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잠

슬픔이 찾아오는 시간


눈가에 졸음이 시큰하게 찾아왔다. 올 테면 차라리 나른하게라도 찾아오지, 얜 꼭 이런 날, 기온이 점점 올라서 살짝 더운가 싶은 이런 날에, 시큰하게 찾아와서 나를 더 힘들게 한다. 오늘은 특히나 어깨 위 오랑우탄 두 마리가 날뛰고 있는데. 어깨가 너무 무거워서 결국 파스를 네 장이나 붙였는데, 지독한 것들이 파스 냄새에도 꿈쩍하지 않고 오히려 발톱을 세워서 날뛰고 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손으로 어깨를 감싸 쥐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품이라도 시원하게 하면 좋을 텐데, 고무풍선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하품이 목구멍 뒤로 맥없이 삼켜진다.


“봐요, 뭐해요?


오늘은 당신이 별로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그냥 불러요. 드물게 이런 날이 있어요.

당신은 알고 있죠? 내가 누군가를 이유 없이 불러내는 경우가 없다는 걸.

그런데 오늘은 그냥 그래야겠다 싶어서.

아침부터 이유 없이 슬퍼요.

날씨가 너무 맑아서 그런가 봐요. 아니 점점 더워져서 그러는 건지도 몰라요.

햇살이 너무 눈부시니까 바람조차 움직임을 멈춰버렸어요.

너무 밝은 건 때론 민폐예요. 나뭇잎도 가만히 있잖아요.

그 가벼운 것들이.


너무 어수선해요. 오늘 이상하게 세상이 어수선해요. 무슨 특별한 뉴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뉴스는 언제나 있지만- 지구가 소리 소문 없이 외계침공을 당한 것도 아닌데,

아! 긴 연휴 뒤의 일상이라서 그런가.

관성의 법칙에 따라 계속 쉬고자 하는 마음과

일상이라는 태엽을 감아야 하는 운동 사이에서

나사가 이리 튕기고 저리 튕겨서.

길가에 다니는 차들조차도 바퀴소리가 요란해서,

사람들이 걷는 발걸음 소리마저 정신 사납고

음악소리마저 엇박으로 들려서 –정박인데도요- 키보드 리듬이 깨져 버리네요.


이상하지 않아요? 방금 전까지 나는 당신이 보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신을 부른 순간, 당신이 못 견디게 보고 싶어 졌어요.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어오는 밀물처럼.

바닷물이 폐 속까지 차올라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나는 다락으로 올라가 안경을 낀 채, 어둠 속에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쉬어요.

눈을 시리게 했던 잠이 처음에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

필름이 끊긴 의식의 끝자락을 잡고 결국에는 바닷속으로 익사해요.

나는 잠시 깊고 깊은 바닷속에 잠겨 있어요. 그곳은 조금 아늑해서 안심이 돼요.

어수선하지도 엇박자도 아니에요. 공명음만이 들려요.

물이 공명하는 소리. 당신의 심장소리. 숨소리. 물방울 소리.


내가 슬픈 이유. 당신도 알고 있나요.

당신이 알고 있다는 거, 알아요.

당신이 그냥 방관하고 있다는 것도.

아마 당신은 마지막에 가서 나의 슬픔을 거둬 가겠죠.

내가 영원히 완전히 조용해질 때.

잠이 쏟아져요."

두 여인의 영랑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둥실 떠오른 잠결이 기하학적이면서 기괴한 형태로 깨지면서 의식이 돌아온다. 진하게 화장을 하고 코끝이 쨍할 만큼 농염한 향수를 뿌리고 선이 가늘고 교태가 흐르는, 어느 누가 봐도 안고 싶을 만큼 아담하고 여리한 두 여인이 웃는 소리. 나는 절대로 될 수 없는 모습. 오늘은 어수선해지기로 작정을 한 날.


그는 어느새 사라지고, 오후 녘의 바람이 불어온다.

불과 몇 시간 전과는 다른 온도.

나뭇잎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시원하다.

숨이 쉬어진다.

슬픔은 잔잔해졌는데, 그가 없다. 그래서,

더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