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없으니 밥맛으로 먹자

인생의 맛

by 그유정

요즘 참 살맛 났다. 내 글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계시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다 건강히 내 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아이 둘 다 크게 아팠던 이슈(?)가 있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넘어가니 괜찮았다. 포동포동 살도 오르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니, ‘요즘 살맛 나는구나.‘ 하며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런데 어제 살맛 나는 내 삶에 살짝 위기가 생겼다. 안방의 천장에 문제가 있어 수리를 하게 됐다. 하루면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건축 사장님은 뜯어보니 하루로 될게 아니라고 하셨다. 족히 일주일은 걸려야 할 것이라고 하시며 며칠 후 다시 방문해 추가로 고치기로 했다. (어쩌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가구와 옷가지들은 하루 만에 끝날 것이라 생각해 거실과 거실 화장실에 마구 넣어둔 터라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공사가 진행될 동안 우리 네 가족 누울 자리, 아이들 놀이공간, 식사공간은 어쩔 수 없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슬펐다. 뻥 뚫려버린 안방 천장처럼 내 마음도 휑 했다. 간식도 밥도 너무 맛있던 내 입맛이 갑자기 사라지는 듯했다. 살맛 나는 인생이 잠시 끽-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멈춤’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여보, 요즘 근 6개월간 우리 참 살맛 났었다. 역시 이런 일들도 좀 있어야지 인생이 재밌지. 그래도 거실과 애들 방은 괜찮아서 다행이야!”


나는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남편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희망찬 말들을 꺼내며 나와 남편을 다독였다. 점심엔 힘내기 위해 짬뽕과 탕수육도 시켜 먹었다. 저녁엔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국과 밥을 차려 “모두 잘 먹네!” 하며 씩씩하게 먹었다.


긴 하루, 모두를 씻기고 재우고 부엌 불만 켜고 김치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콸콸 컵에 따르고 쉬지 않고 세 모금을 삼켰다. 그러고는 내가 좋아하는 김창완 아저씨 수필집을 꺼냈다.


역시 김창완 아저씨는 최고다. 노래도 좋고 이렇게 생각도 표현도 예쁘다니. 맥주와 함께 김창완 아저씨의 이야기들은 긴 하루를 지났을 나를 어르고 달래 주었다.


“꼭 살맛 나야만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살다 보면 그게 인생의 맛이죠. “


김창완 아저씨는 내게 인생의 맛을 느껴보라 한다. 쓰고 달고 맵고 짜지만 결국엔 적당히 어우러져 맛있는, 그 인생의 맛을 느껴보라 한다.


아저씨의 탁월한 조언처럼, 지금은 당장 입맛이 없으니 밥맛으로 먹을 것이다. 그저께 까지는 입맛으로 먹었지만 말이다.


사실 다행인 것이 많다. 아이들은 거실로 나온 매트리스가 은근히 마음에 드는 듯하다. 생각보다 지낼 공간도 충분해 보인다. 공사도 시간이 지나면 곧 끝이 나겠지. 지나고 보면 큰 일은 아닌 것들이다.


인생의 맛은 결국엔 맛있는 맛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고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오늘 밤도 김창완 아저씨의 글로 나를 달래야겠다. 분명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