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아 줄게

갑자기 쓰는 시 16

by 그유정

어서 씩씩하게 걸어가 버리렴

길쭉한 얇은 장애물 씩씩하게 넘어가 버리렴


아이들 있을 땐

어찌할 수 없이 너를 하늘로 보내지만


모두가 잠든 밤에는

모른 척 눈감아 줄게


기척이 나면 얼음이 되는 너를

나도 정말 모른 척하고 싶어


나중 나중에 하늘에서 다 같이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할 말이 궁하겠어


그러니 아이들 모르는 이 한밤중에는

나도 정말 모른 척할 테니


길쭉한 얇은 장애물 넘고 넘어

얼른 가족의 품으로 가려무나


모두가 잠든 밤에는

진짜 눈감아 줄게



뒤에 큰 산이 있는 주택에 살고있어요. 따뜻하고 선선한 날에는 귀여운 벌레들, 무서운 벌레들, 깜짝 놀라게 하는 벌레들이 다양하게 집으로 놀러 온답니다.

요즘은 추워서 벌레들이 잘 안 보이는데요, 아마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살금살금 나타날 거예요.

사실 저는 벌레를 엄청 무서워하지만요. 없애고 싶지는 않아요. 익충의 비율이 해충보다 더 높고요. 맞닥뜨렸을 때 너무 놀라 얼음이 되는 쪽은 제가 아닌 벌레인 경우가 더 많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같이 있을 땐 얘기가 달라져요. 벌레가 나왔다고 제가 호들갑을 떨었다가는, 아이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온 집안을 뛰어다니거든요.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는 하나도 안무서운 척, 용감한 척으로 무장을 합니다. 그러고서는 벌레를 순식간에 잡아버리죠. 마음 같아선 얼른 대문을 열어 방생해주고 싶지만요.

하지만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는 얘기가 달라져요. 저도 벌레도 서로에게 충분한 시간을 준답니다.

예를 들어 용감하고 아주 눈치 없는 어느 콩벌레가 제 앞을 지나가면요, 저는 그냥 보내줍니다. 심지어 그 앞의 장애물인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도 치워주고요, 컵도 책도 지나갈 수 있도록 밀어줍니다.

낮에 열심히 잡았던 콩벌레들에게 사과하는 마음으로 밤의 콩벌레는 모른척해주어요.

종종 엉뚱하지만 아주 나중에 제가 하늘로 보낸 벌레들과 하늘에서 마주치는 상상을 해요. 그때가 오면 그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할 것 같아요. 뭐라 해줄 말도 별로 없고요.

곤혹스러울 그날을 위해 앞으로는 너무 많은 벌레들은 잡지 않아 보려고요. 최대한 방생으로 해보려 합니다. 물론 모기와 바퀴벌레는 제외지만요.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