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지, 오늘 그녀는 기분이 약간 이상했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는 마치 무덤 속에 파묻힌 듯 세상의 무게가 온통 몸으로 느껴졌는데, 손가락 하나를 무덤 밖으로 내밀어 하늘을 파내기 시작하자 몸의 근육들이 하나하나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직 찌뿌둥한 몸을 천천히 움직여 커피를 내리고, 계란 프라이를 만들었다. 아침의 커피는 여전히 향기로웠고 오랜만에 먹는 계란 프라이는 고소하고 행복한 맛이 났다. 덕분에 아침의 이상한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는 반대로 아주 가뿐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었다. 그녀는 평소대로 커피와 빵 한 조각을 먹고 싶었지만, 밤늦도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들과 채팅을 하느라 동 틀 무렵에나 잠깐 눈을 붙인 아이가 지각을 했다고 야단을 피우는 바람에 그녀는 커피를 내리다 말고 자동차 키를 챙겨야 했다. 아이를 버스 정류장으로 태워주는 동안 그녀는 아이에게 아침에 제대로 깨워주지 않았다는 볼멘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언젠가 호통을 치며 일어나라고 할 때는 엄마의 깨워주는 방식이 너무 짜증 난다더니, 이제는 엄마가 하도 자상하게 깨우길래 아직 준비할 시간이 한참 남은 줄 알아 더 자게 됐다고 한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순간, 아이가 어두운 표정이 되어 우울해진다고 말한다. 그날은 그녀도 덩달아 우울해졌었다.
그녀는 계란 프라이를 먹다 말고 새벽에 느꼈던 기분을 곱씹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아침이면 언제나 심장 박동이 빨리 뛰었다. 불안한 일이 있었다거나 그런 일이 예견된다거나 또는 그 반대의 일이 비슷한 이유들로 일어나서가 아니었다. 그건 아주 오래된 습관 같은 것이었다.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병들 때나 항상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일생을 함께 할 것을 맹세한 것처럼 그녀의 심장은 아침마다 어김없이 폭주하는 증기기관차가 되어 날뛰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심장의 폭주와는 상관없이 몸은 무덤에 파묻힌 것처럼 세상의 무게를 전부 짊어졌다. 심장과 육체의 불균형 때문인지 아니면 반대로 그 불균형을 담아내지 못하는 정신 때문인지 그녀의 아침은 언제나 세계에 균열이 일어난 것처럼 불안했다.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손가락으로 무덤을 헤집고 하늘을 열어보는 일을 매일 반복해야 했다. 손가락이 제 일을 하는 동안 그녀는 눈알을 굴리면서 밤사이 끊어졌던 신경세포들을 이어나가는 작업을 했다.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간신히 이어 붙인 신경세포들을 격려하면서 깨우는 의식이었다. 그녀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침의 이상했던 기분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답답함이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관념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기분은 한 발짝만 떼면 구정물 구덩이에 빠진다거나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바다에 빠지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은 마치 호수 위에 둥실 떠오른 안개무더기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앞은 보이지 않고 안개는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며 어디론가 표류하지만 그것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안개 밖은 깊은 호수, 허공으로 팔을 뻗으려고 해도 묵직한 안개 연기는 헤집어도 헤집어도 걷히지 않는다.
일상이 바뀐 건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무거운 아침을 견뎌내고 아이의 등교를 챙겨준 뒤 남편의 출근을 배웅하고, 그녀도 서둘러 일을 하기 위해 집안 정리를 마쳤다. 정오가 되어 어느 정도 집안이 말끔해지면 그녀는 가벼운 점심을 먹은 뒤에 책상 앞에 앉아 그날 해결해야 할 일을 목록을 만들어 정리했다. 일이 목록대로 끝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반드시 목록을 만들었다. 그래야 그날 마치지 못한 일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다음으로 미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일은 대부분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 5시 정도에 끝이 났다. 아이와 남편의 저녁을 챙기고 자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으면 일을 마저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대부분 없었다. 대신 남는 시간에는 저녁 산책을 했다. 그녀의 일상은 아이의 변덕을 제외하면 평온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던 걸까? 그녀는 아침의 기분에 직감적으로 반응했다. 지금까지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천성적으로 차분하고 논리적인 그녀가 그날의 기분이나 문제에 직감적으로 반응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녀는 빈 커피 잔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으며 전날의 일정을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뭔가 단서가 될 만한 일이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뒤 그녀는 서둘러 간식을 챙겨준 뒤, 아이의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 뜨거운 물에 담가 두었다. 아이의 온라인 과외가 끝날 때까지는 두 시간 남짓 남았기 때문에 그녀는 느긋하게 세탁기에 검은 옷을 분류해서 넣은 다음 세제를 풀고 전원을 켰다. 세탁기 출수구에서 드럼통으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그녀는 아이가 방 안에서 과외 선생님과 비대면으로 문제 푸는 소리를 들으며 저녁 준비를 했다. 싱크대 수납장의 거치대에 걸어놓은 핸드폰에서 나지막하게 Sonicbrat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외계인이 몰래 집안으로 침입하는 듯한 음악이었지만 그녀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저녁으로 먹을 3인분 분량의 차돌된장찌개와 계란말이, 무채 무침을 부지런히 만들기 시작했다. 3인분이었지만 차돌된장찌개의 차돌은 거의 아이가 건져먹을 게 분명했고, 계란말이는 남편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반 토막 낼 것이었다. 나머지 반은 아이의 몫이었다. 그녀는 자기 몫의 차돌과 계란말이를 위해 재료를 조금 더 추가해 넣었다. 저녁준비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아이의 온라인 과외가 끝나고 남편이 현관문의 도어록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남편이 씻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상을 차리고 세 식구는 여느 때처럼 식탁 앞에 둘러앉아 하루 일과와 짜증 나는 일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다. 어제와 오늘, 내일의 경계가 없는 단조로운 하루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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