서 느껴지는 건 귀기(鬼氣)였다. 형용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나무가 내뿜는 그 귀기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그것은 경건했다, 혹은 압도당했다 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어떤 것이었다.


그런데 반계리 은행나무는 그것과 달랐다. 천연기념물이며, 높이는 약 33m ·가슴둘레는 약 13.1m나 되는 거목의 가지는 동서로 37.5m, 남북으로 31m까지 넓게 퍼져있다고 한다. 실제로도 가까이에선 카메라의 한 프레임에 온전한 형태를 담기도 힘들다.

하지만 천년 넘게 살아온 어떤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귀기는 없었다. 오래, 아주 오래 살아온 은행나무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고, 깔끔하며, 꼿꼿했다.

이마에 손 그늘을 만든 채 오래 바라본 그 은행나무엔, 내가 다케오의 녹나무에서 느끼지 못했던 경건함이 있었다. 절정의 풍경을 올려다보며 이 경건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생각했다. 그건 어쩌면 천년 넘게 한 자리에서 어디 하나 부러지고 꺾이지 않은 채 살아온 나무의 자부심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고작 백 년을 꿈꾸는 우리에게 천년의 삶은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꼭 천년을 살아야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나이를 먹으며 늙는다. 생각지도 않았던 병이 찾아오기도 한다. 막다른 길에 내몰리거나, 넘기엔 좀처럼 용기를 내기 어려운 장애물도 만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인생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삶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햇살은 여전히 눈부셨다. 한 번 더 CCTV를 켜서 반계리 은행나무를 볼까 하다가 말았다. 이제 그 나무는 CCTV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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