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고모에 대하여
나는 아이 둘 엄마지만 친정에 조카가 세명이나 있다. 귀염둥이 아이들 다섯이 친정집이나 우리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하고 뭉클할 수가 없다.
우리는 꽤 자주 만나 아이들끼리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편이다. 어찌나 다섯 명이 서로 사이가 좋은지 아이들의 관계를 보며 어른인 나도 많이 배우고 반성한다.
사랑스러운 세명의 조카들 중에서도 유독 내가 깊은 정을 주는 조카가 있는데, 바로 첫째 조카 아이다. 물론 세 아이들 모두 너무너무 예쁘고 귀엽다. 하지만 내가 유난히 첫째 조카를 마음에 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결혼하기 전 지금의 친정집에서 같이 삼 년을 함께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아이는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담요처럼 따뜻하고 바다처럼 깊은 아이’ 다. 아이는 철딱서니 없는 20대의 사회 초년생 고모를 많이 이해(?)하고 받아주었다. 저녁 8시에 나는 너무 반가워 퇴근하고 손도 안 씻고 바로 아이에게 달려가 안고 뽀뽀했다. 가족들이 잠깐 나에게 맡기고 장을 보러 갈 때면 나는 낮잠으로 비몽사몽 누워있었다. 그러면 아이는 나에게 등을 대고 책을 읽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나는 눈도 못 뜨고 아이의 감촉이 등에 느껴지는 것으로 아이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러면 아이는 고모를 밀어내지도 칭얼대지도 않고 다 받아주었다. 그러고는 나중에 살짝 ‘고모 손 닦고 와. 고모 왜 잠만 잤어?’라고 조용히 말해주었다.
그때 아이의 눈망울이 생각이 난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 그 순수한 눈빛은 손을 닦지 않았고 낮잠을 잤던 나의 고모가 그저 궁금했기에 나온 바라봄이었다.
이제 11살이 된 그 아이는 지금도 그때처럼 순수하고 맑다. 참 신기하다. 세 살의 그 아이는 고모를 반짝이는 맑은 눈으로 바라봐주었고 열한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렇다. 욕심내고 걱정하고 생각이 많은 나를 오직 ‘나의 고모‘라는 마음으로 바라봐준다.
얼마 전엔 아이가 나에게 편지를 써주었다. 글씨마저 바르고 정직한 그 아이는 예쁜 편지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 손 편지를 써주었다.
글은 쓸데없는 기교가 없고 문장은 깔끔했다. 무엇보다도 고모를 향한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져 참 고마웠다. 편지에서 아이는 고모는 따뜻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사실 따뜻한 사람이라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 누군가 한 명에게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다면 잘 살아가고 있는 게 맞을 것이다.
게다가 나의 첫 조카가 그렇게 생각해 주다니. 적어도 사랑하는 첫 조카와 나의 세계는 따뜻한 산들바람이 부는 참 아늑한 곳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