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ason why I can hold out
엄마 요가 잘 다녀왔어요?
성격 급한 내가 10년 넘게 하고 있는 운동이 있다. 바로 ‘요가’인데, 성급한 마음을 잠시나마 누그러뜨리고 이너피스를 가져다준다. 몸의 안 쓰던 근육까지 쫙쫙(?) 늘려주어 운동 후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등원할 때 아이들 가방과 준비물들 그리고 은근히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요가매트를 어깨에 메고 우르르 정신없이 나갈 때는, 그냥 바로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이불속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도 오늘 하루의 이너피스와 나의 노후건강을 위해 매서운 한파를 뚫고 수업을 듣는다.
그러면 돌아올 때, 칼 같은 바람은 시원한 솔솔바람처럼 느껴지고 요가매트를 지고 가는 내 모습은 무림의 용감한 권법소녀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며칠 전, 제일 바쁘다는 월요일 아침이었다. 첫째 아이의 눈앞머리가 퉁퉁 부어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다래끼가 난 것 같았다. 급하게 첫째 아이 선생님께 아침에 안과진료를 받은 후 조금 늦게 등원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맞다, 오늘 오전 요가수업!’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조금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둘째 아이 등원과 첫째 아이 병원, 그리고 나의 요가 수업까지 착착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주말 동안 신나게 놀았던 아이들의 피곤한 월요일 아침은 무겁고 느리게 흘러갔다. 결국 예상한 시간보다 10분 더 늦게 둘째 아이를 등원시켰다.
‘괜찮아 10분 정도면 여유는 없겠지만 시간 맞춰 요가 수업에 들어갈 수 있어.’ 나는 첫째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이런, 11분 후 도착. 이제부터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운이 없으면 1-2분 지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괜찮아, 준비운동은 아쉽지만 건너뛰어도 되니까.’
병원 도착 후, 예상대로 다래끼 진단을 받은 첫째 아이는 처방전을 받고 약국으로 향했다. 세상에, 월요일이라 그런지 약국의 대기인원은 평소의 두 배이상이었다. 여기서도 기다린다면 요가센터로 가는 버스가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무조건 지각이었다.
“첫째야, 잘 다녀와! 오후에 보자.” 첫째 아이까지 등원시킨 후 드디어 발걸음이 빨라진 나는 센터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 시간표를 보니 1분 후 도착. 달리면 탈 수 있을지도. 추운 것도 모르고 정류장까지 열심히 달렸다.
이런, 50미터 앞 정류장의 버스는 문이 닫히고 있었다. 저 버스를 놓치면 10분 이상 지각이다. 10분이면 준비운동도 이미 끝나고 한참 요가가 진행될 시간이다.
‘오늘은 아무래도 수업은 무리겠어.’ 꽁꽁 언 손을 주머니에 넣고 어깨에서 흘러내린 요가매트를 다시 메고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럴 수 있었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크고 작은 사건이 있을 때는 무조건 아이가 1순위다. 그래야 하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약간은 서글프고 헛헛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따뜻한 커피도 한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집안일도 여유 있게 끝낸 나는 서글프고 헛헛한 마음은 조금 풀리고 아이들이 보고 싶어 졌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의 돌아올 시간,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하원시켜 집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 요가 잘 다녀왔어요?” 거실 한켠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나의 요가매트를 보고 둘째 아이가 물어봤다. ‘어머나 세 돌도 안된 요 꼬맹이가 이런 말을 해주다니..!’
모든 것이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요가를 못 간 것도 너무 추워 손발이 꽁꽁 얼었던 것도. “둘째야 물어봐줘서 고마워!”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보고 있던 첫째 아이도 나와 동생을 안아주었다. 우리는 신발도 벗지 않고 셋이 부둥켜안고 웃었다.
아-행복하다. 이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이제 아이들이 엄마의 하루도 물어봐주는 날이 왔구나. 힘든 하루도 기쁜 하루도 서로 조금은 나눌 수 있는 시기가 온 것 같았다.
아이들은 그날 내가 요가수업에 다녀온 줄 안다. 서로 신나게 웃느라 못 갔다는 말을 못 했다. 아니면 물어봐준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엄마의 작은 바람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