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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남 Feb 24. 2020

향기란 일종의 그리움 같은 것

내 아내

향기란 일종의 그리움 같은                                          


나에게 향기란 일종의 그리움 같은 것이다. 


오래전 일이었다. 인천과 수원 간 협궤열차가 다니던 시절이니 말이다. 아내와 나는 서해안의 어느 작은 포구로 나들이를 갔다. 어둠이 살짝 내릴 즈음에 수인선의 종점인 송도역에 내렸다. 역사를 빠져나와 버스를 타러 가려는데 은은한 꽃향기가 내 코끝을 스쳤다. 


“아! 향기 참 좋다.”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내도 발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더니 “아, 정말.”이러면서 어디서 나는 향기인지 찾아보자고 했다. 우리는 후각과 희미한 가로등에 의지해 향기의 근원인 한 나무를 찾아냈다. 그리고 둘은 한동안 그 아름답고 황홀한 향기에 취해 있었다. 


이미 승객들은 다 빠져나가 주변은 고요했고 몇 개 있는 가로등도 그리 밝지 않아 어두운 가운데 꽃향기가 일대의 공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잊지 못할 정도로 매력적인 꽃향기를 뿜어내던 것은 라일락이었다. 


 많은 여인이 그러하듯이 아내 또한 꽃을 좋아했다. 우리가 신혼 초에 살던 작은 아파트는 1층이었는데 꽤 쓸 만한 자그마한 정원이 딸려 있었다. 정원에는 이사 올 때부터 목련과 라일락 몇 그루가 심겨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올 즈음에 하얀 목련이 제일 먼저 피었다. 


우리는 햇빛이 들어오는 거실의 유리창 앞에 서서 목련을 보았다. 추운 것을 싫어하는 아내는 창밖을 내다보며 봄이 오니 따뜻해서 좋고 따뜻해지니 목련꽃이 예쁘게 피었다고 했다. 아내의 옆에 서 있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계절인 겨울이 지나간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아내가 목련을 좋아하니 나 또한 흐뭇해졌다. 


몇 년을 계속해서 목련이 피는 것을 가까이서 보니 실제로 목련이 좋아졌다. 몇 주 지나 목련이 시들어 땅에 떨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할 즈음이면 라일락이 피었다. 라일락이 피면 아내는 어린 아기를 안고 정원으로 나가 라일락 꽃향기를 맡으며 “이것 좀 맡아보렴. 이게 라일락 향기란다.” 하며 미소를 띠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행복해지곤 했다.  


아내에게 가끔 꽃 선물을 했다. 장미를 좋아한다고 해서 붉은 장미를 주로 사 주었다. 어느 날 무슨 이야기 끝에 아내가 장미 중에서 특히 흰 장미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흰 장미를 선물했다. 어느 날은 수국을 좋아한다고 했고 어느 날은 백합 향이 좋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잊지 않고 아내가 말한 꽃들을 사 들고 들어갔다. 내가 꽃을 사서 주면 아내는 늘 꽃향기를 맡은 후 나에게도 그 향기를 맡아보라고 권했다. 나는 그 순간이 좋았다. 꽃향기를 맡으려면 꽃을 들고 있는 그녀 가까이 갈 수 있으니……. 


결혼 후에는 꽃과 함께 향수도 자주 사 주었다. 특히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면 아내가 좋아할 듯한 향수를 꼭 사 오곤 했다. 내가 사준 여러 향수 중에 아내는‘장파투 조이’라는 향수를 제일 좋아했다. 나는 아내에게서 풍기는 ‘JOY’ 향기에 익숙해졌다. 


결혼 후, 우리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러 번 떨어져 살았다. 아내의 미국 의회 파견근무와 유학 그리고 나의 지방 근무 등으로 오래 떨어져 살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내가 몹시 그리웠다. 무엇 때문에 굳이 이렇게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고 외로움이 심해져서 견디기 힘들 때도 많았다.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거리를 걸었고 공원을 걸었고 수목원을 걸었다. 그러다 보면 바람결에 풍겨 나오는 꽃향기를 맡게 되고 때로는 지나가는 여인으로부터도 희미하게 풍기는 익숙한 향기를 맡게 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아내가 떠올라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에 몸을 떨기도 했다. 그리고 그리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숨을 참아보지만 이내 다시 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무엇이 그렇게 나를 사로잡았는지는 단정하여 설명할 수 없지만, 그녀는 특유의 향이 있는 여자였다. 때로는 그녀의 어린아이 같은 이기적인 태도가, 때로는 예술과 인문학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대부분 말없이 나를 응시하고 가끔 웃고 가끔은 신경질적이기도 했던 젊은 시절, 그녀는 그녀가 좋아했던 많은 향을 버무려 놓은 듯한 향기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녀의 날카롭고 강렬한 향은 둥글고 덜 도드라진 것으로 바뀌었지만 아내를 떠올리면 느껴지는 향기가 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향기란, 내 아내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그리움이었다. 


어쩌면 스스로 생각해도 아내에 대한 정이 좀 지나친 것 아닌가 싶어 참아보려 했지만 숨을 참으며 살 수는 없는 것처럼 아내를 생각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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