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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남 Nov 23. 2020

간장게장

내 딸 선영이

# 간장게장                                                           


“아빠, 꽃게 먹고 싶어요” 


퇴근해서 집에 오니 두 아이가 달라붙어 합창을 했다. 주말에 꽃게를 사다 쪄 주겠다고 하고는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마침 지금이 꽃게 철이니 좀 사다가 찌거나 탕을 끓여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 토요일 새벽에 노량진 수산시장 가야 함’이라고 메모를 해 두었다. 


거실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씻긴 후, 으름장을 놓으며 일찍 자야 주말에 꽃게를 사주겠다며 침대로 밀어 넣었다. 불을 끄려는 나에게 아이들은 “아빠, 불 끄지 마~아. 끄면 안 돼” 하며 연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옛날이야기해 주세요” 2층에 있던 선영이가 소리 치자 1층의 재영이도 간절하게 “아빠, 옛날이야기해 줘”하며 제 언니를 따라 했다. 

 

이 끝날 것 같지 않은 커튼콜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을 빨리 재울 심산으로 불을 끄고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아빠의 불순한 의도를 경계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는지 좋다고 하였다. 나는 불을 끄고 열 번도 더 들었을 그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때로는 자기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요청하기도 했다. 한참 상황극을 펼치다 보면 나 홀로 어둠 속에서 독백하고 있었다. 잠시 침묵하다가 잠든 아이들 볼에 입을 맞추고 방을 나왔다. 


아이들과 약속한 토요일 새벽이다. 자고 있는 선영이에게 “선영아, 아빠 수산시장 갈 건데 너도 갈래?” 속삭이면 선영이는 깊은 잠에 빠졌다가도 벌떡 일어나 따라나섰다. 집을 나서는 우리 등 뒤에서 아내는 적당히 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우리가 수산시장 갈 때마다 너무 많이 사 오는 바람에 늘 뒤처리에 애를 먹는 아내였다. 선영이를 뒷좌석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매 준 후 우리는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수산시장의 새벽 풍경은 늘 장관이다. 곳곳에서 경매가 벌어졌고 상인들과 손님들이 서로 엉켜 흥정을 벌이느라 왁자지껄……. 난장판이 따로 없다. (선영이와 나는 이렇게 번잡스럽고 생동감 있는 시장 풍경을 무척 좋아했으나 아내와 재영이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 혼잡한 틈바구니를 뚫고 좋은 꽃게를 찾기 위해 분주히 다녔다. 제철이라 그런지 암꽃게에는 알이 가득 찼다. 살도 튼실한 게 가격도 적당했다. 


처음에는 2~3kg 정도의 암게를 사다 일부는 쪄 먹고 나머지는 탕을 끓여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수완 좋은 여사장이 망태기에 담긴 10Kg짜리를 싸게 줄 테니 가져가라 했다. 순간 아내의 간절한 목소리가 떠올라 정신을 바짝 차리려 했으나 꽃게를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되어 있던 선영이의 종용과 여사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우리는 10 kg를 샀다. 

 

말이 10kg이지 10kg은 우리 가족이 먹기에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30 ~ 40 마리쯤 되어 보이는 꽃게 망태기는 묵직해서 차 있는 곳까지 들고 가기에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막상 꽃게를 사고 나니 아내에게는 또 뭐라 변명을 해야 하나 걱정이 밀려왔다. 


아빠의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조금 전까지 신나서 들떠 있던 선영이도 풀이 죽었다. 우리가 이 많은 꽃게를 들고 집에 들어가면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다 잔소리를 할 거고, 왜 아빠를 못 말렸냐고 자기에게도 불똥이 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묵직한 꽃게를 들고 우리는 죄인처럼 조심스럽게 집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우리가 예측한 반응을 보였고 우리 부녀는 최대한 반성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 상황을 잘 넘겼다. 재영이는 자기 엄마에게 붙어 언니가 혼나는 모습을 즐기고 선영이는 그런 동생이 얄미워 쏘아보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가족에게는 익숙한 풍경이기에 나는 아내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덤덤하게 꽃게 찔 준비를 했다. 


