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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신(母神)

by 느릿느릿 아줌마와 나무늘보

그녀는 그가 ‘모신母神’이라는 단어를 던진 순간, 그동안 그녀가 정립한 모든 것들에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지?’


그의 말대로 한 집안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아버지보다 어머니라면,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 자기 자신이 된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고, 어머니는 철없는 여자 아이였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정작 본인은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남편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어머니는 밖으로 나돌며 집안에는 감정을 쓰나미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언제나 외로웠고, 충족되지 못했고, 슬펐다. 남편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아내지 못한 어머니는 언제나 이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정작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이혼은 언제나 허공을 맴돌았을 뿐 땅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어머니 역시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한 채 그녀를 키웠다.


그녀는 그런 어머니를 나이가 들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삶이 슬펐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어머니의 이유가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끝까지 이혼을 선택하지 않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철없는 어린 시절에나 그랬다. 어른이 되고나서는, 이혼하지 않고 끝까지 가정을 지킨 아버지에게 존경심마저 들 정도였다. 설사 비틀린 존경심이라 해도 아버지의 그 굳은 심지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겁이 났을지도 모르고, 자존심이 상했을 지도 모르며, 가정만은 끝까지 파괴하면 안 된다는 옛 가르침을 어떻게든 지켜내고자 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틀린 철학이라도 자신의 철학을 끝까지 놓지 않은 아버지가 그녀는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비록 그 결과가 모두에게 상처가 되었다고 해도.


아버지의 고집 덕분에, 그녀는 그나마 자신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불안정한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고, 한 집안에서 중심을 잡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기반으로 가정을 꾸렸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데 그가 ‘모신’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모신母神 : 아이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어머니라는 이름의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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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고 싶어서도 내려놓지 못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되돌아보니 그저 좋아 썼습니다. 가장 나다울 수 있는 행위이기에 글을 씁니다. 그 종착이 타인을 위한 글쓰기이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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