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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정 과장님 오늘 샌들 신고 오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왜 또 앞뒤 꽉꽉 막힌 구두를 신고 오셨어요? 제가 비밀 알려드렸잖아요!”
월요일, 출근을 하자마자 박주임이 그녀의 발부터 확인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쇼핑백에서 오픈 토 힐을 꺼내 보였다. 그녀가 오늘 입고 온 화이트 슈트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실버 글리터링 오픈 토 힐이다.
“오늘 오전에 대표님 미팅이 있어서 어쩔 수 없어. 미팅 끝날 때까지는 얌전하게 구두 신고 있어야지. 이건 이따가 점심 지나서.”
“아, 그러시구나. 그럼 이따가 꼭 알려주셔야 해요? 저도 궁금하단 말이에요. 과장님이 그렇게 수줍게 웃으시는 거 처음 봤거든요. 파트장님이 우리 회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이스 맨인데, 과연 과장님 발을 보고 얼마나 뚝딱거릴까? 아! 궁금해 죽겠어요!”
“알았어, 알았어.” 그녀는 웃으며 박주임을 향해 자리로 돌아가라고 손짓했다.
파트장이 그녀의 발을 보고 뚝딱거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다만 파트장이 자신을 한 번이라도 돌아봐주길 바랐다. 파트장을 연모해 온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거나,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에 파트장에게 도움을 받게 되어 그런 것은 아니었다. 파트장은 그저 파트장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비서실장에게 지시를 내리고 보고를 받고 회식자리에 참석해 적당한 순간에 자리를 뜰뿐이었다. 외모도 수수하고 하는 행동거지도 평범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파트장은 평범한 집안의 자제가 아니었다. 그가 쓰는 말과 짓는 표정,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파트장의 제스처 하나하나에서 귀티가 흘러넘쳤다. 분명히 모회사 오너 집안에서 경영수업을 받기 위해 계열사의 파트장으로 온 것이 틀림없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파트장에게 접근해야 했다. 이 날만을 위해 달려왔다.
“얼마 전에 상무님이 파트장님 따로 부른 적 있었잖아요 왜. 그거 전상무님이 자기 딸 소개해주려고 그런 거였데요. 하기사 파트장님이 좀 젠틀하세요. 딸 둔 임원들이라면 한 번쯤은 다 사위로 삼고 싶지. 그 스타트를 전상무님이 끊은 거 아니겠어요? 아무튼, 상무님 부탁이기도 하고 해서 파트장님도 만남을 가졌었나 봐요. 그런데 대박!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전상무님 따님이 보기 좋게 차였데요, 파트장님한테! 완전 대박이죠! 아니 일반인도 아니고, 상무님 따님이잖아요. 간이 배 밖으로 나왔던가 아니면 파트장님이 진짜 오너 집안 출신이 아닌 이상 가능한 일이겠어요?”
금요일 오전 주간 실적 보고가 끝난 회의실에서 박주임이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누가 들을세라 그녀에게 소곤거리며 말했다.
“어머, 그래? 난 금시초문인데. 대체 왜?” 그녀는 잠시 놀란 눈이 되어 박주임에게 물었다.
“발!”
“발?”
“네에, 발! 왜 전상무님 따님이 우리 비서 1팀 팀장님이랑 친분이 있잖아요. 팀장님이 그 따님한테 직접 들었다는데, 그날 파트장님이 계속해서 자기 발을 보더래요.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발 얘기만 하고, 발 사이즈가 어떻게 되냐느니, 주로 어떤 신발을 신느냐느니 관리를 받느냐느니 그런 걸 묻더래요. 그런데 그 따님이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YTN 방송 법무팀에 입사한 인재잖아요. 그런 인텔리가 기분이 얼마나 상했겠어요! 가방끈 짧은 나라도 기분 확 상하지! 어쨌든 그 따님도 식사만 하고 자리를 마무리 지어야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파트장님이 먼저 그러더래요. 미안하지만 자기는 다 괜찮은데, 발은 양보 못한다고요. 전상무님 따님은 자기한테 너무 과분하지만 발에 있어서만큼은 자기 기준에 맞지 않아 앞으로 만남을 지속하기 힘들 것 같다고 거절하더라는 거예요. 아주 젠틀하게. 완전 대박이죠! 우리 파트장님 완전 사이코 같지 않아요?!”
그날 박주임이 무슨 지구 종말이라도 온 것 마냥 파트장의 비밀 가십을 들려주는 동안 그녀는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가 파트장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박주임은 그녀에게 파트장을 꼬셔보라고 부추겼고 박주임을 통해 파트장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결정적인 정보를 알게 된 이상 그녀도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발에 있어서만큼 그녀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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