찌기 전에 각자 몇 마리를 먹을지 물어보았다. 아내는 한 마리, 선영과 재영은 두 마리씩 먹겠다고 했다. 나는 꽃게를 깨끗하게 손질한 후 넉넉하게 여덟 마리를 찜통에 넣고 찌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10분 후면 맛있는 꽃게를 먹을 수 있어”라고 말해 주었더니 선영이와 재영이는 물론 아내까지도 표정이 밝아졌다. 


드디어 파티가 벌어졌다. 우리는 무슨 꽃게가 이리 살도 많고 알이 꽉 찼느냐 하면서 즐겁게 먹었다. 나와 아내는 한 마리씩 먹고 나니 배가 불러 못 먹겠다고 했으나 아이들은 벌써 두 마리째 즐기고 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평소에는 자기들끼리 엄마가 아침에 해놓은 밥과 마른반찬으로 식사를 해온 걸 생각하며 애잔한 마음도 들었다.

 

식사가 끝나자 이제 우리가 먹었던 것보다 몇 배나 많이 남은 꽃게를 처분하는 것이 문제였다. 아내는 왜 쓸데없이 많이 사 와서 고생하느냐며 또다시 잔소리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 선영이는 속없이 간장게장을 만들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냈다. 나에게 향해 있던 아내의 화살이 급기야 선영이에게 쏠렸다. 간장게장을 하면 온 집안에 냄새가 엄청날 텐데 왜 일을 크게 벌이려 하냐며 선영을 나무랐다. 그러나 나는 좋은 의견이라며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호기를 부렸다.


간장게장은 우리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였다. 비싸서 자주 사주지는 못했지만 한 번 사주면 서로 게딱지를 먹겠다고 투쟁하였고 마지막에는 얇은 게 다리까지 쭉쭉 빨아 야무지게 먹곤 했다. 


평소 참고하던 요리책을 들고 나와 선영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간장게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간장과 물의 비율을 맞추고 배, 사과, 마늘, 통후추, 다시마, 청양고추 등을 넣고 끓여 식힌 후 30여 마리 꽃게가 들어 있는 통에 부었다. 며칠 후 간장을 따라내어 끓이고 식혀서 다시 붓기를 두 차례 더 하고 나니 엄청난 양의 맛있는 간장게장이 만들어졌다. 나와 두 딸은 환호성을 질렀고 아내는 왠지 의기소침해 보였다. 


그날 이후 당분간 아이들은 나와 아내의 퇴근을 간절하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저녁 시간이 되면 둘이서 한 마리의 간장게장을 꺼내 아내가 아침에 해 놓은 밥과 먹었다. 자기들끼리 게딱지를 먹는 순서를 정해 가면서……. 


다시 주말이 돌아왔다. 아이들에게 돌솥에 따뜻한 흰쌀밥을 해서 간장게장과 먹자고 했다. 선영이는 간장게장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했고 재영이도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게딱지는 언니 차례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오늘은 엄마와 아빠도 있으니 간장게장 두 마리를 꺼내 게딱지를 하나씩 먹으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불려놓은 쌀이 들어 있는 돌솥을 가스 불 위에 올려 밥을 짓고 냉장고에서 간장게장 두 마리를 꺼냈다. 먹기 좋게 손질해서 선영이와 재영이의 접시에 게딱지를 올려놓았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먹을 게딱지를 보면서 빨리 밥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주문을 외웠다. 


“드디어 밥이 다 되었구나” 아이들은 환히 웃으며 손뼉을 쳤고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아내가 살짝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너무 많이 사서 다 못 먹고 버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간장게장을 해놓으니 아이들이 저렇게 잘 먹네.” 

“다음 꽃게 철이 오면 또 만들지 뭐. 별로 어렵지도 않아.” 

늘 당당하게 나의 잘못을 지적하던 아내가 간장게장 때문인지 무척 너그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해마다 꽃게 철이 돌아오면, 오래전 일이지만  선영이를 태우고 새벽 수산시장을 갔던 그 장면이 어김없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또한 게딱지에 따듯한 흰쌀밥을 야무지게 비비던 아이들의 조막손도……. 그 시절이 두 딸의 아빠인 나에게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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